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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종의 액자소설이라 할 수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소설가인 화자 ‘나’가 이끌어가는 내용이다. 바깥 액자의 화자인 ‘나’는 우연히 들른 전시회의 조각가인 장운형과 만나고, 이후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느 날 전달된 두터운 스케치북에서 읽은 내용이 바로 소설의 본격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남아서 우연히 들른 지방 도시에서의 전시회, 인사동에서 받은 전시회 팸플릿의 주인공, 그리고 후배의 연극 공연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조각품의 작가로서 모두 3차례에 걸쳐 ‘나’는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연극의 뒤풀이에서 그 주인공을 만나고, 자신에게 전달된 장운형이 남긴 기록을 접하게 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모두 조각가인 장운형이 남긴 기록들을 그대로 전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란 제목의 ‘서’에서 장운형은 소설가인 ‘나’와의 만남을 간략하게 기록한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아마도 ‘나’와의 만남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1부 ‘손가락’에서는 장운형의 어린시절부터 삶의 내력이 소개된다. 차가운 인상의 어머니, 대학교수로서 사회적 체면을 지극히 중시하는 아버지, 그리고 두 누이가 이룬 가족의 모습은 정상적인 그것과는 조금은 다르게 묘사된다. 그 사이에 끼었던 어린 고모와의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들로 인해, 가족들과의 불화와 그들과 자신이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서술되고 있다.
아버지를 경멸하던 외삼촌이 죽고, 염을 하던 순간 시신에 손가락 두 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 대목에서 장운형은 외삼촌에게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일까? 장운형은 평소 아버지를 경멸하던 삼촌의 모습에서 일종의 당당함을 느꼈던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위선적인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 두 개가 없던 삼촌이 살아생전 그것이 완전한 것처럼 지냈기 때문일까? 그가 이후 조각가로서 손에 집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성스러운 손’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의붓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L’과 장운형의 만남이 다루어지고 있다. ‘L’은 그러한 어두운 과거 때문에 폭식을 하면서 지나치게 비대한 몸을 지니고 있지만, 그녀의 손만은 장운형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장운형과의 작업이 진행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다이어트에 나서지만, 다시 폭식에 빠져드는 ‘L’의 형상. 여러 번의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고, 끝내 그녀의 손 조각만을 남겨두고 장운형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가족들로부터 받은 성처를 품고 있었고, 그로 인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3부의 ‘가장 무도회’는 ‘L’의 손 조각을 기화로 인테리어를 하는 ‘E’와의 만남이 이뤄지게 되고, 그 둘 사이의 에피소드들과 인연을 맺는 과정 그리고 실종 사건에 이르는 과정이 기록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게 보였던 ‘E’가 육손이로 태어나 손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E'가 장의 손조각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신의 손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해된다. 결국 그러한 콤플렉스로 인해 두 사람이 실종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 밝혀지면서, 장운형의 기록은 끝난다. 그리고 다시 에필로그는 장운형의 지인들이 창고에 쌓인 작품들로 유작전을 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것을 담담히 전하면서 일상으로 복귀한 소설가인 ‘나’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작품의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장운형의 기록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가족들과 소원한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장운형,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폭식증에 빠져들었던 ‘L’, 그리고 커리어우먼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지만 육손이였던 콤플렉스를 품고 살았던 ‘E’가 바로 그들이다. 이러한 인물 설정 역시 한강 소설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시점의 교차가 이 소설에서는 ‘액자 형식’으로 치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쯤 마음속에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그의 작품들을 통해 위로하려는 의도일까?(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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