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인문학 칼럼) 2019.12.26.
인문학의 선물,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이민숙
스페인의 천재적 첼리스트 빠블로 카잘스의 말이 감동적인 것은, 그의 구십 대 때의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말했다.
“선생님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최정상의 첼리스트입니다. 그리고 연세까지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매일 세 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겁니까?”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
혹자는 예술을 타고난 능력, 기질이라고 말한다. 음악가, 화가, 시인 소설가를 일컬을 때 특히 “난 안 돼, 타고난 재주가 없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정말 그럴까? 타고나지 않아서 못 하는 걸까? 노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 하는 걸까?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타고난 재주가 없어서 못 한다고 하고, 끝까지 가본 사람은 ‘운’이 좋아서 지금 이 지점에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운’이란 무엇일까.
작가 조정래는 말했다.
“열정은 능력이다.” “가장 뛰어난 능력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문학강의를 종종 할 기회가 있다. 그때마다 이야기한다.
“어떤 예술이 좋고, 어떤 예술에 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재능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 분야에 끌리고 하면 즐겁다는 점 이것은 예술적 재능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진리에 주목하라. 만성(晩成)이란 오래 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오래 노력해야만 한다는 의미도 있다.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노력은 재능을 능가하는 힘이며 인간에게 신술(神術)을 가져다주는 마력을 발휘하며 유치하게 금언을 흉내내서 말하자면 성공의 어머니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또 한 해의 시작을 예비한다. 삶이란 끝과 동시에 시작점에 서게 되고, 시작하다보면 마무리 단계를 맞이하게 된다. 삶의 처음도 끝도 한 발자국을 딛는 일상에 다름 아니다. 그 일상의 소중한 존재적 비상이라 함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 인연(사람이건, 업무건, 재능이건, 책이건)을 고마움으로 끌어안고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다. 세모의 햇살을 흠뻑 사랑으로 끌어안으면 새해에도 흠뻑 고마워할 복스러운 시간들이 몰려오리라.
인문학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여년, 책의 소중함에 작가의 노고에 가슴 깊이 고마움을 갖고 살아왔다. 작가의식은 우주적 총체이다. 그 총체성에서 흘려주는 에너지가 시대상, 교육의 영향, 인간관계, 성격과 성품에서 발아하여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는 걸 느낀다.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가 인식하고 의식하고 느끼고 깨닫고 행동하는 인문적 사상 철학으로 집대성 된 것이 또한 나의 시이고 칼럼이 되었다. 지금 그리고 내일의 지적 에너지를 마시는 일, 한 권의 책 속 언어를 가슴 깊이 이해하며 사유하는 과정 속에서 모든 지혜는 삶의 밑거름이 된다.
생의 성공의 잣대를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둔다면, 끊임없는 독서, 끊임없는 글쓰기, 그러한 과정으로서의 ‘사색(學: 논어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하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독자 제현과 함께 그런 지혜의, 인문학의 새해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