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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란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것이다.
잠겨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 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 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이정하 -
밤새 내린 비
간 밤에 비가 내렸나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 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 이정하 -
사랑
마음과 마음 사이에
무지개가 하나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미처 몰랏다
- 이정하 -
눈이 멀었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된느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꼇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 이정하 -
기대어 울 수있는 한 가슴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 이정하 -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한 시간을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걷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한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 이정하 -
<이정하>
* 출생지 : 대구광역시
* 출생 : 1962년
* 데뷔년도 : 1987년
* 데뷔내용 : 경남신문과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
<작가 소개>
시인 이정하는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 대건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7년 <경남신문>,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등의 시집과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등을 펴냈죠. 고교시절부터 각종 문예 콩쿠르에 입상하는 등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고 합니다.
특히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이정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그의 감수성을 시집과 산문집을 통해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를 기록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왔다. 마치 사랑을 위해 태어난 듯, 사랑에 대해서 한이 맺힌 듯, 이정하의 테마는 '사랑'에 편중되었고, 동료작가의 표현처럼 사랑에 대한 감성 또한 천부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 시집
『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 1991 』
『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 1994 』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1997 』
『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1999 』
『 한 사람을 사랑했네 - 2000 』
* 산문집
『 우리 사는 동안에 - 1992 』
『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 1993 』
『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 1996 』
『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 1997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1 - 1998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2 - 1999 』
『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1999 』
『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 2000 』
이정하 시인의 눈물겨운 참회록(인생편력)
출판사 부도, 도박, 슬럼프 겪고 먼 길 돌아 다시 ‘글쟁이’로
여성중앙1990년대에 사랑을 했던 사람치고 이정하 시인의 시집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7년 문단에 데뷔한 그는 대표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를 비롯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등 줄곧 사랑에 관한 글을 써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로 사랑을 고백하고 실연의 아픔을 달랬다.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한동안 활동이 뜸했다. 매년 새로운 히트 작품을 내놓던 1990년대와는 달리 2000년대 들어서는 이렇다 할 신작이 없었다. 그런 그가 요 근래 다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에는 생애 첫 소설을, 지난해는 에세이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또 한 편의 신작 에세이 『사랑이 켜지다 로그인』을 펴냈다. 이 작품은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아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랑의 소통 방식 또한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사랑’은 곧 ‘기다림’이었잖아요.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고백이 담긴 편지를 쓰면서 또 고민하고, 편지를 다 써놓고도 줄까 말까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요즘은 문자 메시지 한 통, 메신저 대화로도 고백을 하더라고요. 시대에 맞게 변해 가는 사랑법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가볍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해요.”
베스트셀러 작가 되니 자만심 생기더라
그는 사실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일 뿐, 컴퓨터는 주로 글을 쓸 때만 사용한다. 그럼에도 인터넷 사랑을 소재로 작품을 쓴 유는 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해본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랑에 대해 100%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비교적 다른 작가보다는 사랑에 대해좀 많이 아는 편”이라 자신했다.
실제로 그는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다. 책, 영화, 라디오, 주변 사람 등을 통해 사랑 이야기를 접한다. 그에게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내오는 독자도 많다. 그는 눈만 뜨면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생활이 반복되는 셈이다.
“제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모두 아파요. 뜨겁게 사랑하고 헤어진 이야기죠. 저는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통해 ‘난 그래도 저만큼 아프진 않으니 다행이야’라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사랑 이야기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마음은 점점 가난해져 갔다고 지난날을 고백했다. 나름대로 쓰고 싶은 글도 있고, 또 마음이 내킬 때 글을 쓰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출판사와의 계약도 지켜야 하고, 그 무렵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도 생겼다. 결국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2000년도에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원고를 읽고 고치는 게 일이 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원고를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글도 잘 안 써지고 슬럼프까지 겪어야 했다.
게다가 야심차게 문을 연 출판사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출판도 결국 장사였다. 책을 내는 것과 만든 책을 파는 것은 달랐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직원 수를 늘리고 책을 더 많이 만드는 등 공격적으로 경영을 해나갔다.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도박도 그중 하나였다. 우연한 기회에 도박을 하게 된 그는 처음에는 돈을 땄다.그 재미에 한두 번 더 하다가 자꾸 돈을 잃자 그 후로는 무서운 속도로 도박에 빠져들게 됐다. 도박의 특성상 한번 빠져들면 대부분 중독에까지 이르게 마련.
그 역시 자신도 모르게 도박에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한번은 하루에 2천~3천만원씩 따서 열흘에 3억원을 모은 적이 있단다. 그때 그는 2억원은 급한 빚을 갚고 1억원을 가지고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한 번만 더 이만큼만 따자. 그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채 두 시간도 못 되어 가진 돈을 다 잃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동안 출판사가 어렵긴 했어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는데, 그가 도박을 접하면서 급격히 더 어려워졌다.
“도박장은 굉장히 무서운 곳이에요. 요지경 속입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기 위해 도박장 안에 창문과 거울, 시계를 없애버립니다. 저같은 아마추어가 도박장에서 승부를 내려 하니 되겠어요? 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도박을 하겠다고 하면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못 가게 할 거예요.”
2003년 무렵에는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고,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떠돌았다. 당시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 그와 함께 지내던 어머니와도 연락을 끊고 2년 가까이 혼자 방황했다. 밥 사 먹을 돈도, 잘 곳도 없이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가족들은 외국에 있지, 출판사는 부도났지, 돈은 필요하지 참 힘든 시기였어요. 나중에는 빌릴 만한 데서는 돈을 다 빌렸는데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힘들게 지내고 있는 저를 언론사에서 많이 찾아왔었죠. 당시 사회적 핫이슈가 기러기 아빠였는데, 잘나가는 시인이 기러기 아빠인데다 금전적 어려움까지 겪고 있으니까 다큐멘터리로 꾸미기 딱 좋잖아요. 사람들 피해 다니느라 고생했어요.”
결국 설립한 지 4~5년 만에 출판사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 그가 쌓아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날아갔다. 그렇게 몇 년간 그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땐 자신이 왜 정신을 차렸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너무 참담했다고.
그런 그가 절망 속에서 헤어나기 시작한 때는 2005년 무렵이다. 사람을 피해 숨어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 친구 덕분이었다. 길을 지나다가 그를 발견한 친구가 달려와 그를 와락 끌어안았는데, 당시 그는 반가움보단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단다. 그때 그 친구는 다 안다는 듯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일어나 임마, 어서 걸어가야지’라는 말을 해줬다. 그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맞아. 내가 일어나서 걸어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뒤로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토록 안 써지던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게 나의 길이구나’ 깨달았다.
방황과 깨달음 담은 자전적 소설 집필 중
누구나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린 당시에는 열이 나고 몸이 아프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좀 독한 감기를 앓았을 뿐이다. 주위 사람들은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따뜻하게 격려해 줬다.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살면서 방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는 것이니까요. 다만 저의 방황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던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2년 전 『나비지뢰』를 탈고할 때쯤 눈이 안 보인다던 어머니는 요즘도 몸이 좋지 않으세요. 그 눈에 숱한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저도 참 못난 아들입니다.”
문단에 데뷔한 지 어느덧 21년. 그동안 그에게 문학은 닳은 신발 같은 것이었다. 버리려고해도 버릴 수 없이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글 쓰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그는 요즘도 사랑에 관련된 소설을 쓰고 있다. 이번에는 사랑을 거래하는 이야기다. 첫 장편 소설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는 걸 보며 사랑은 쉽게, 유치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단다.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과 그 이면에 숨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아 올겨울 즈음 발간할 계획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재미있지만 처참했던 경험이 많아요. 그런 일들을 겪으며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사랑 소설 말고도 또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어요. ‘비겁’이라는 연작시인데 저의 비겁했던 일들을 시로 고백하려 해요. 다른 사람들도 저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비겁했던 순간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한때 팍팍한 현실을 도피했던 비겁한 가장이자 아들이었다. 또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아예 출판계를 떠나려 했던 비겁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그는 프랑스에 떨어져 사는 딸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며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딸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순박한 시인은 세상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다. -검색자료 재구-
이정하 시인 시 모음
길 위에서
길 위에서면 나는 서러웠다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길이었으므로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
그대여,
너는왜 저만치 멀리 서 있는가
왜 손 한번 따스하게 잡아주지 않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 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겠다는 뜻이다.
저녁별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였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 때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고
한숨지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던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당장 숨을 거둔다 해도
너는 그자리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 볼 밖에
내 어두운 마음에 뜬 별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큰 아픔이기도 했다.
바람 속을 걷는 법2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으르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 지.
기원
이 한세상 살아가면서
슬픔은 모두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기쁨만 가지십시오
고통과 힘겨움은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즐거움만 가지십시오
줄 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겠습니다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헤어짐을 준비하며
울지마라 그대여,
네 눈물 몇 방울에도 나는 익사한다.
울지마라, 그대여
겨우 보낼 수 있다 생각한 나였는데
울지마라, 그대여
내 너에게 할 말이 없다.
차마 너를 쳐다볼 수가 없다.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숲
네 안에서 너를 찾았다
네 안에 갇혀있는 것도 모른 채
밤새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헤매 다녔다
벗어날 수 없는 숲
가도 가도 빠져나갈 길은 없다
묘한 일이다
그토록 너를 찾고 다녔는데
너를 벗어나야 너를 볼 수 있다니
네 안에 갇혀있는 것도 모른 채
나는 한평생
너를 찾아헤매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