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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을 주러 왔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
선생보다 높은 제자?, 주인보다 부유한 종?
세상엔 자신을 예수의 제자로 칭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스승인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비천하게 사셨는데, 그의 제자들은 시종 높은 지위를 꿈꿉니다. 주인이 예수께서는 머리 둘 집 하나 없이 가난하셨는데, 그의 종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호화로운 집을 필요 이상으로 여러 채씩 소유하려 합니다. 선생께서는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제자들은 권력을 더 차지하고자 여념이 없습니다. 주인은 모든 것을 다 버렸는데 종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더 가지려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많아질수록, 주님의 종이 늘어날수록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자들이 성공한 자리에 올라야 선생인 예수의 권위가 선다고 말입니다. 가진 것이 풍족해야, 그분의 종인 우리는 주인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식의 논리가 옳다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되는 제자들이 금이나 은이나 동을 넣은 전대를 지니는 것을 금하신 예수의 명령(10:9)은 잘못된 것입니다. 두 벌 옷이나 신도 없이 초라한 행색에 방문한 집에서 주는 대로 얻어먹으라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10:10)도 틀렸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선생(주인)만큼이면 족하다 (24-25절)
스승의 명에 따라 이스라엘의 여러 고을로 복음을 증언하러 떠나는 열두 제자들에게(마10:1-12),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10:16)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보낸 제자들이 곳곳에서 거절당하고, 오해와 미움을 받으며, 핍박당하리라는 것을 아십니다. 제자들이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행색이 초라하고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돈과 힘을 숭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하늘나라)”를 전파하기 때문입니다(10:7). 세상이 예수를 싫어하고 배척하고 죽인 이유도 똑같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돈과 권력이 주인으로 행세하는 세상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6:24)라거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4:10)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10:1, 8). 이 능력 또한 예수께서 행하신 능력 그대로입니다(10:35). 앞당긴 사례이지만,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예수께서 고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가리켜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고 칭하면서 공격합니다(12:22-29). 그렇다면 예수와 같은 능력을 행한 제자들 역시 바알세불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됩니다(26절). 제자들은 예수와 다른 전파, 다른 능력을 행한다면 세상의 지지를 받겠으나, 선생을 따른다면 환영을 받을 리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의 제자 중 세상의 환영을 받은 이는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26-27절)
예수께서는 양으로 세상에 오셔서(요1:29)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의 보냄을 받은 제자들도, 이리 속으로 보내어지는 양과 같이, 선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리들은 능히 “몸을 죽일 수 있는 자들”(28절)이며, 실제로 사도들 대다수는 후에 저들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런 이리들 속으로 가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예수의 말씀은 ‘죽음과 맞서 싸워 이기라’는 것도 아니고, ‘지혜롭게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26, 28, 31절).
제자들이 겪는 두려움은, 바다를 오가는 파도처럼, 인생이 불가피하게 겪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예수의 말씀에 따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때문에 맞는 두려움입니다. 성공이나 행복과 같은,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라면, 두려울 이유 없습니다. 하지만 듣는 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거절당할 때, 제자들은 자신이 전하고 있는 그 메시지의 진실성을 의심할 정도로 위축됩니다. 믿음이 흔들리거나 저버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믿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직면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너희가 전파하는 바가) 세상에 드러나고… 알려지게 될 것이므로, (전파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진리를 모르는 것은 제자들의 실패 탓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이 알게 되는 것은 제자들의 헌신 덕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25절). 하나님이 드러내시고 완성하시는 일이기에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자들은 은밀하게(어두운 곳, 귓속말로) 들은 것을 대명천지(광명한 곳, 지붕)에서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26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아신다 (28-33절)
이리 가운데로 보내어진 양들과 같다는 표현과 같이, 세상 속으로 보내어진 예수의 제자들은 한 냥에 팔리는 참새들처럼 연약하고, 속절없이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처럼 보잘것없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세상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팔리고 떨어지기도 하는 상황을 뒤집고 역전시킬 힘이 없습니다. 그 힘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확언하십니다. 팔리는 참새들과 떨어지는 머리 터럭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이지요(29, 30절). 하나님이 아시고 허락하신 바이기에, 참새는 팔리고 머리카락은 떨어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참새들처럼 팔리고 머리카락처럼 떨어진다 해도 제자들은 두려워할 것 없다는 얘기입니다. 세상은 능히 제자들의 몸을 죽일 힘을 가졌지만, 제자들은 몸과 영혼 모두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관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28절).
의인에게는, 고초를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니라, 그가 받는 고난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리와 같은 세상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약속이 아니라, 머리 터럭처럼 하찮아 보이는 제자들의 죽음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약속됩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일이기에 의인은 고난 속에 버려진 것이 아니고, 제자들은 죽음의 손에 넘겨진 게 아닙니다. 그들이 새와 머리 터럭보다 더 고귀한 존재인 것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32절).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시인되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고난과 죽음을 생명의 사건으로 만드십니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오지 않았다 (34절)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비는 인사들이 빈번히 등장합니다(눅24:36; 요20:19, 21). 위험을 피하고 갈등을 무마하는 방식으로서의 회피가 종종 “평화(화평)”라는 명분으로 포장됩니다. “예수는 평화이시다”는 말씀은 예수의 탄생 때에 천사들이 알린 전언이면서(눅2:14), 예수 자신과 바울 사도의 메시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대목에서도, 예수께서는 ‘(방문하는 집에) 평안하기를 빌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마10:12).
그런데 세상의 반대와 배척에 직면한 제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릎 꿇지 않는 용기를 평화라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란 두려움을 억누르는 것일 뿐,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합니다. 두려움이 힘이라면 용기도 힘이어서, 이 힘(용기)으로 저 힘(두려움)을 물리치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어떤 힘도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보다 더 큰 힘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더 큰 두려움이 들이닥치면 용기는 좌절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맞서 싸우는 것으로는 두려움을 없애지 못합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움과 싸워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려움을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나는 검을 주러 왔다(34-36절)
예수께서는 “나는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34절). 검은 싸우기 위한 무기입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결국 모든 칼끝은 남을 향해 겨누어지고 타인을 공격합니다. 두려움을 지닌 사람일수록 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정의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칼을 사용합니다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행위는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검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는 어떤 열정과 충성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를 지키겠다고 베드로가 검을 빼 들었을 때 예수께서는 만류하셨지요(26:51-52).
이에 반해, 두려움이 없는 이들은 그 칼로 상대를 베는 대신 자신을 칩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 종이 되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 등, 모두 검으로 자기 자신을 치는 일입니다. 그 칼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을 벱니다. 예수에게, 그 검은 십자가였습니다. 마태복음 공동체 안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그 칼로 가족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35-36절). 박해를 당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 검 아래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39절). 남을 치는 대신 자신을 침으로써, 그 칼은 두려움을 감춘 거짓 평화의 가면을 벗깁니다. 그 칼로 쳐내야 할 상대는 두려움을 몰고 온 원수가 아니라, 두려워하는 내 자신입니다. 이는 마침내 진정한 평화를 이루고 나를 참되이 얻는 길입니다.
내게 합당한 자(37-39절)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37)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족은 모든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은 이들을 향해 임금은 “내 잔치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선언합니다(22:8). 예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4:18-22). 제자들이 버린 것은, 죄와 같이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나, 버려도 될 만한 사소한 것이나, 좀 과감해야 버릴 수 있는 값진 것 정도가 아닙니다. 가족이나 재산이나 자기의 목숨과 같은, 버릴 수 없는 가치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적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는 투자가 아닙니다. 자기를 버려서 자기를 얻고, 목숨을 버려서 목숨을 얻으며, 전부를 버려서 전부를 얻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를 주인으로 여기는 것인데, 종이 주인보다 나을 수는 없지요(24절). 주인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종인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떤 불이익이나 어려움이나 고난과 같은 일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했을 때 감내하기로 이미 선택한 것들입니다. 밤에 불을 밝힌 등대가 어둠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음과 같이, 복음의 빛을 지닌 예수의 제자들을 어둠이 포위하는 것은 예상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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