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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가 강고하게 지배하던 조선시대를 지나, 근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에게 여전히 남성중심의 제도와 문화는 커다란 질곡으로 작용했다. 근대의 지표를 '개인의 발견'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한 사람의 주체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자신의 주체를 자각하고 당당한 개인으로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은 때로는 대중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온갖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그들의 찬란하고 짧은 활동의 종착역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미치거나 혹은 죽거나’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건축가로서 저자는 우리의 근대 건축물을 통해서, 그 속에서 살아갔던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당시의 대중매체에서 활발하게 조명을 받았던 여성들의 모습이 비극적인 것으로 귀결되었던 경우가 많았지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장소’에서 오히려 더 굳세게 살아갔던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 지어진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이 바로 그러한 장소였던 것이다. 저자는 ‘건축과 젠더’라는 주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근대 공간’에 관한 내용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당시에 ‘변화를 원하고 변화가 필요했던’ 이들로, ‘가난하고 못배운 비주류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지만, ‘실패할지언정 뜻대로 살며 자신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이라 할 수 있다. 몇몇 인물들의 경우 이미 충분히 연구되고, 때로는 작가로서 혹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예컨대 소설가인 강경애와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작품으로 소개된 노동운동가 강주룡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밖에도 최초의 여성 신문기자로 알려진 최은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허정숙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나 덕성여대를 창립하여 교육 운동에 헌신한 차미리사 등의 인물도 해당 분야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각각의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장소’와 연결시켜 논하다 보니, 그들이 활동할 수 있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겠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자는 여성사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시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이라 붙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체제를 ‘소설 형식’을 취했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새삼 우리 근대 여성사에서 기독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간단히 덧붙이고자 한다. 근대 초기에는 매우 기득권에 도전하면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던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이, 지금 이 시점에는 남성중심적인 강고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가장 보수적이고 반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 가운데는 그러한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들 공간이 환기하는 이미지는 이미 기득권에 젖어들었다고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제는 단지 특정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모든 이들이 남성과 여성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당당히 활동할 수 있도록 의식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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