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내가 담소실에 쓴 글입니다.
나는 찬밥을 좋아한다.
압력밥솥에 밥을 해서 한끼 먹고는 바로 플러그를 빼놓으면 찬밥이 된다
밥을 해서는 전기코드를 빼지않고
다 먹을때 까지 따듯하게 놔두면
시간이 지나니까 밥알이 노르스름하게 색갈이 변해
다시먹기가 께름했다
다음끼니에는 찬밥을 스테인 남비에 꼭꼭 눌러 담아 뚜껑을 닫고
약한 불에 40분 정도 놔두면 뜨끈 뜨끈 새로한 남비밥이 된다
뚜껑을 닫고 위에 보이듯이
약한 불(LO)에 40분 정도 놔두면 뜨끈 뜨끈 새로한 남비밥이 된다
(물은 첨가하지 않는다)
뜨거운 남비밥을 먹고나면 밑에 누룽지가 생겨있다
냄비밥을 다 못 먹으면 다음끼에 그냥 먹던냄비 다시 40분정도 약한불에 데우면
다시 뜨거운 남비밥, 그리고 누룽지는 더 두껍게 된다
물 부어 누룽밥 끓이면 남편도 좋아한다
남편 점심을 간단히 누룽밥으로...
찬밥을 생각하면 엄마 친구딸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생각난다
엄마 친구는 육이오때 남편을 잃으시고 학교 선생님 하시면서
딸을 키우셨는데 같은 학교 총각선생님과 재혼을 하셨다고 한다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었던것 같고
하여간 이딸만 귀하게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딸은 이화여대를 졸업했는데 키크고 날씬하고 인물도 좋았다 한다
1970년 내가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았을때
엄마친구가 엄마한테
"어디서 저렇게 좋은 사위를 봤냐? 우리딸도 중매좀 해"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우리 큰이모가
마침 시댁친척에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간부 (부장?) 이고
곧 일본 지점으로 갈것이라고...
그렇게 맞선이 이루어 졌다
그후 하루는 엄마 친구가 과일을 사갖고 우리집에 오셔서는
"딸이 그남자 정말 싫다"고 해서 안되겠다고...
모처럼 중매 해 주었는데 미안 하다고...
그래서 그런가 부다 했는데
얼마후 결혼한다는 소식이 왔다
교장선생님이신 신부 아버지와
교육감이신 신랑 작은 아버지가 만나셔서는
의기투합 하셔서 결혼을 밀어 부치셨다 한다
간간히 들려온 이야기로는
일본 가서 사는줄 알았는데... 일본은 가지않고
신랑집이 종로엔가 방이 여러개 있는 큰 한옥이었는데
장남 살림을 따로 내주지 않고 그냥 건너방에 신혼살림을 차리게 했다한다.
시댁은 시부모님, 남편, 시동생, 시누이
그리고 시아버지 첩이 낳은 배다른 두 시동생
새댁까지 8식구 였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아주 착한 분이라
첩의 아들을 자기 아들과 똑 같이 잘 키워주었는데...
장남인 신랑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시동생들도 모두 공부를 잘해서
하나는 가정형편을 생각해서 육군사관학교를 갔고
둘은 고려대를 다녔다 한다
식구도 많은데
방이 여러개이니 하숙생도 여러명 있어서
대식구 살림살이 였다고 한다
남편이 시댁생활비, 시동생들 학비를 보태니
남편 봉급 봉투는 구경도 못하고...
시어머님이 개성사람이라 그러신지
(이모 시댁이 개성사람들이시다)
부지런하고, 살림잘하시고
무진장 아끼셔서
시아버지, 시동생들, 하숙생들 밥먼저 챙겨주고
시어머니, 시누이, 며느리등 여자들은
나중에 남긴밥과 찬밥 그리고 남긴 반찬을 갖고 먹었다는데
곱게 자란 이 며느리는 도저히 비위가 상해서 먹기가 힘들었단고...
그렇게 신혼때 부터 불만이 많으니
부부 사이도 않좋아 지고...
어느날 남편이 외박을 했다나...
결국 그녀는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면서
임신을 했슴에도 불구하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한다
남편이 찾아가 빌고 데려오면 좋았을텐데...
시댁에서는 "설마 임신까지 했는데..."
제발로 돌아오겠지.. 한것 같다.
그런데 몇달후 며느리가 아들을 낳아 안고 왔더라고...
시어머니가 어쩜 "생글생글 웃으며 자식을 놔두고는
뒤도 안돌아 보고 가더라"라고 속상해 하셨다고 한다
(속으로야 피눈물을 흘렸겠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은것 같다)
그후 엄마친구댁 이야기는 못들었지만
얼마전 이종사촌 동생한테 그댁 소식을 물어봤다
그 신랑은 그후 재혼을 했는데
두번째는 정말 독한 여자가 들어와서는
시집살이 싫다고 집 얻어 이사 나가버리고
시댁에 생활비, 시동생들 학비 절대 안주고
전처가 낳은 아들도 미워해서
시어머니가 키웠다 한다
시어머니는 첫번째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는데
두번째는 아주 못된 며느리가 들어 왔으니...
"여우를 피하니 호랑이를 만난다" 라던 옛말이 생각난다
그 남편은 두번째 아내가 못되고 독했지만
첫번째 이혼한 아픔 때문인지
묵묵히 아내를 따라 주었다고...
두번째 여자는
남편의 직위도 높아지고...
또 경제적으로 윤택해져서
부유하게 잘 살고 있지만
시동생들등 시집식구들과는 평생 원수같이 쳐다보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엄마없는 손주를 키워주셨는데
시부모가 두분 다
60대 초반... 일찍 돌아가시고
시동생들, 시누이는 대학들 졸업하고, 직장구해 나가고...
종로에 있던 시댁의 큰 한옥은 아마도 큰아들( 두번째 여자) 차지가 됐겠고
시어머니가 키우던 전부인의 아들은 두번째 여자가 키웠는데
아이가 계모밑에서 참 불쌍하게 자랐다고 한다
엄마가 중매를 했는데 그런일이 생겨서 엄마 친구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제는 대부분 엄마 친구분들이 돌아가셨고, 엄마도 정신이 없으셔서
연락할 길이 없지만...
그 분 그후에 새 출발해서 행복하게 살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첫댓글 엄마친구분의 딸얘기는 단편소설같으네요.
자다가 일어나서 머리밑에 있는 랩탑으로 타이핑하는 중인데,
한번 읽어서는 성실한 댓글이 안되겠기에
이따 정신나면 다시 읽고 더쓸께요.
압력밥솥이 오래되면 밥이 노랗게 되어서 저도 얼마전 다시 구입했어요.
한국수퍼나 전자상화보다 큰딸이 인터넷으로 구입해 주면
싸게 살수 있어 10인분 쿠그 압력밥솥을 200달라도 안주고 산것 같아요.
전에 쓰던 쿠구압력밥솥 10인분으로는 김치찜이나 찜종류 음식을 하고 있어요.
밥은 저혼자 먹는 셈입니다.큰딸네나 오면 밥을 많이 하지요.
저는 한공기도 안먹으니 한번 두컵 밥하면 몇번에 나누어 먹어서
저도 밥을 퍼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마이크로오븐에 뎁혀서 먹어요.
남편은 당료때문에 흰칼리훌라워 쌀을 먹거든요.
막내크리스틴은 주로 양식을 먹어요.
그런데 누룽지를 전에는 남편에게 해서 주었는데,
먹을 사람이 없어 요즘엔 안해요.
청이님 이번 글은 꼭 소설을 읽은것 같아요.
커피마시고 정신 차린후 다시 올게요.
오늘은 크리스틴이 아파서 데이케어센타에 안갑니다
그래서 지금 이사간 크리스틴 등교시킬준비 안하고,
도시락을 안싸도 되니 렙탑보는 중이랍니다.
엄마 친구딸...
그냥 참고 견디었으면
시동생들, 시누이 대학졸업하고 직장구해 나갔을 것이고
시부모도 일찍 60대 초반에 돌아가셔
종로에 방많은 한옥의 주인이 되고
또 그집 값이 많이 오르고
남편도 직위가 높아져 잘 살았을텐데...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구박둥이로 고생안 했을 텐데..
참 안타깝고 가엾고.. 또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인생은 순간적인 결정에 달라지는군요.
매순간 우리는 순간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지요.
그 결정을 현명하게 잘하려면 앞서 사셨던
수많은 분들의 경험을 내게 맞는 것으로
접목시킬수 있어야 하는것 같아요.
젊은 시절 자기결정이 가장 맞다는 생각은 오만이지요.
한순간의 결정이 많은 분들에게 영향을 주는 종갓집며느리네요.
사람관계도 마찬가지 이지요.
오래참고 지내다 보면 싫었던 사람도
나중에 관계가 좋게 되지요.
좋은 글 잘보았어요.청이님.
누룽지 안먹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잊고 있었네요.
제 남편은 예전에 한국에서 살때 식당가면 마지막에 누룽지를 주니
아무 맛도 없다며 이게 무슨 맛이냐고 묻더군요.
구수한 맛이 영어로 설명을 할수 없었어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설명할수 없는 맛이라고 했어요.
청이님 어머님 친구분의 따님 이야기 안타깝네요.
가난하게 자라, 못배운 사람도 아니고, 귀하게 자라 대학까지 나왔는데,
대가족에다 하숙생들 뒷바라지까지 하고,
남은 음식 먹어라고 하니, 1-2년 살면 끝날 일도 아니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그만 두었는것 같으네요.
결혼할때 결혼하면 어떻게 할건지 알아보고 결혼했어야 했는데.
착한 사람 막 대했다 호랑이 며느리/부인을 만난 그 사람들 본인들 잘못이고,
어린 아들두고 가면서 마음이 찢어졌을텐데, 그래도 잘 살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