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유영호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이 천년 주목 사이
시간을 거스른다.
백년도 못사는 나로서는
해아릴 감이 오지 않는 세월.
꿋꿋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장쾌하게 뻣은 기상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당신과 나는 하나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부터
당신과 나라는 구분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은 여기 있었고
나도 여기 있었다.
신께 기도함이여!
온 정성과 간절함을 두손으로 모아
몸으로 던진다.
당신과 내가 하나임을
눈 덮힌 산 길 한 발 한 발
그렁 그렁 가슴에 맺힌
눈물이 말해준다.
신령한 믿음이여!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운명이여!
흰 우두머리 올곳이 세운
돌무더기 계단 마다
당신과 나의 마음을 던진다.
태백이여!
아름다움이여!
신성한 아버지여!
완만히 소박하게 자리잡은
당신의 산하를 지켜주소서!
귀쫑산악반의 2017년 첫 산행지는 민족의 영산으로 꼽히는 태백산입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예보됐지만 11인의 전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동장군과 맞섰습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다행히 바람이 잠잠해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새벽 5시 일산을 출발해 8시30분 유일사주차장 도착, 장군봉 정상 찍고 오후 1시께 당골로 하산했네요.
총 8km, 4시간 소요.
귀쫑산악반의 미모를 책임지는 미경, 산별 님의 모습이 훈훈합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솟은 태백산은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이 발원하는 한반도 이남의 젖줄이 되는 뿌리산입니다. 지난해 5월, 22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됐습니다.
눈이 많아 소백산과 더불어 `양백'으로 불리며, 삼재(화재 수재 풍재)가 들지 않는다 하여 풍수의 명당으로 꼽힙니다.
<정감록>에는 “곡식 종자는 삼풍에서 구하고 자식을 낳으면 양백에다 숨기라”는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수백살 나이의 주목들이 2800여 그루나 자생하는 주목군락지로도 유명합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주목의 설경을 못봐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주목의 민낯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이날 산행은 김형대, 최원집 두 새내기 회원이 함께 했습니다.
귀쫑산악회 공식시인 1호인 유영호 님이 환영사를 건넵니다.
형대
형형한 눈 밝게 빛나니
대장부의 기상이로다.
형상의 유무를 초탈했으니
대륙을 넘어 세계를 품었구려~~!!
원집
원래로 타고난 재능에 겸손함과 노력을 갖추었으니
집을 이뤄 만인을 쉬게 할 인물이구려~~!!
회장님과 지도자동지 등 많은 회원이 사정상 빠졌지만 귀쫑산악반 특유의 유쾌한 산행은 새해에도 쭈욱 이어집니다.
나무로 자라는 방법
-유희경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두 눈이 빨개지고
두 손이 비어 아플 정도로
아무도 아니었다
나무가 애석한 까닭에 대해서
남자도 새도 가지도 방금,
지워질 듯 떨어져버린 잎도
할 말이 없다 대개 그렇듯
잠시 어떤 시간이 지나간다
남자는 나무를 심지 않았고
나무의 둥치를 만져본 적 없고
몸을 기댄 적도 없지만,
남자와 나무의 속도는 같다
그것은 당신이기도 하고,
당신이 아닐 수 없기도 하다
당신이 남자와 나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하다
방금 떨어진 것은 나무의 잎맥이고
나무의 전생이며 지독하게
갔다가 돌아온 남자의 일상이고
무표정한 당신의 민낯
한 남자가 있고 한 그루
나무와 당신,
아주 멀리 떨어져서
아무도 아무것도 아닐 만큼
어떤 시간이 지나가고 나도
모르고 있을 그만큼의
내로라 하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주군을 모시듯 태백산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태백산에 오르다
-안축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속 들어가니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둥그렇게 밝은 해가 머리위에 나직하고
사면으로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쫓아 학을 탄듯하고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비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니
굽이 도는 오십천을 건널까 근심 되네
<관동별곡>을 지은 고려때 문인인 근재 안축이 1331년 태백산을 오른 뒤 지은 <등태백산>(登太白山) 입니다.
고려 문인 최선은 <용수사기>에서 “천하의 명산이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쪽이 가장 뛰어나다. 동남쪽에서 으뜸은 태백”이라 말했습니다.
허소유란 사람은 "땅이 궁벽하니 누구인들 쉽사리 갈 수 있으랴, 개 어금니처럼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않은 험한 길을 만났으니 가는 길이 멀고, 태백산은 계집의 눈썹처럼 공중에 떠서 가로질렀네. 토지는 메마르고 세금은 무거워서 유리해 도망간 백성이 많으니, 집집마다 벌꿀을 뽑아 바치는 것을 차마 제대로 바라보랴"라는 글을 남겼네요.
제 아무리 천하의 명당이라지만 궁벽한 산골인지라 삶이 척박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태백이 고향인 김형대님. 태백산을 닮아서인지 품이 넉넉해보입니다 ㅎ
젊은 시인 박준(34)은 탄광촌 태백의 슬픔을 담담하게 시로 적었습니다.
당신에게서 –태백
-박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여름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당신에게 적은 답서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이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으로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편지를 구겨버리고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태백중앙병원
-박준
태백중앙병원의
환자들은
더 아프게 죽는다
아버지는 죽어서
밤이 되었을 것이다
자정은
선탄(選炭)을 마친 둘째형이
돌아오던 시간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드러내 보이던
형의 누런 이빨 같은
별들이 환히 켜지던 시간이다
주목의 환생?
첫 길
-유영호
눈이 가득 쌓인 첫 길을 걷는다.
하얗게 길을 지운 눈 때문에
아무런 자욱없이 순백한 길은
처음 걷는 사람의 발자국만 남긴다.
누군가 길은 처음 간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했는데
눈이 많이 내린 날
그 의미를 깨닫는다.
길은 먼저 간 사람이
만드는 것임을
하얀 길이 말해준다.
첫 길을 가는 사람이여!
아름다운 사람이여!
눈이 다시 내려 당신의 발자국을
덮는다고 아쉬워하지는 말자.
새롭게 첫 길을 걷는 이가 뒤따를테니.
태백산 장군단.
북쪽에 함백산(1573m), 서쪽에 장산(1409m), 남서쪽에 구운산(1346m), 동남쪽에 청옥산(1277m), 동쪽에 연화봉(1053m)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높이 2.9m, 둘레 20m 장군단의 삼각형 모양은 사람(人)을 뜻한다고 합니다.
신라 초기부터 신산(神山)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왔다네요.
1567m.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
백두산과 태백산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봉우리 이름입니다. 백두산이 태백산, 함백산, 장백산, 백운봉, 장군봉으로 불리듯, 태백산에도 함백산, 백운봉, 장군봉이 있습니다.
백두산을 의식한 듯 서체도 예사롭지 않네요.
태백산 설경
-최원집
검은탄 태백
하이얀 설산
붉은빛 주목
황토색 산하
푸른색 하늘
청적황 백흑
오색의 향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장대한 고목
우리를 반겨
천제단 돌탑
마음의 제단
간절한 소원
하늘로 솟네
백년의 인생
못사는 우리
고주목 앞에
마음은 잠잠
한의사님 겸 기타리스트 겸 운동선수 겸 철학자 겸 시인.
다재다능한 최원집님의 귀쫑산악반 데뷔 시입니다.
공식 3호 시인 등단을 축하드리고, 많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입산 초기 컨디션이 안좋아 흑기사들이 앞다퉈 등을 내밀었지만 뿌리치고 끝내 걸어서 정상에 오른 미경님.
손이 보배인 유작가님. 동상 걱정에 비닐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했네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도 눈길을 가볍게 오른 석경님. 혹시 도사들이 쓴다는 축지법을??
장군단에서 천제단 가는 길. 평평하고 드넓은 정상부가 이어집니다.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이 한눈에 조망됩니다.
두 팔을 벌려 백두대간의 기를 받는 유작가님. 동작 하나하나가 작품입니다.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너비 7.4m, 전후 너비 8.4m의 커다란 타원형 모양을 띈 천제단.
천제단의 원은 하늘을, 사각의 기단은 땅을 의미한다고. 장군단과 더불어 天地人이 완성된다고 하네요.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태백제가 열립니다.
1000m 넘는 주변 봉우리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마치 신선의 세계(仙界)에 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11人의 신선들. 혹은 신선놀음 ㅎㅎ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을 늘어선 인간들 ㅎㅎㅎ
정상에서 먹은 따뜻한 뱅쇼, 막걸리와 홍어, 곳감 등등 너무 좋았죠?
아쉬움을 남기고 당골 석탄박물관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눈
-유영호
눈이 옵니다.
잔색이 어지러운 도시 위로
추위에 얼어 붙은 나무가지 위로
뭍 생명들이 웅크려 봄을 기다리는
산 위로
눈은 어디든 평편히 내려앉는
위로입니다.
눈은 거친 바람에 휘날려도
땅이란 종점에 도착하는
연민입니다.
눈을 뜹니다.
새삼스레 아름다운 오늘을
담아 놓으려구요.
눈을 감습니다.
망막에 맺힌 새하얀 고독을
잊지 않으려구요.
다시 눈을 뜹니다.
당신이 녹지 않고 내 앞에 있는지
확인하려구요.
눈덮인 주목과 귀쫑 공식 2호 시인.
웃음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고 합니다.
활짝 웃는 일들만 많이 생기는 새해가 되길 빌겠습니다.
이상으로 가오리, 산별, 혜성, 영호, 미경, 군섭, 석경, 진호, 형대, 원집, 경만 등 선남선녀 11人의 신선놀음 후기를 마칩니다.
<끝>
첫댓글 와우~~ 멋진 사진과 태백의 글들이 구구절절히 어우러지는 후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춥기는 추운가봅니다. 석경선생님이 저렇게 중무장한 것을 처음 봅니다. 하지만 아이젠을 하지 않고서도 잘 올랐다는 것은 뒤호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은 채 북한산 능선을 바람에 날리는 솜털처럼, 바위길에 미끄러질 때도 손오공이 구름위를 미끄러지듯 유연함에 이미 알아보았습니다.
사진 속의 표정도 좋지만 여러 글들이 나의 마음을 태백 현지로 날아가게 합니다.
박국장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시와 글, 사진이었습니다.
그 날의 즐거운 산행을 다시금 생각나게 합니다.
아름다 경치를 멋진 사람들과 아울러 사진으로 담아주심에 저희에겐 더 없는 영광입니다. 국장님 노고에 만세 만만세! 단결!
한컷 한컷 모두 작품입니다...
저는 열심히 산에 올라 날씬해 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봅니다......
허리 디스크 치료 후 처음 간 겨울 산행이라 다소 힘들더군요. 얼굴과 손끝은 왜 그리 시리던지요. 그래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늘 반갑게 맞아주는 귀쫑 산벗님들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었어요.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올해도 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소원 성취 하세요~~~^^
멋진 사진과 감수성 넘치는 글들로 엮어진 후기를 보며 가지 않았어도 깊은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글 엮음과 사진들이 바로 예술입니다~~^^
땅은 희고 하늘은 파랗고. 잊지 못할 풍경이었습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다시봐도 참 좋네요~천재단에서의 뱅쇼&위스키~^^
좋은 산에서 멋진 사람들과 어우러진 산행이 얼마나 멋졌을까....
박국장의 시와 해설이 곁들여진 사진첩이 가지못한 발걸음을
더욱 아쉽게 합니다~
이렇게 유려한 글과 사진으로 겨울산과 겨울사람을 소개해주신 토마스 만님은 누구실까요? 참말 궁금하다는..^^*
글만으로도 함께 산행다녀온 듯 장쾌하고 훈훈하네요~
앞으로 산행후기의 열성독자가 될 듯한 예감이...♡
흰빛 하나로도 화려한 태백설국에 유경쌤의 환한 미소까지 함께였다면 완벽했을텐데 말입니다. 한분 한분 내뿜는 당당한 빛이 참 보기 좋습니다. 2017년도 몸공부반 화이팅!!
와~~정말 훌륭하고 멋진 후기입니다 ^^
조금 늦게 이글을 발견하고 읽고갑니다 ^^;;
즐거웠던 산행의 추억이 고스란히 되돌아오네요~ 더 풍성하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