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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특정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문학 연구로 점차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듯이 지역 연구가 가지는 장점은 뚜렷하지만, 또한 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부분적이고 특수한 국면만을 강조하는 편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만 한다. 어떤 작품을 일반적인 작품론 차원에서 다룰 때 발견하지 못하는 면을 지역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작품이나 작가를 이해하는데 있어 어쩌면 지엽적인 것일 수 있는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작품 이해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호남의 시가문학에 초점을 맞춘 이 연구에서 이러한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호남 시가의 전개 양상'을 살핀 1부는 문학사가 비단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지역문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때로는 특정 사항이 실제보다 더 크게 부각되거나 시가사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왜곡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연 ‘호남시가’라고 했을 때, 작가의 출신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나 내용을 고려해야 할 것인지가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될 것이다. 만약 작가의 출신이 전제라고 한다면, ‘호남문학’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소재나 내용만을 고려한다면, 작품의 범위도 협소해지고 작품의 범주도 자연스럽게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송순과 양산보 그리고 윤선도 등을 다룬 2부의 내용 역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단지 호남이라는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실제 작품은 전해지지 않고 한역된 작품으로만 남아있는 송순의 시조는 작가론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나, 시조사의 측면에서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역시와 내용이 흡사한 시조들이 이미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담양의 원림인 소쇄원을 꾸민 양산보의 <애일가> 역시 한글 시가는 전하지 않고 한역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또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보길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부가’의 전승과 시조사의 주요 국면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중국의 소상팔경을 소재로 취한 ‘소상팔경시’의 창작과 전승에 있어서도, 그것을 이해하는 시각이 단지 ‘호남’이라는 지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음을 고려해야만 한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한 성과라 한다면, 그동안 시가 연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3부의 연구들일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원림인 전라도 동복의 고반원에 대해 노래한 남언기의 <고반원가>, 그리고 19세기 즈음 전주의 풍경을 서술한 민주헌의 <완산가> 등은 새롭게 소개되는 자료로써 흥미있게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위치한 ‘성산(별뫼)’를 배경으로 한 <성산별곡>의 작품론과 18세기 무등산 자락에 은거하고 살았던 정해정의 작품과 그 배경을 추론하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특히 이러한 작품들은 지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역 연구의 장점을 살린 것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호남시가 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전라북도보다 전라남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연구 대상을 점차 확대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비록 지역학으로서의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고전문학 연구의 방향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시도는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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