아주 오랜만에 6월의 저녁 바람을 느꼈습니다. 한낮을 달구던 해가 스러지면서, 빗물로 정화된 깨끗한 공기가 바람이 되어 떠돕니다. 어린 시절 산비둘기 울음소리 들으며 마당에 놓인 평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난 4일 엄마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2년 가까이 누나 가족들이 극진히 모셨지만, 엄마는 이제 당신의 아들, 손주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합니다. 그래도 평안하게 잘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아왔지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억이 스러져가는 동안 엄마의 눈망울은 낯선 곳에서 느껴야 하는 불안과 걱정을 가득 담아냅니다. 여기가 어딘지, 저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입니다. 어떨 땐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마치 어린아이 같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늙는다는 것은 결국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라진 기억력이 낯선 사람도, 낯선 곳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만들어주는 평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엄마는 유독 자식들을 각별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철이 들 무렵 엄마의 각별한 사랑이 때론 이기적으로 보여 불편했던 적도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철이 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를 돌이켜봅니다.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 보편적인 사랑은 가장 구체적일 때 실현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구체적인 사랑이야 말로 현실적이며, 그래야 실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엄마의 사랑은 가장 실천적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동녘의 식구들이 가장 가까운 이들과 제대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이 들어 요양원에서 지내야 하는 삶이지만, 그들 모두가 마주해야 할 시간들이 차갑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6월의 저녁 바람이 되어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