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
글의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글로 망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바꾸면 말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말로 망한다가 된다. 말과 글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이 된다.
不 : 아니 불 懼 : 두려워할 구 文 : 글월 문 者 : 놈 자 亡 : 망할 망 而 : 써 이 文 : 글월 문
정 비석의 소설 김삿갓 '권1'에 나오는 말이다.
김 병연이 스무살에 영월 백일장에서 장원 급제를 하고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말했으나,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답안이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때야 집안 내력을 말해 주었다.
김 병연은 조상을 욕되게 한 만고의 불효를 저지른 죄의식으로 고뇌하고 있다가 찾아간 취옹정의 노인과의 대화에서 그 취옹정의 노인이, 들려준 말,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글로 망한다.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에큰 충격을 받고 가슴 앓이를 한다.
이 말은 뒷날 김 병연이 삿갓을 쓰고 평생 방랑 생활을 하게 만드는데도 역할 했을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말과 글의 동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또한 인간은그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가진 말과 글은 삼라만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고 문명화의 길을갈 수 있게 만든 천부적이고 원초적인 능력이며 축복이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말과 글로 표현된다. 그 생각이 입을 통해서 나오면 말이 되고 문자를 통해 나오면 글이 된다.
따라서 말과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 지향점 등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말과 글에 신중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도 끊임없이 말과 글로 인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곤혹 당하는 경우가 많다.
표현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기는 지금은 그래도 파장만 일고, 때로는 불이익을 당하고 진로에 지장을 주지만, 과거에는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은 글로 흥하고 글로 출세를 하지만, 때로는 글로 망하기도 하고 글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조선 후기 명 문장가의 싹이 엿보였으나 백일장에서 장원 급제한 답안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방랑한 김삿갓의 인생에서도 글 한 편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평생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글로 망한다.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라는 말을 되새기며 방랑의 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
"김삿갓을 채찍질한 이 한마디".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김 병연이 나이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영월 관아에서는 백일장이열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김 병연은 당초 과거에 큰 뜻이 없었으나 ‘우리 가문을 한 번 일으켜 놓으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권고에 따라서 과거를 보기로 하였다.
김 병연의 어머니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아들을 열심히 가르쳤으며 김 병연 또한 열심히 공부하여, 나름은 시서(詩書)와 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하고 문장을 제법 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부하였다.
김 병연은 영월 관아에서 시행하는 백일장에 참석하였다.
논제는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 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 였음을 통탄해 보라.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였다.
김 병연은 그동안 읽은 역사 서적들을 떠올리며 일필휘지로 답안을 써 내려갔다.
그 내용은 말 그대로 홍 경래의 난 때 정 가산의 의로운 죽음에 대하여 만고의 충신이라 찬양하고 홍 경래에게 비겁하게 투항한 김 익순은 천 번 죽어 마땅한 만고의 역적임을 규탄하는 시문을 써당당하게 장원이 되었다.
그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당당하게 장원이 되었음을 알리고 시제를 말하며 김 익순을 엄단한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 않았다.
어머니로부터 조상의 내력을 처음으로 들은 김삿갓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만고의 역적임을 규탄한 김 익순이 자기의 조부임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의 일에 관한 특히 조상의 행적에 관한 일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김 병연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살려낸 아들이 역적의 자손임을 숨기며, 김 병연이 어린 시절은 황해도 곡산에서, 열 살 전후엔 경기도 광주에서, 그 이후로는 영월 산속으로 이사하게 된 사연을 들려 주었다.
그후 김 병연은 고뇌에 빠졌다. 할아버지 즉 조상을 규탄한 만고의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꼼작도 할 수 없었다.
김 병연은 몇 날 며칠을 골방에 틀어 박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술이라도 한잔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백일장 당일날 일찌감치 답안을 써내고 발표가 나기 전에 들렀던‘취옹정’이라는 주막이 떠 올라 그 주막으로 갔다.
때는 이른 오전이었다. 취옹정에는 그때 그 주인 늙은이가 있었다.
늙은이는 술도 잘 마셨지만 옛날 10번은 과거에 실패한 인물이라 엄청나게 글을 많이 읽은 식자(識者)였다.
취옹정 늙은이는 김 병연이 김 익순의 손자인지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으며, 김 병연 또한 자신이 김 익순의 손자임을 밝히지도 않았다.
취옹정의 늙은 주인장은 손수 주안상을 차려 들고 들어와 함께 술을 마시며 온갖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취옹정 늙은이는 거침없이 옛 문헌을 인용하며 공자(孔子)의 이야기며 장자(莊子)의 이야기며 끝이 없이 술술 풀어 내는데 김 병연도 놀라웠다.
김 병연은 그 노인에게 질세라 하며 글 겨루기를 하였다.
서로가 상황에 맞게 아는 것을 이어 말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취옹정 늙은이는 술은 좋기는 하되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아침부터 둘은 끝없는 대화로 취하는 줄을 몰랐다.
취옹정 늙은이는 김 병연이 이번 영월 백일장에서 장원에 급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김 병연이 그 명문으로 답을 쓴 일에 대하여 못마땅한 말을 계속했다.
늙은이는 그 답안이 명문임을 찬탄하면서도 심하게 걱정하며 말했다.
“나는 자네의 글을 보고 비상한 시재(詩才)에 놀라움을 금지 못했네. 천재가 아니고서는 그런 좋은 시는 누구도 쓰지 못할 것일세.
그러나 나는 감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네가 큰 인물이 못될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 시를 읽어 본 소감을 마땅하지 못하게 말한 것은 바로 그 점일세.”
“어떤 점으로 보아 큰 인물이 못될사람이라고 느끼셨다는 것입니까?.”
“노자의 도덕경에 사람 죽이기를 즐거워하는 자는 그 뜻을 천하에 펼칠 수가 없다. 樂殺人者 不可以得志於天下라는 말이 나오네.
그런데 자네는 시에서 선천방어사 김 익순을 무참하게 난도(亂刀)질을 해 놓았거든.
글이란 어디까지나 신성한 것이어서 사람을 글로 때려 잡아서는 못 쓰는 법일세.
김 익순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아닌가?. 자고로 죽은 사람을 때려 잡는다는 것은 선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네.
그런데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을 난도질 해 놓았으니, 그야말로 마땅하지 못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선비는 글로 망하는 법이야.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 내 말 알아 듣겠는가?.”
취옹정 늙은이는 김 병연과 김 익순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 단지 원칙적인 논평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 병연의 가슴에는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선비는 글로 망하는 법이야,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 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김 병연은 가슴이 도려내는 듯이 아팠다.
그러나 취옹정 늙은이는 취기 어린 눈으로 김 병연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문제의 시를 단숨에 써 갈기지 않았나 싶은데 그 시를 쓸 적에 김 익순에게도 후손이 있으리라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김 병연은 정곡을 다시 찔린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옹정 늙은이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김 익순에게도 후손이 있을 것은 뻔한 일 아닌가?. 만약 그들이 그 시를 읽어 보았다면 자네를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김 병연은 취옹정 늙은이의 입을 통해 "신의 심판"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무 댓구도 하지 못했다.
이상은 정 비석의 소설 김삿갓 권1,31쪽~88쪽의 내용을 참고한 것임.
그날 이후 취옹정 늙은이의 그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선비는 글로 망하는 법이야,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 이라는 말이 계속 뇌리에 박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취옹정 늙은이는 자신과 김 익순과의 관계를 모르지만, 김 병연은 바로 자신이 그 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김 병연은 삿갓을 눌러쓰고 집을 나왔다. 김 병연이 삿갓을 쓴 영원한 노스탈지어의 방랑자가 된 데는 취옹정 늙은이의 그 말도 한몫했으리라.
글에 신중을 기하는 삶을 살아야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고 하였으며(존재와 시간) 뷔퐁은 “글은 사람이다(G.L.L.뷔퐁)”고 하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말과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지향점은 물론 인격까지 담겨 있다.
따라서 사람은 살아 가면서 말과 글의 사용에 신중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말과 글로 낭패를 보는 경우는 계속 반복된다.
성경에도 “미련한 자는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맨다. (잠언 18:7)”고 하였다.
이 말은 굳이 말만이 아니라 글도 해당된다.
이는 ‘미련한 자는 글로 망하고, 그 글에 스스로 옭아맨다’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역사상 글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고 글로 망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조선시대 조의 제문을 쓴 김 종직은 연산군에 의해 죽은 시신의 몸으로 다시 사형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물론 이 역사적 사건에는 연산군이 비록 왕일지라도 보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는 사초 문서를 보았다는데 문제가 있었지만,...) 유명한 링컨 대통령은 젊은 시절 사람을 비꼬고 조롱하는 글을 지방 신문에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생명을 거는 결투의 현장에 서기도 했다.
다행히 링컨은 친구의 중재로 결투는 하지 않고 화해했지만, 글 한 편 때문에 결투를 통해 생명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링컨은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표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구든 자기의 생각과 사상을 말이나 글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기에 말과 글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가면서 말과 글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말은 하고나서 사라지기 쉬우나 글은사라지기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남는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즈음 SNS에 올린 글들은 언제 어느 곳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 다닐지 모른다.
아무리 표현이 자유로운 시기라 하더라도 글을 쓸 때는 책임을 신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이 나중에 자기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올무가 될 수도 있다.
김삿갓이 평생 삿갓을 쓰고 다닌 것도 글 한 편 때문이었음을 새겨보자.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현대인들이 김삿갓이 평생 간직하고 살아간 말,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글로 망한다'는 불구문자망이문(不懼文者亡而文)을 새겨 보기를 바란다.
이 말은 글자만 바꾸면 불구언자망이언(不懼言者亡而言)이라. '말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말로 망한다'가 된다.
어쨌든 말과 글에 신중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 옮겨온 글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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