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감사합니다. 6월 셋째 주 오늘, 이 자리, 당신 앞에 나와 내 앞에서 쉼 없이 달리는 시간과 우리들의 삶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여름을 앞두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니 이번 주 내내 30도가 넘었으니 벌써 여름입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어제 학부 학생들에게 사회적경제 특강을 하면서 오늘의 사회문제,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학생들에게 화두를 던졌습니다.- 경제적 혜택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는가? -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가? - 개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는가? - 생태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 생물 다양성이 보호될 수 있는가? 등등이었습니다.
모두 다 큰 걱정이 밀려오는 사회문제인데, 특히 저는 요즘 ‘생태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에서 큰 숨이 쉬어집니다. 아직 장마 전인데 30도가 넘는 온도에, 난데없는 지진에, 멀리 제주 앞바다에서는 우리들의 귀한 돌고래가 자꾸 사라진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는데,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합리적인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걱정에 관해 이미 돈은, 경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돈 벌면 해줄게’, ‘경제 성장이 되면 다 해결되니까 일단 열심히’라는 말은 학문적으로도, 제 60여 년에 달하는 삶을 돌이켜 보건데 다 거짓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경제 성장을 해서 세계 10, 11위의 경제 강국의 반열이 들어섰지만 사회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더 심오하고, 다양하게 불평등과 배제의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내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상대적으로 늘 부족하고 가난합니다. 돈은 돈이 가는 곳에 모입니다. 그게 자본주의 생리이고, 그걸 부추기는 정치가 있어 돈을 그냥 내버려 두면 좋은 데로는 절대 흐르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경제 만능의 사고방식으로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주님, 그렇다면 우리에게 닥쳐있는 이런 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들을 다음 세대에게 던져두고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유유히 사라져도 되는 걸까요?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넋 놓고 바쁜 시간을 쳐다보며 지금처럼 헐레벌떡, 변명하며 따라갈까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주님,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지혜를 주십시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진지한 시간을 허락하시고 혹시나 내가 놓치고 있는 삶의 중요함은 없을까 생각하게 도와주십시오. 무엇보다 이렇게 문제가 넘치는 우리의 삶 가운데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할 일과 역할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혼자서는 못하니 공동체로 함께 고민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간구가 다름 아닌 ‘기도’임을 알기에 진지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끄소서.
저의 기도에 덧붙어 제 친구 목사님의 기도문을 같이 나눕니다. 이 시는 또 다른 기도입니다. (안선희(2023) 삶이 예배가 되는 우리교회 공동기도 중)
6월은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 되게 하소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전 존재를 던진 먼저 간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게 하소서. 저희는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으로 차려진 밥상에서 깊은 상처를 지닌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을 반찬 삼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아갑니다.
이 시간,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하소서. 이 천년 전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 어루만지게 하소서. 이웃의 야윈 손 잡아주게 하소서. 따뜻한 말, 애정 어린 시선 건네는 걸 넘어 이웃의 떨리는 손 붙잡아 주게 하소서, 저희 연약함을 성령께서 도우소서. 그리스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