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현실에서 분리되면, 우리는 주지주의와 추상화에 휘둘리도록 만들어 그 아이를 완전히 망치는 겁니다 (발도르프 교육예술, 2017, 117)."
사실 현재 발생하는 모든, 거의 모든 문제가 대부분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에서 비롯된다. 물론 대부분 이를 믿지 않겠지만, 필자가 슈타이너를 연구하면서, 또 현장에서 아이들을 오래 가르치면서 얻은 결론이다. 인류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반드시 체험해야 이해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그래서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가 된 것이 두 번째이다. 필자는 인류가 이렇게 정신을 인정하지 않은 것 또한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을 요즈음 한다. 그러므로 인류가 그렇게 했더라도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자아가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 발생해서 점점 갈수록 늘어나는 정신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수포자, 학교 폭력, 정신병(우울증, 공황장애, ADHD 등등)이 모두 자아가 길을 잃은 결과이다. 그러므로 가장 핵심적인 처방은 자신의 자아를 살펴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 필자가 단언하건대 어떤 다른 방법을 써도 근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필자의 체험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동네 치과 병원에 임플란트를 하러 갔다. 의사가, 필자 임플란트가 조금 어려운 수준이니, 더 좋은 병원을 소개해 줄테니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병원 원장에게 자신도 자주 가서 배운다고 했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었고, 또 필자가 그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이미 하나 했기에 믿고 갔다. 가서 검사를 하고 임플란트 수술을 하기 전에 주는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았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마약을 먹으면 발생하는 증상이 나온 것이다. 뉴스에서나 듣던 마약 증상을 실제로 경험하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또 마약 중독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거의 정신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뉴스에서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것은 마약을 처음 경험한 충격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렇게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강력했다. 물론 항정신성 약물로 실제 마약보다는 강력하지 않았겠지만, 필자가 처음 경험한 마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또 필자가 약을 먹을 때 의사가 약에 대한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으므로 더욱 놀란 듯하다. 몹시 분노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자신을 살펴서 이 충격을 이겨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충격에 빠지지 말고 충격을 가만히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했고, 걷기, 음식 등을 적절하게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마약성분이 빠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네이버 검색을 해서 약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삼진 디아제팜 5밀리그램 2알을 복용했는데, 이 약이 항정신성 약물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구하는 약으로, 한 마디로 정신병 환자에게 주는 마약이다. 또 수면 임플란트 시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필자는 수면 임플란트를 원하지도 않았고, 또 수면 임플란트에 대해서 듣지도 못했는데, 자다가 똥물을 한 바가지 덮어쓴 느낌이다. 약을 먹고 효과가 없어지는 반감기가 10일 정도, 두 알이니 20일이다. 오늘이 20일째 날로 약기운이 빠져나가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현재는 감기약을 먹으면 멍한 기분 꼭 그런 기분이다. 돌이켜 보니 마약을 먹는 사람들의 기분도 그대로 느꼈고, 그들이 느끼는 한 순간 나락에 빠진다는 그런 느낌도 느꼈다.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면 그때의 흥분을 다시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 여기에서 자아가 길을 잃으면 또 다시 그런 마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하게 될까'를 생각해 봤다. 첫째, 자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살펴서 나쁜 행동, 나쁜 감정, 나쁜 사고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자아가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다만 내가 하는 행동과 정서 사고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즉 내가 나의 자아를 이끌어야 한다.
둘째, 여기에 욕망이 등장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는데, 그런 감정(흥분 감정)을 체험했으므로 또 그런 감정을 원하는 것이다. 마약으로 느끼는 감정이 일상에서 느낄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감정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필자처럼 모르고 접해도 결과는 똑같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마약상들이 접근해서 이런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돈이다. 돈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파는 것은 물론이고 그 결과는 자신의 앞날도 분명 팔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정신의 속성이 모든 존재가 나와 같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곧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되겠지만 정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속성에 맞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 정신이 발달한다. 결과 자신의 삶이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빠져도 알기 어렵다. 확신하는 데에 이것이 저주로, 저주의 가장 올바른 해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모르옵나이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훌륭해서 이렇게 까지 상대를 배려하는 분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겪어보니 느꼈는데, 이는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한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같은 훌륭한 분은 정신적으로 수련을 아주 많이 한 '정신' 수준이 매우 높은 분이다. 정신 수련을 많이 한 분은 감각 세계에서 느끼는 수준과는 다르다.
감각 세계에서의 만남은 상대를 보고 상대를 '감각'으로 파악한다. 감각으로 파악한다는 말은 대상의 허상을 본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감각세계에서 정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반면 초감각적인 세계에서의 만남은 상대를 보고 순간 상대와 하나가 된다. 그래서 상대의 본질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같이 정신수련이 뛰어난 분은 상대를 만남과 동시에 상대와 하나가 된다. 그러면 누구라도 자신을 해하는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가 있다. 이 경우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은 '독'이다. 그 독이 상대에게 그대로 미칠 것인데, 이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하게 되면 예수님 자신의 마음도 죄를 짓지 않게 되어서 업이 안 쌓이고, 상대에게도 그 독이 퍼져 나가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은 정신 수준이 높아서 순간적으로라도 상대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안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순간에 이렇게 말하면 자신도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한 예수님의 '정신' 수준이 높은 것이다. 정신은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반드시 체험을 해야 이해를 한다. 그래서 계율이 나온 것이다. 계율을 지키면 이렇게 체험하지 않더라도, 정신의 발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셋째, 욕망이 생기면 그것을 충족하려고 한다. 그것을 막는 방법이 봉사와 보시이다. 봉사와 보시를 하면 정신(자아)이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욕망이 상쇄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희생해서 하는 봉사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넷째,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지금 나의 생활을 힘들어하고 짜증이 나면 뭔가 그것을 해소할려는 욕망이 생긴다. 이때 내 생활에 감사하면 그런 욕망을 자아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벌집 자제들이 마약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마지막, 되풀이 하지만 자신의 자아를 언제나 살펴서 자신이 이끌어야 한다. 문제는 자아가 현실에서 상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아를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하지만 이때는 자신의 자아에게 호기심과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또는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가' 등등 질문을 하면은 자아가 자신을 이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자아라도 자신을 마약과 같은 일을 먹거나 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약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자아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아에게 길을 제시하면 된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정신이 올바르게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정신과학적 요소 중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발달시켜야 한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이다. 육체는 0-7세까지 발달 기간이고, 에테르체는 7-14세 까지, 아스트랄체는 14-21세까지, 그리고 자아는 21세에 태어나 자신의 삶을 이끈다. 이 중에서 어느 부분 발달하지 못했다면, 그 시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위 문장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정신이 발달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현실에서 분리되면, 우리는 주지주의와 추상화에 휘둘리도록 만들어 그 아이를 완전히 망치는 겁니다'. 정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현실에서 분리되고, 그 결과가 주지주의와 추상화이다. 그렇게 주지주의와 추상화가 되면은 아이의 정신은 '완전히' 망가져서 아이를 '완전히' 망치게 된다. 정신이 추상화, 주지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정신에 다가가는 방법, 정신의 속성에 맞는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 예컨대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인간의 정신은 먼저 전체를 파악하고 그 다음 부분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통상 부분에서 출발하니 아이의 정신이 깰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 정신이 여기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나마 이어져 올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정신도 그동안 서양 교육으로 인하여 많이 손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자신이 지금 어렵다면 먼저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외부에 휩쓸리지 않을 수가 있다.
어떤 경우라도 정신은 발달하거나, 멈추어 있거나, 뒤로 나아가고 있다. 잘 파악해서, 살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