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술 마신다고? – 금주일지 311(2023.7.21.)
오늘은 학교 선생님들이 방학에 들어가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할 일이 많다.
학교에서 ’주를 여는 시간‘ TF팀을 구성하고 운영방안을 논의해야 하고,
다음 주까지 보내야 하는 광주매일신문 칼럼 원고 초고도 써야 하고,
예약된 치과 진료도 해야 하고,
푸른길도서관 직원들 격려 방문도 해야 하고,
장흥 장모님도 찾아뵈어야 한다.
예정된 일정들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장흥엘 갔다.
늘 그렇듯이 저녁 식사 무렵에 도착하였다.
강하주 씨는 미리 준비해 간 재료로 저녁 식사를 서둘러 준비한다.
오늘은 생선구이, 돈육구이, 생선찌개와 다른 채소 반찬들이다.
나이 들면 다 그런지 모르지만 장모님은 점점 고기반찬을 더 즐겨드신다.
식사 중에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님, 저 술 안 마시니까 좋으시죠?“
”뭐, 특별히 좋당가. 이 서방이야 술을 먹을 때도 안 먹을 때나 똑 같은디. 그래도 술 먹으면 실수하기 쉬은디 술을 안 먹으면 실수를 안 허게 되제.“
”그럼 저는 술을 끊으나 마나네요?“
”아니, 그렁께 그래도 술을 안 묵으믄 묵응 거보다 낫제. 암만해도.“
”어머니, 제가 지금 술 끊은 지가 열한 달 째거든요. 이제 한 달 남짓 후에는 술을 다시 먹을라고 하는데요.“
”뭐! 다시 술을 먹는다고? 아니 술을 한 번 끊었으면 계속 끊제 멋헐라고 다시 먹는당가?“
”아니, 처음 술을 끊을 때에 1년만 끊을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요.“
”그래도 한 번 끊었으면 그만 마시제 다시 마신다고?“
”네, 다시 마실라고 하는데요. 왜요, 제가 술을 다시 마신다니까 안 좋으신가 보네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디.“
”그럼 왜 다시 마신다니까 못 마시게 하세요?“
”누가 못 마시게 한당가. 이 서방은 술을 마셔도 워낙 점잖게 마싱께 걱정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안 마신 것잉께 안 마셨으믄 좋것다 이 말이제.“
”아니 그 말이 그 말이죠. 마시지 말라고. 그래도 저는 9월 14일부터 술을 다시 마실 거에요.“
”알어서 허소. 내가 뭣이라고 허것능가.“
못내 마땅치 않으신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 남편, 세 아들 등 하나같이 술자리가 길고 그 뒤끝도 길어서 평생 술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가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술과 술자리의 끈질김. 그로 인해 평생 가슴앓이하며 살아오신 경험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으신가 보다.
술에 대하여 절제력이 있는 사위라도 술 마시는 것 자체에 대하여 트라우마가 있는 장모님으로서는 술 자체가 기피의 대상이기에 마음에 허용이 안 되는 것이리라.
그래, 술로 인해 누군가에게 덕이 되지 못할망정 이렇게 깊은 상처를 앙금으로 남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리라.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술이 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절제력을 잃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고.
아, 이제 금주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내 음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는지.
내 음주로 인해 내 스스로를 해치지 않았는지.
내 음주로 인해 덕을 쌓기보다는 덕을 잃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겠다.
첫댓글 9.14일 맨처음 누구와 드실지 궁금합니다. 목요일이네요. 한 번 끊었으면 그만 마시제..장모님 말씀에도 여운이...
그럼 저는 술을 끊으나 마나네요?
박장대소 ㅋㅋ
귀추가 주목되는,,,
알아서 허소... 내가 뭣이라 허것능가 ^^
도저히 체질이 아닌데 ㅡ
술 한 잔 못한다며
화통함 사교성부족에 엄마의
길고 긴 구박을
한량없이 들으셨던 울 아버지.
그 땐 몰랐다
인생 재미있을 기회를 놓치는
아쉬움을 ㅡ
평생 술 마신분들의
알콜의 재미있음 흥겨움이
부러워 옆집 아저씨의 익살
넉살을
칭찬했던 엄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