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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실수나 불행을 보면서,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도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망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마냥 기뻐할 수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렇다!’라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당신의 질투는 정상입니다’라고 단언을 하고 있다. 그러한 감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거기에 더 익숙해져버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디나면 ‘여지없이 자기혐오라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어쩔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이 책의 부제는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이다. ‘샤덴프로이데’는 피해나 손상을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나 즐거움을 뜻하는 ‘프로이데(freude)’를 결합하여 만든 독일어라고 한다. 영어에는 없는 이러한 의미가 독일어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독일에서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분야가 더 발달한 때문이 아닌가 여겨졌다. 이 단어의 원 뜻은 ‘피해를 즐긴다’이지만,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을 일컫는 것을 지팅한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밀히 내재해 있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고, 그러한 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짚어내고 있다.
프롤로그에는 ‘타인의 실패에서 위로를 얻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샤덴프로이데는 바로 ‘자신의 성공보다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 것이며 저자는 이것이 ‘추잡한 기쁨’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규정한다.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샤덴프로이데를 일컬어 ‘철저히 악한 마음과 하찮은 도덕성의 확실한 징후’라고 규정했지만, 저자는 이러한 감정을 단지 ‘악하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동안 ‘숨겨져온 이 감정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수치심과 은밀함에서 해방된다면,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많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러한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한 이유라 할 것이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된 본론을 통해서,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샤덴프로이데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감정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글을 앞머리에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해있는 감성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나 역시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내재해 있다는 것과 그것을 공공연히 표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 할 것이다.
분명 그러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남의 불행에 은밀한 기쁨을 느끼기보다 상대방의 처지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성을 면밀히 분석해 그 실질을 상세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에게는 학습 혹은 사회화를 통해서 때로는 그것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더 익숙해져버린 저자와는 달리,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감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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