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8복에 대해서..이석봉 목사 칼럼
팔복에 대한 가장 좋은 글이 잇습니다. 올립니다.
크리스천, 복의 촛점이 무엇인가? 이석봉
복이 무엇인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복인가? 맞다 땅위의 복이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인가? 잘먹고 잘사는 현세를 넘어서 다른 차원의 복이 있음을 성경은 가르친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을 깨달으려면 복을 먼저 말하기 전에 성경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예언은 성취로 해석해야 한다.
구약은 예언의 책이요 신약은 성취의 책이다. 구약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요 신약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성취의 책이다.
둘째, 도덕법은 계승되고 의식법은 폐지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구약의 모세 오경은 율법으로 도덕법과 의식법으로 되어 있다. 의식법인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단번의 제사의 성취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도덕법은 죄를 깨닫고 범죄를 막기 위해 남겨졌다.
셋째, 율법(모세)은 복음(예수)을 통해 해석되어져야 한다.
구약을 비롯해 성경의 모든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로 해석해야 한다.
복의 첫번째 촛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구약의 복 "바라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여기에 구속사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에게 강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그러면 큰 민족이 육체적 숫자적인 큰 민족이냐? 아니면 영적 위대한 민족이냐? 이다. 영적 위대한 민족이다. 이유가 이어서 나온다. 이름이 창대케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의 원인이 무엇인가? 구원론적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됨을 말한다.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와 연결되는 복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칭의되고 영화롭게 되는 모든 은혜가 복인 것이다(롬 4장).
복의 두번째 촛점은 성령화된 삶이다.
성령은 거듭나게 하는 영이다(요 3:108). 또한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갈 5:22-24) 그리하여 영적인 복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한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 전에 심령의 복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그것이 산상수훈의 8복이다(마 5:3-10).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복음전파를 위한 충만한 기름 부으심이라고 한다면 산상수훈의 실천을 주도하실 성령님은 성도의 내적 변화를 일으키시는 성령님을 보여주신 것이다.
1. 심령이 가난하여 천국을소유하는 것, 2. 애통하여 위로를 받는 것, 3. 온유하여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 4. 의에 주리고 목말라 배부르게 되는 것, 5. 긍휼히 여겨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 6.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 7. 화평케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8.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제 이 8복을 도덕 윤리적으로 해석할 것이냐? 구속사적이며 영적으로 해석할 것이냐이다. 당연히 구속사적이며 영적으로 해석해야 옳은 것이다. 모두가 도덕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1.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마음이요.
2. 애통하는 마음은 죄와 허물에 대한 회개하는 마음이요.
3. 온유한 마음은 구속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이요.
4. 의에 주림의 마음은 법정적인 의(디카이오쉬네)에 대해 목마름의 마음이요.
5.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의 긍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6. 청결한 마음은 경건과 거룩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마음이요.
7. 화평케 하는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려는 마음이요.
8. 의(디카이오쉬네)를 위해 핍박을 감당하는 마음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순교적 마음이다.
이 땅의 복을 비는 행위나 상징인 기복은 기독교의 복이 아니다. 이 땅의 복을 기원하는 신앙인 기복신앙도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다. 이 땅의 복은 땅의 것으로 충족하고 자랑하려는 출세지향적이요 성공지향적인 것들을 말한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는 삶을 말한다. 우리들의 바램이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일하시기를 원하느냐,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기복신앙이냐, 하나님 주권신앙이냐 하는 방향 설정의 바로미터가 된다.
야곱이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땅의 축복권을 빼앗고 거부가 된 것을 기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선택과 주권적 행사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롬 9:13)
산상수훈은 성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선택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님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영적 삶의 복이요 지침인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의 진정한 복이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나 출세적인 것이나 그리고 도덕적인 것이나 심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한 영적인 것이며 구속사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인간 내가 주도적으로 행사한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8복의 행위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의 촛점(1 focus, focal point 2 point)은 오직 성령님이 주도하시는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8복의 행위자는 내가 아니며 나의 윤리가 아니다. 성령님의 주도적 은혜라는 말이다. 내가 주도하는 도덕이나 윤리는 언제든지 가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전하신 성령님이 내 속에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실 때에는 그 열매가 온전케 되며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복이 될 것이다. 크리스천의 복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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