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달맞이 가시던 날
글밭 박덕규
1969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동짓날이었다.
동지 팥죽 맛나게 잡수신 우리 할머니 굴뚝 연기 따라 하늘 길 떠나셨다.
너무나 깨끗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시고
파란 하늘나라로 행복하게 떠나셨습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며 따르던 우리 할머니를 눈물 속에 보내 드렸다.
그동안 몸살감기를 시름시름 앓으시던 할머니께서 며칠 전부터 깨송깨송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오늘이 마침 동지 팥죽 먹는 날 그리고 시골장날이었다.
우리 집 효자 아버지는 싸전에 장사를 가신다며 아침 일찍 장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팥 한말을 머리에 이고 계란 꾸러미를 손에 들고 계셨다.
팥과 계란을 팔아 할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조기를 사러 장에 가시며
나에게 부엌 떼기 숙제를 주신다.
우리 큰 누나는 시집을 가고 작은 누나는 서울에 취직이 되어 간 후로
나는 어머니의 부엌일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땔감나무 해다 나뭇간에 쌓아놓고, 점심 때 맞춰
부엌에 밥솥과 국솥 아궁이에 불 집혀 점심상을 따뜻하게 차려
할머님께 올리라는 숙제를 주고 장으로 가셨다.
나는 어머님의 당부 말씀을 듣고,
엉아는 알지게 위에 왱이 낫 그리고 새끼줄을 지게 받침에 덩그러니 얹고,
나는 싸리 바지게에 대나무 갈퀴를 멜빵에 걸고
우리 형제는 산으로 나무하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나무를 하였습니다.
농땡이 우리 엉아는 낫으로 하기 쉬운 소나무 곁가지를 잘라 나무 한 짐을 하고
나는 솔잎을 갈퀴로 긁어 한 무더기 또 한 무더기 나무를 했지요
나뭇짐을 지고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엉아는 나뭇짐을 두번이나 넘어뜨려 나뭇짐이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비틀비틀 끙끙대며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와 나뭇간에다 부렸다.
개미가 열심히 밥을 물어다 개미굴 창고에 쌓아 놓듯이
엉아와 나는 겨우내 땔감 나무를 열심히 해다가 나뭇간에 쌓아놓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무 두 짐을 해다가 쌓아 두었습니다.
나는 부엌에 들어가 산에서 내가 긁어온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집혔다.
그리고 할머님께 점심상을 정성을 다하여 차려 올렸습니다.
할머니는 조기 생선을 발라서 엉아와 내 밥숟가락 위에 놓아 주신다.
그날 내가 차려 올린 점심상이 우리 할머니와 나의
마지막 점심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엉아는 끝 방으로 가서 책상에서 공부를 하였고
나는 가운데 방으로 가서 밥상을 펴놓고 방학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이웃집 할머니들이 놀러오셨다.
그리고 안방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샛문으로 도란도란 들려왔다.
나는 무심결에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금방 하늘나라에 떠나려는 듯, 말씀을 하신다.
장농 궤를 열어놓고 지난 여름날 어머님이 길쌈을 해서 둘둘 말아놓은
삼베를 꺼내놓고 말씀을 하신다. 내가 죽거든 내가 입고갈 옷은
친구들이 만들어 주게, 그리고 삼베가 몸에 닿으면 껄껄하니 명주 옷감으로
속옷을 만들어 주렴 명주 안감도 내보이셨다.
그리고 나서도 이런 저런 부탁을 많이 친구 분 들께 하시었다.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어깨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하염없는 눈물만이 내 얼굴에 흘러 내렸다.
나는 밖으로 나와 우리 집 큰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작은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안마당에 들어와 뒤꼍으로 가 보았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집 주변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바깥 마당의 빨랫줄을 바라보니 할머니께서 입으시던 빨래가
빨랫줄에 하얗게 널려 있었습니다. 나는 또 대청마루를 쳐다보았다.
너무나 깨끗이 닦여 있었습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샛문 사이로
할머니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엉아와 내가 나무를 하는 사이에 할머니께서는 부엌의 가마솥에 물을 덥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갈하게 목욕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른 날 보다 유난히 우리 할머니 얼굴이 환하게 보였다.
저녁때가 되어 시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님께서는 쉴 사이도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가운데 솥에 동지 팥죽을 주걱으로 젖고 계셨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팥죽 솥 아궁이에 솔잎을 밀어 넣고
부지깽이로 불을 헤집으며 낮에 할머니가 친구 분들께 하신 이야기를
어머니께 모두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어머님은 아무런 말이 없이 팥죽 솥에 주걱만 돌리고 계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아버님께서도 싸전 장사를 마치시고 시장에서 돌아오시고
우리 가족은 동짓날 저녁에 안방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새알 숨 동지 팥죽을 맛있게 먹으며 동지 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애동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시며 팥죽을 맛있게
드시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오늘 낮에 둘째 손자가 점심을 차려줘서
잘 먹었구나 하시며 아버지께 나의 칭찬을 하셨다.
그리고 올해의 동지 팥죽도 맛있구나 하시면서
오랜만에 우리 어머니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저녁상을 물리시며 숭늉을 찾으신다.
나는 부엌으로 가 숭늉을 가져다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숭늉 그릇을 받아든 우리 할머니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낮에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찌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할머니께서는 어찌 몸이 피곤하구나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불을 벽에다 놓으시고 할머니께서 이불에 기대고
편안히 눕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숨소리는 점점 가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내가 부엌에서 고해올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아버지께 전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나와 엉아에게
아랫집 둘째 작은댁과 건너 마을 셋째 작은댁에 가서
식구들을 전부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엉아는 둘째 집 작은댁으로 뛰었고,
나는 잰 거름에 건너 마을 셋째 집 작은댁으로 뛰었다.
동지 달(月)이 하늘 위에서 자꾸만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달리면 달도 자꾸만 나를 따라 달려옵니다.
작은댁 식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우리 할머니는 말씀도 못하시고 가뿐 숨소리도 길어지시고
가끔씩 숨소리가 건너 뛸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부엌으로 나오니 두 작은 어머니들께서 낮에 우리들이
산에서 해온 나무를 가져다가 아궁이에 불을 집히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아련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또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뒤꼍으로 갔습니다.
하늘에서는 동지 달(月)이 우리 집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하늘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이 손자가 그토록 좋아하고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께서
동지 팥죽을 맛나게 잡수시고 하얀 굴뚝 연기를 따라
동지 달(月) 환하게 비추는 하늘 길로 영원히 떠나가셨습니다.
다음날 할머니 친구들 우리 할머니 영전 앞에 엎드려
아이고 형님 나도 데리고 가유
우리도 형님처럼 정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갈수 있도록
하늘에서 도와주셔요. 형님
첫댓글 좋은글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