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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규칙을 만드는 사람 규칙을 깨뜨리는 사람(Rule makers, rule breakers)’인데, 아마도 여러 사회를 비교하여 내용에 맞춰 번역본의 제목을 정한 것이라 여겨진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국가 혹은 지역들의 규칙에 대한 태도를 비교 분석하여 그것을 ‘선(rule)’을 지키는 정도에 대입시켜 논하고 있다.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제1부는 ‘근거: 근본적인 사회력의 힘’이란 제목으로 저자가 이미 연구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33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규범과 처벌의 전반적인 강도를 평가한 다음, 그것을 수치로 환산하여 각 사회를 ‘빡빡함’과 ‘느슨함’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설문에 참여한 사람이 7천여명이라고 하니, 아마도 한 나라에서 2백명 이상이 참여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가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조사한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관습을 포함한 규범 준수의 구체적인 상황을 수치로 변환시켜 ‘빡빡함’과 ‘느슨함’이라는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 ‘근본적인 사회력’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제시한 ‘빡빡함’과 ‘느슨함’이라는 용어는 두 사회를 비교하여 내린 상대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즉 전반적으로 ‘빡빡함’으로 규정된 국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비교하여 논한다면, 그중 어느 사회는 ‘느슨함’으로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치밀한 조사를 통해 내려진 연구 결과에 동의할 수가 있지만, 용어가 지닌 ‘모호함’으로 인해서 특정 집단 하나만을 조사하는 분석틀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1부에서는 조사 방법의 근거를 제시하는 내용으로,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각국의 문화적 차이와 저자가 분석틀로 사용하는 ‘빡빡함’과 ‘느슨함’을 평가하는 기준 등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서로 다른 국가의 문화를 비교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드러나지만, 한 사회에서도 규칙 준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집단 혹은 지역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한 사회의 규범에 대한 인식을 통해 ‘빡빡함’과 ‘느슨함’으로 구분하여, 그 사회의 특징을 일반화하여 규정한다는 전제에 동의할 때 저자의 방법론에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본론인 2부에서는 ‘분석: 우리 주변의 빡빡함과 느슨함’이란 제목으로, 주로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이 기준을 적용하여 분석하고 있다. ‘미국 주들 사이의 전쟁’이라는 첫번째 항목의 소제목에서 드러나듯, 일차적으로 미국 50개주를 이러한 기준으로 구분하여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2016년 미국 대선 결과와 연결시켜 적용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최근 극우적인 시각으로 문화전쟁을 선택한 트럼프의 전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4년 전과는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어서 ‘노동자 계층과 상류 계층’이라는 제목을 통해, 경제력의 유무에 따른 삶의 방식과 규칙에 대한 태도의 빡빡함과 느슨함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회사와 같은 조직의 규범에 대한 태도를 적용하여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각 개인을 진단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2부의 주요 내용이라 하겠다. ‘당신의 조직은 빡빡한 편인가, 느슨한 편인가’라는 항목에서는, 독일계 다임러와 미국계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인해 두 회사 사이의 문화 차이가 어떤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예로 들어 설명을 시작한다. 빡빡한 문화의 다임러 직원들과 느슨한 문화의 크라이슬러 직원들의 결합은 시너지를 내기보다 오히려 사사건건 부딪혀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고 다시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직 문화는 각 나라의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도 있고, 또한 사업의 성격에 따른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노조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의 ‘삼성’이라는 회사는 빡빡함의 대명사로 여겨질 수 있으며, 벤처 회사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등 느슨한 문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한 조직 내에서도 빡빡함을 견지해야 하는 부서와 느슨함을 유지해야 하는 부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할 때, ‘당신은 빡빡한 사람인가, 느슨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독자들 스스로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조직에서의 각자의 역할은 개인적 성향도 고려해야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향이 조직이나 부서의 특성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여겨진다.
이어지는 3부의 제목은 ‘적용: 변화하는 세계의 빡빡함과 느슨함’이다. 시민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이집트가 다시 독재자를 선택하고, 마약과 무질서가 판을 치던 필리핀에서 막말과 불법을 조장하는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현상을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소련 붕괴 후 민주화된 러시아에서, 최근 철권통치를 자행하는 푸틴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안이 높은 찬성 비율로 통과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저자는 이들 국가의 특징을 본래 빡빡한 사회가 자유로 인한 느슨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시 빡빡함을 추구하여 결국 독재나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용’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그 마저도 빡빡함 혹은 느슨함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지의 결론은 ‘사회 규범의 힘을 활용하라’이며, 그 내용은 사회 규범을 통하여 빡빡함과 느슨함의 중용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것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결과는 쉽게 예견된다. 즉 두 사회를 비교하면 그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한 사회의 문제만을 논할 때 그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내릴지에 대해서는 분석자마다 견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일반화가 지니는 문제점들을 인식하면서 읽는다면, 결국 규범에 대한 인식이 개인과 사회의 빡빡함을 살필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겠다. 용어 자체의 모호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저자의 방법론은 서로 다른 문화와 규범이 존재하는 사회집단을 비교하는 유용한 분석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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