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77.
■ 1부 황하의 영웅 (77)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 11장 떠나가는 배 (8)
제양공은 사촌동생인 공손무지(公孫無知)를 불러들여 비밀리에 특명을 내렸다.
"그대도 알다시피 지금 위나라에 시집 가 있는 선강(宣姜)은 나의 여동생이다.
그런데 위나라 사람들이 언제 선강을 죽일지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해서든 선강이 죽지 않도록 해 주고 싶다.
마침 우리나라에는 죽은 세자 급의 동복동생 공자 석(碩)이 도망와서 머물고 있다.
그는 위혜공을 내쫓고 군위를 찬탈한 위후(衛侯) 검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그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자 석(碩)을 데리고 위나라로 들어가 선강과 함께 살도록 주선하라.
그것이 선강(宣姜)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위혜공 삭(朔)이 다음날 다시 군위에 오를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공자 석(碩)은 비록 친소생은 아니었지만 선강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 공자 석을 제양공(齊襄公)이 선강과 부부지간으로 만들려 하다니.
본래 이 시대의 성(姓) 풍속이 이런 일을 묵과하고 있음인가.
아니면 제양공이라든가 위선공이 별난 사람들인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양공의 밀명을 받은 공손무지(公孫無知)는 공자 석(碩)을 데리고 위나라로 들어갔다.
공자 석(碩)은 위후 검모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귀국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는 임금이 된 친형 검모와 만나 세자 급(急)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동안 헤어져 지낸 회포를 마음껏 풀었다.
공손무지(公孫無知)는 제나라 사신의 자격으로 위후 검모와 그 신하들에게 제양공의 부탁을 전했다.
- 공자 석(碩)과 선강을 함께 살도록 해주시오.
별궁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활을 하던 선강(宣姜)은 여종으로부터 이러한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이제야 내가 살 수 있겠구나."
위후 검모와 그 신하들은 공손무지(公孫無知)로부터 제양공의 청을 전해듣고
속으로 비웃었으나 겉으로는 잘된 일이라는 듯 그 의견에 동조했다.
무엇보다도 그들로서는 제(齊)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욱이 전 임금인 위혜공(衛惠公)이 제나라에 망명해 있다고 하지 않은가.
공연히 선강으로 인해 제양공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이 기회에 선강을 공자 석(碩)과 맺어줌으로써 제양공(齊襄公)의 환심을 사두는 것이 더 이익인 것이다.
다만, 멋모르고 귀국한 공자 석(碩)만이 이 말을 듣고 기겁을 하였다.
"선강(宣姜)은 아버님이 데리고 살던 여자요.
맏형 급(急)의 신부였었소.
그런 여자를 내가 어찌 데리고 살 수 있단 말이오.
부자간의 윤리로도, 형제간의 의리로도 그럴 수는 없소.“
공자 석(碩)은 완강히 거절했다.
난감한 것은 공손무지(公孫無知)였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자 석(碩)과 선강을 맺어주고 오라는 특명을 받았다.
누구보다도 제양공(齊襄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제양공과 공손무지(公孫無知)는 사촌간이다.
나이도 비슷하여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다.
제희공은 공손무지를 친아들처럼 아꼈다.
제양공이 세자이던 시절 공손무지(公孫無知)에 대한 모든 대우를
세자인 제아(諸兒, 제양공의 이름)와 똑같이 하라는 명을 내렸을 정도였다.
반면,
그 아들인 제양공(齊襄公)은 시기심이 많고 독선적이며 난폭하기까지 했다.
노골적으로 자신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공손무지(公孫無知)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 무렵의 제양공의 눈빛은 살모사의 눈보다도 더 차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제희공이 죽고 제양공이 군위에 오르자 제양공(齊襄公)은 즉시 공손무지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 지금까지의 공손무지(公孫無知)에 대한 예우를 철폐하라.
공손무지는 살얼음판을 걷은 기분이었다.
제양공(齊襄公)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 분화구가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았다.
그는 가능한 한 제양공을 멀리하려 했다.
무슨 꼬투리를 잡혀 화를 당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닷없이 공자 석(碩)과 선강을 맺어주고 오라는 특명을 받은 것이었다.
만일 지시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공손무지(公孫無知)의 운명은 여기서 이대로 끝날지도 몰랐다.
절박한 상황 -
그에게는 나름대로 목숨이 달려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공자 석(碩)의 단호한 거절에 공손무지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심정으로 위나라 국정을 손에 쥐고 있는 좌공자 직(職)을 찾아갔다.
"이번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내 무슨 면목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우리 주공을 뵐 수 있단 말이오?
이제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외다."
겉으로는 자신의 난감한 사정을 호소하는 것처럼 들렸으나,
그 이면에는 다분히 위나라에 대한 협박이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제양공(齊襄公)과 사촌간이다.
그런 내가 죽을 정도라면 위나라는 어찌 될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좌공자 직(職)이 어찌 이런 공손무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랴.
그는 선강으로 인해 제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반대로 선강(宣姜)을 잘 이용하면 위나라는 제나라를 동맹국으로 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되면 자신의 정권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다.
그는 공손무지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좌공자 직(職)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주안상을 차려놓고 공자 석(碩)을 초청했다.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자 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실내에는 음악소리가 그치질 않았고,
좌우로는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요염한 자태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오랜 망명 생활을 하느라 얼마나 적적하고 외로웠겠는가.
오늘 밤은 모든 것을 잊고 회포를 풀어보시게나."
위(衛)나라 음악은 색정적이다.
듣고 있노라면 절로 음심이 솟아오른다.
공자 석(碩)은 호색한은 아니었으나 그 날 저녁만은 마음껏 음악과 술을 즐겼다.
좌공자 직(職)은 연신 새로운 무희(舞姬)를 들어오게 하여
선정적인 춤과 음악을 보여주는 한편 공자 석에게 계속 술을 권했다.
마침내 공자 석(碩)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제 됐다.
어서 별궁으로 모셔라."
좌공자 직(職)의 신호에 기다렸다는 듯이 시종들이 나타나
곯아떨어진 공자 석(碩)을 들처메고 별궁으로 향했다.
그가 눕혀진 방은 다름 아닌 선강의 방이었다.
그 날 밤,
공자 석(碩)은 선강과 함께 잤다.
연회장에서 들은 음탕한 음악 때문인가.
그는 옆의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취한 김에 질탕한 육체관계를 맺었다.
선강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꿈결에서 공자 석(碩)은 지금까지 몰랐던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질탕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떴다.
공자 석(碩)도 잠에서 깨어났다.
곁에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이게 어찌 된일인가.
서모 선강(宣姜)이 나체로 누운 채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간밤의 황홀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무슨일을 저질렀는가를 알았다.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로써 공자 석(碩)은 선강과 부부가 되었고, 공손무지는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후 위나라 공실은 여러차례 변란을 겪었지만
공자 석(碩)과 선강만은 별탈 없이 살며 5남매를 두었다.
이 5남매의 앞날을 미리 얘기하면,
장남 제자(齊子)는 일찍 죽었다.
차남인 신(申)은 우여곡절 끝에 군위에 올라 위대공(衛戴公)이 되었으며,
삼남인 훼, 역시 위나라 임금인 위문공(衛文公)이 된다.
또한 두 딸 중 맏이는 송환공(宋桓公)의 부인이 되며,
둘째 딸은 허(許)나라로 시집가 허목공(許穆公)의 부인이 된다.
5남매 중 넷이 임금이 되거나 임금의 부인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상한 인연으로 맺어진 부모의 기구한 운명과는 달리 자식들은 모두 존귀한 신분이 되었다.
물론 이 시대의 존귀한 신분이라는 것이 일반 백성들의 삶보다 더 비참한 삶일 수도 있었겠지만.
역사 기록을 담당하는 후대의 사관들은
위선공과 선강, 공자 석(碩)으로 이어지는 이 해괴한 부부관계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