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王侯將相] 5. 策功茂實 勒碑刻銘 (책공무실 늑비각명)(백우)
【本文】
策功茂實 勒碑刻銘 책공무실 늑비각명
공적을 기록하고 실적에 힘쓰게 해
그 공적을 비에 새겨 비석을 세웠도다.
【訓音】
策 꾀 책 功 공로 공 茂 성할 무 實 열매 실
勒 새길 륵 碑 비석 비 刻 새길 각 銘 새길 명
【解說】
지난 장에서는 세록지신(世祿之臣)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상을 묘사하했는데, 이번 장에서는 국가에 공로를 세운 사람들은 그 공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려고 공적비를 세웠던 사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공무실(策功茂實) 공적을 기록하여 실적에 힘쓰게 해 우선 글자의 자원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책(策)은 죽(竹) + 자ㆍ극(朿)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자(朿)는 가시를 본뜬 모양으로, 책(責)과 통하여 '책(責)하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책(策)은 말을 책[朿]하는 대[竹], '채찍'의 뜻입니다. 또 책(冊)과 통하여, 문자를 적는 '대쪽'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본뜻은 '말채찍'이지만 '대쪽, 책, 꾀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功)은 역(力) + 공(工)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공(工)은 '공작(工作)하다'의 뜻이고, 역(力)은 힘을 뜻하니, '일, 공적'의 뜻을 나타냅니다.
무(茂)는 초(艸) + 무(戊)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무(戊)는 '덮다, 무성하다, 우거지다'는 뜻이니, 풀[艸]이 뒤덮어[戊] '우거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실(實)은 면(宀) + 패(貝) + 주(周)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주(周)는 '널리 미치다'의 뜻이니, '집[宀]안에 재화(財貨. 貝)가 널리 미치다'의 뜻에서, '가득 차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는 면(宀) + 관(貫)의 회의자(會意字)로, '집[宀]안에 화물(화물, 貫)이 가득 차 있는 형상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원뜻은 '차다, 옹골차다'의 뜻인데, 속이 꽉 찬 것은 열매이므로 전용되어 '열매'란 뜻도 나타냅니다.
책공무실(策功茂實)은 공적(功績)을 기록하여 실적에 힘쓰게 했다는 말입니다.
책공(策功). 기적왈책공(記績曰策功)이라 했으니, 공적(功績)을 기록하는 것을 책공(策功)이라 합니다. 무실(茂實). 무실무실야(茂實懋實也)라 했으니, 실적(實績)에 힘씀을 말합니다.
따라서 책공무실(策功茂實)은 공적을 책록(策錄) 즉 기록하여 실적에 힘쓰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힘써 실적을 쌓은 이에게는 상을 주었던 것입니다.
《서경(書經)》『상서(商書)』「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惟王은 不邇聲色하시고 不殖貨利하시며 德懋懋官하시고 功懋懋賞하시며
유왕 불이성색 불식화리 덕무무관 공무무상
用人惟己하시고 改過不吝하시며 克寬克仁하사 彭信兆民하시니이다.
용인유기 개과불린 극관극인 팽신조민
"왕께선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재물과 이익을 증식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덕이 많은 사람에게 힘써 벼슬을 주시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힘써 상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을 등용하심에 있어 자기처럼 하시고 과오를 고치시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관후(寬厚)하시고 인자하시어 믿음을 밝히심으로써 백성이 따르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덕무무관(德懋懋官) 공무무상(功懋懋賞)'에서 '무'(懋)'가 거듭 쓰였는데 앞의 '무(懋)'는 '성대하다, 많다'의 의미로 무(茂)와 통하고, 뒤의 '무'(懋)'는 '힘쓰다'의 뜻이니, 무(務)와 통합니다.
책공무실(策功茂實)은 공적(功績)을 기록하여 실적에 힘쓰게 하여 공적을 쌓은 이에겐 상을 주었다는 의미까지 포함된다 할 것입니다.
또, 책공(策功)에서 책(策)은 책모야(策謀也)라 했으니, 책(策)은 '도모하다'라는 말이고, 공이로정국야(功以勞定國也)라 했으니, 공(功)은 '힘써서 나라를 평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무실(茂實)은 무성충실(茂盛充實)의 약어로 '성(盛)하고 충만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책공무실(策功茂實)을 '큰 공이 이루어지도록 꾀하여 그 공이 무실(茂實)해지면, 즉, 크게 이루어지면'이라고 새기기도 합니다.
늑비각명(勒碑刻銘) 그 공적을 비에 새겨 비석을 세웠도다.
늑(勒)은 혁(革) + 력(力)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역(力)은 '힘'의 뜻이고 혁(革)은 '가죽'을 뜻하니, 힘[力]을 들여 말의 움직임을 억누를 수 있는 가죽[革], '굴레'의 뜻을 나타냅니다. 본뜻은 '재갈을 물리다'라는 뜻인데 '굴레'의 뜻으로 쓰이고, '억누르다, 다스리다'로 활용되었고, '새기다'의 의미로도 전용되었습니다.
비(碑)는 석(石) + 비(卑)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비(卑)는 '낮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비(碑)는 낮게[卑] 세워 놓은 돌[石]의 뜻을 나타냅니다. 본디, 해시계나 희생을 매어 두는데 썼으나, 뒤에 글자를 새겨 놓은 '비석'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각(刻)은 도(刀) + 해(亥)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해(亥)는 기(己)와 통하여, '센 힘이 들어가다'의 뜻이고, 도(刀)는 '칼'이니, 칼[刀]에 힘을 주어[亥] '새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명(銘)은 금(金 + 명(名)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명(名)은 '이름을 대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명(銘)은 '금속[金]에 이름[名]을 새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새기다' 혹은 '새긴 글'을 나타냅니다.
늑비각명(勒碑刻銘)은 빗돌에 비명(碑銘)을 새겨 비석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늑비(勒碑)란 '비석에 문장을 새김'을 뜻합니다. 각명(刻銘)은 '금석(金石)에 명(銘)을 새김', 또는 금석에 새긴 명(銘)'을 말합니다. 명(銘)은 '금석(金石)에 새긴 글'을 말합니다. 명기야(銘記也)라 했으니 명(銘)은 기록(記錄)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기록하느냐 하면 공적(功績)을 금석(金石)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공적을 새긴 글을 말합니다.
늑비각명(勒碑刻銘)은 신하들이 나라에 공을 세우면 이를 널리 표창(表彰)하기 위하여 그 공적(功績)을 글로 써서 찬탄하고 그 글을 돌에 새기어 비를 세웠음을 묘사한 것입니다.
천자는 신하들이 공훈을 세우면 이를 책에 기록하게 하고 실적에 따라 포상하고 또 그 공훈이 지대하면 공적(功績)을 만세(萬世)에 전하기 위하여 빗돌에 그 공적을 새겨 공적비(功績碑)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는 공신들을 예우하는 한편 다른 이들로 하여금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금석에 새겨 넣은 글을 금석문(金石文)이라 하는데, 이렇게 새겨진 글은 오래도록 보전되어 후대에 전해져 오늘날에도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은 전국을 통일한 후 천하를 돌며 도처에 공신의 이름을 새기고 비를 세워 그 공적을 만세에 전하고자 했습니다.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은 남으로 가야를 병합하고 한강유역을 확보한 후 함경도까지 진출하였는데, 진흥왕은 후에 이를 순수(巡狩)하며 순수비(巡狩碑)를 세웠습니다. 이는 확보한 영토, 척경(拓境)을 방문하여 이를 기념하고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순수기념비(巡狩記念碑)를 세웠던 것입니다.
인도의 아쇼카왕은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약 200년 후, 기원전 약 250년 경에 인도를 통치했던 호불성왕(好佛聖王)인데, 인도 전역과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바위와 돌기둥에 글을 새겼습니다. 이를 우리는 아쇼카 석주(石柱)라 부릅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글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담마칙령'이라 합니다. 그는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지마다 석주(石柱)를 세워 부처님을 찬탄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겨 전쟁없는 평화로운 이상세계를 건립하고자 힘썼던 왕입니다.
이와 같이 돌에 글을 새겨 비를 세움은 모범이 될 공적을 찬양하고 그 공적을 만세에 전할 뿐만 아니라, 또 그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상 책공무실(策功茂實) 늑비각명(勒碑刻銘)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