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경계를 뛰어넘은
정지용과 오장환 시인을 찾아서
박성식
10월 16일 오후 1시 팔달역 앞에서 모였다.
어제저녁부터 소년이 되어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만남이다. 내비게이터는 자꾸 고속도로로 가자고 한다. 남자는 자고로 3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데 나는 옛 추억을 그려보려고 상주까지 국도로 가자고 고집하였으니 내비게이터와 기사님께 미안하다.
청잣빛 하늘은 뭉게구름을 띤 맑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길옆 숲속엔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볼그레 얼굴 붉힌 단풍들이 손짓한다.
아 ~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은군 마로면 오천리! 동화 속의 펜션이 딱 버티고 있었다.
솔향 폴폴 풍기는 솔숲과 참나무 숲속에 그림 같은 2층 양옥이 수려한 모습 뽐내고 있고 아래채 처마 양쪽에는 차곡차곡 정성껏 쌓은 장작더미가 정겹고 따사롭다.
청량하고 상큼한 공기에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여기가 바로 우리들의 천국이로다.
펜션의 난로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문우님들의 열정 넘치는 시와 시조 발표가 있었다.
동료 시인들과 교수님의 서릿발 같은 합평회는 정예시인으로의 자질이 한층 더 다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자작시 낭송을 통한 상호학습은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에게 필수적이다.
우정의 글 향과 솔향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알찬 연찬회였다.
이글거리는 캠프파이어 불꽃 속에 붉게 타오르는 문학의 열정이 뜨거웠다.
문세인들은 뜨거운 우정에 취하고 지글거리는 삼겹살과 소주에 취했다….
그 저변에는 문 회장과 허 충무의 치밀하고 살뜰한 봉사 정신이 숨어 있었다.
아름다운 오천리 펜션!
옛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몽진 왔다가 간 곳으로 산수가 수려한 명당의 길지로 우리 문세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음 날 문학관 기행을 떠났다. 먼저 도착한 곳이 오장한 문학관이었다
오장환 문학관은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 있는 문학박물관이다.
보은군 출신의 시인으로 알려진 오장환(1918~1951) 문학관으로 2006년 10월에 개관하였다. 월북 시인으로는 처음 개관되었으며 맞은 편에는 오장환이 태어난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학력은 안성 보통학교, 휘문 고등보통학교, 메이지대학 전문부 중퇴이며 저서로는 성벽, 헌사, 병든 서울, 귀촉도, 고향 앞에, 등이 있고 데뷔 시는‘목욕간이 있다.
경력으로 문학 대중화 운동위원회 회원, 조선 문학가 동맹, 자오선 동인, 시인부락
동인, 낭만 동인 등의 경력이 있다.
문학관 내에는 전시실, 문학 사랑방, 영상실, 홀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시실에는 동시 액자 11점, 사진 자료 20점, 시인 기증서 9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10월에는 이곳에서 오장환 문학제가 열린다.
마침 운이 좋아 오늘부터 문학제가 시작되는데 아동들의 동시 짓기 대회도 열린다 하니 이곳 아이들은 자기들의 고향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애향심과 향토에 대한 자긍심을 기르는 좋은 기회다.
오장환 시인은 회인면의 관광수입을 증대시키고 학동들의 꿈과 자존심을 기르는 구실을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삼년 산성으로 달렸다.
삼년 산성은 사적 제235호 충북 보은군 보은읍 동쪽 오정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 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쌓았고 소지왕 8년(486년)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구미시 선산읍)의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개축하였다고 한다.
성을 다 쌓는 데 3년이 걸렸으므로 삼년 산성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성의 길이는 1680M, 높이 13~22M, 너비 8~10M, 성의 면적은 22만 평이나 되고 석축을 쌓을 때는 우물정자(#)로 엇물려 쌓고 과학적 설계로 1500년을 지켜온 견고함이 돋보여 신라엔 삼국을 통일의 기점이 된 성이다.
신라는 진흥왕 이전부터 여러 곳에 산성을 쌓아 전쟁을 준비했는데 신라의 산성중에서 전략상 가장 중요시되는 산성으로 신라 축성술의 총집합체며 산의 요새로 철옹성이다.
태종 무열왕은 당나라의 외교사절도(왕문도 도독) 이성에서 맞이하여 자랑하고 전략을 의논하였다고 한다.
삼년 산성은 오정산의 능선을 따라 문지 4개소, 옹성 7개소, 우물 5개소, 교란된 수구지(퇴수로)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인 삼년 산성을 축성한 지혜와 관민이 합심하여 이룩한 공적은 위대하다.
그러나 삼 년 동안 민초들의 피와 땀 눈물과 한으로 쌓은 삼년 산성을 보니 백성들의 아픔과 충성심에 감격하여 눈시울이 붉혀졌다.
언제나 민초들이 앞장서서 이 나라를 지겨웠으며 인간의 힘은 무한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 차는 옥천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옥천에 정지용 문학관을 찾았다.
정지용 문학관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관공서에 위치하고 있다.
섬세한 이미지 표현과 서정적인 언어연구사로 한국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정지용(1902.5.15. ~ )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문학관이다. 2005년 5월 15일 정지용의 생일날에 맞춰 개관하였다. 대지면적 1,217㎡ 건물면적 426㎡의 지상 1층 건물로 생가와 이웃하고 있다.
정지용 문학관은 문학전시실, 문학체험 공간, 영상실, 문학교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에 들어서면 안내대 오른쪽으로 정지용 밀랍인형이 벤치에 앉아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관을 들어가면 먼저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문학전시실은 주제별로 지용 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 문학지도, 시․ 산문집 초간본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정지용은 1920년대~1940년대에 활동했던 시인으로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 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수, 바다와 거리, 나무와 산, 산문과 동시 등 주제별로 살펴보며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대표적인 시 ‘향수’는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른 듀엣 노래로 국민가곡이 되었다. 이동원의 다정한 목소리와 멀어져간 고향을 쫓는 듯 애절한 박인수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노래 ‘향수’는 온 국민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지용 시인은 이 노래로 인하여 국민 시인의 자리를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잊혀가던 고향 옥천의 정경은 이 노래로 인하여 우리 온 국민 마음속에 다시 태어났다고 본다.
시․ 산문집 초간본 전시에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 시선, 문학 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 산문집 원본을 전시하여 당시의 상황을 느껴볼 수 있었다.
백록담은 주로 산을 소재로 다룬 시편들로 모두 33편의 작품으로 엮여 있다.
작품들은 정지용 시인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 자연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차분한 마음으로 세계를 관조하고 있다.
정지용 연구서 코너도 조성되어 있어서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현대 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되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문학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정지용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 문학관 기행은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 현대 시사 등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쌓아가며 문학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었던 뜻깊은 기회였다.
마침 우리 문세 문학관 기행단은 운이 좋았다. 정지용 생가의 황소 조각상 앞 잔디 광장에서 축제행사에 참여한 여고 학생들의 환영 현악합주를 즐길 수 있었다.
충청북도 옥천의 정지용 문학관, 보은의 오장환 문학관, 삼년 산성을 탐방하면서
우리 조상님들과 문학계 선배님들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애국 애민정신의 혼이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큰 북소리로 울려 퍼진다.
한 사람 문인의 힘도 풀뿌리 민초의 힘도 위대하다.
일선의 목민관들, 교직자들, 학부모님들, 학생들도 이 북소리에 귀 기울이었으면 한다.
내 가정 내 고장을 위하여 내 나라를 위하여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작가는 작품으로서 말한다는 것을 느꼈다.
뻐대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하여 자강불식 自强不息하는 문세인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문학기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도 종종 문인의 자세를 가다듬고 단련의 기회를 가지려고 문학기행을 떠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