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 자신의 성숙도에 걸맞는 만큼만 존재의 비밀을 경험한다(초감각적 세계인식에 이르는 길, 2016, 74)."
슈타이너는 신비의 성전에 정신의 비밀이 글자로 새겨져 있다고 했다. 짐작하기에 신비의 성전이란 꼭 어떤 성스러운 건물이나 물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연 곳곳이 모두 신비의 성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연이 곧 정신을 드러낸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신비의 성전에는 정신이 잘 드러나는 곳으로 지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비의 성전, 자연에서 정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과거 그리스시대 때만 해도 사람들이 정신을 받아들였다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정신을 파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일종의 집단의식으로 정신이 그대로 그들에게 흘러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마치 꿈처럼 정신이 그들에게 저절로 흘러든 것이다. 12, 13세기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이런 정신의 여명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혁명이 이루어지고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자, 이런 꿈의식이 사라지고 대신 인간의 자아로 인해서 개개인의 자아의식이 등장하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정신은 과연 사라졌는가하면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은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본성으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현재 살펴보면 누구나 알수 있을 정도로 드러나 있다. 세계 전쟁도 계속 일어나고 있고, 성별, 지역, 불균형 등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서 걷잡을 수도 없을 정도다. 이 말은 정신이 발달하지 못했으며, 정신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정신은 각자가 알아서 챙기고 알아서 할일이지, 타인이나 국가, 사회, 세계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언급조차도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뿐이다라고. 그래서 말하는데, 위 문장, 사람은 그 자신의 성숙도에 걸맞는 만큼의 존재의 비밀을 경험한다는 것이 이를 정확하게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챙겨야 어려움을 헤쳐서 그나마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필자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정신이 인간에게만 있는 고도의 존재로 보이지도 않고 다만 물질을 통해서 물질을 이끌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다. 그래서 정신은 자신을, 인간을 도구로 활용해서 찾고 발달시켜야 한다. 결과 발달하면은 발달한 만큼의 존재의 비밀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전과 다른 부분, 우리가 지혜라고도 하는 직관을 얻는다.
다음은 이렇게 얻은 직관들이다. 첫째, 동창 중 한 사람이 있는데, 스스로가 굉장히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한다. 잘 났기도 하고 열심히 살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지만 누구라도 그럴 것이므로 친구는 외로울 듯하다. 그렇지만 그 외로움을 스스로 해소도 하지 못한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지 못하므로 의문점으로 남겨두었다. 어느 날 문득 그 친구 생각의 '중심자리'가 '자신에게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정신은 모든 존재가 하나, 그 '하나'가 그 중심자리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할 경우 정신의 도움을 받을려면, 즉 직관이 필요하면 반드시 정신의 중심자리에 가 있어야 한다. 자기를 중심자리에 두지 않으면, 아무리 영리하고 똑똑해도 직관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정신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이를 알게 된 계기이다. 이 친구가 동창 모임 총무라서 톡에 모임안내 글을 자주 올리는데, 그 글에 힘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글은 주로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인데, 글에 힘이 없으니 사람들을 이끌지 못한다.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이유가 글이 힘을 갖게 하기 위함인데, 글에 힘이 없으니 스스로도 안타까울 듯하다. 그 이유가 크게 보면은 무지이지만, 모두가 하나라는 정신의 속성에 맞지 않아서 정신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정신이 물질을 이끌지 못한다.
그래서 이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봤다. 친구의 어머니는 형제를 많이 낳았고, 여자 형제만 8명이다. 그래서 막내인 친구는 자신의 사주도 모른다. 어머니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형제들이 이끌어 주었겠지만, 그 뿌리에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무의식에 '사랑 고파'병이 있어서 그렇다. 무의식에 이런 사랑 고파 병이 있으면 늘 외롭고 허전하다. 물론 누구도 정신이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자신을 살펴서 파악한다면, 이것이 자각이다. 자각해서 가만히 살펴만 봐도 이 감정에서 헤어나온다. 문제는 이 감정에 자꾸 끌려가는데 있는 것이다. 더 정확한 처방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외로운 것은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도 유명한 우리나라 성악가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노래가 소리만 지르는 듯해서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쳐서 얼른 채널을 돌렸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것도 어느 날 문득 이유가 떠올랐다. 그 성악가의 연꽃(차크라)이 어둡고 딱딱하게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꽃은 우리 몸에 정신이 발달하면 생기는 일종의 정신 기관이다. 우리 몸에 모두 6-7개 부위에 생기는데,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 생기고, 에테르체가 발달해서 이 연꽃을 스스로가 운영하게 된다. 물론 정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상이겠지만, 이것은 고대로 부터 내려온 슈타이너 역시도 인정한 것으로 실제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첫째 질문, 연꽃은 어떤 경우에 생기는가? 아스트랄체는 우리 몸을 구름처럼 감싸고 있다가 스스로 움직이고 또 자아처럼 목적을 가지고도 있는 일종의 감정체이다. 슬픔, 기쁨, 외로움 등등의 감정체로 이것이 우리 영혼의 바탕체를 이룬다. 예컨대 내가 영혼을 움직여 발달시킨다면, 이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는 것이다. 아스트랄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만약 내가 어떤 생각, 의지, 감정을 낸다면, 아스트랄체가 그런 움직임을 한다는 것이다. 결과 이것이 원래 우리 몸 부위에 형성된 차크라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차크라가 움직이면, 그 부위 연꽃이 부드러워지고 밝아진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정신의 정보, 직관을 얻을 수가 있다.
두 번째, 아스트랄체의 연꽃이 움직이면 아스트랄체가 어떤 곳으로 흐를지 누군가는 제어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정신을 컨트롤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를 제어하는 존재가 에테르체이다. 에테르체가 연꽃 가장자리에서 연꽃 중심자리로 흐르고, 이 흐름이 다시 바깥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것은 에테르체가 바깥과 인간과의 경계를 형성해서 바깥으로 나아가는 아스트랄체를 방어해 준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가야 정신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가 있다고 한다.
세 번째, 그렇다면 연꽃이 언제 딱딱해지고 굳을까? 정신의 속성에 어긋날 때이다. 정신은 모든 존재가 다 하나이고, 그래서 그 에너지는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존경, 공경하는 에너지이다. 잘난 척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그런 감정을 가진다면, 아스트랄체가 딱딱하게 굳는다. 그렇게 되면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래가 정신 그 자체로 우주 그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그렇다면 필자는 에테르체의 움직임을 어떻게 감지했을까? 물론 어느 날이다. 주민센터 합창교실에서 나누어 준 소프라노 파트 노래를 듣는데, 노래에 나오는 감성을 파악했다. 깜짝 놀라서 그 길을 쭈욱 따라가보니 에테르체가 만든 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테르체가 상을 만들어서 비춰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래는 '청산에 살리라'였고, 소프라노 파트 노래에서 '청산' 이미지를 에테르체가 비췄다. 결국 영혼의 감성인데, 그 감성은 푸른 색의 감성이었고, 색이 안으로 모이는 수축되는 감성, 또는 차가운 느낌으로 에테르체가 비춘 상으로, 에테르체가 가볍게 떨렸다. 정신세계는 창조의 세계로 단 한 순간도 머무름이 없다고 했는데 역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영혼의 감성이 예술이다.
그래서 느낀 건데, 이런 에테르체의 느낌을 느낄려면 자신에게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 그 섬세함을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평소 그것을 느낄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잘난 척 하거나 겸손하지 않으면, 이런 세계에서 저절로 빠져 나올 듯하다. 내가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 세계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필자의 수준이다. 그나마 그동안의 의문점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는데 의미를 둔다. 슈타이너가 주장하기를 물질세계에서 답을 구할려고 하면은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신세계에 들어가면은 그 답이 오히려 의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였는데, 역시 그렇다. 물론 이렇게 의문을 다른 사람으로 부터 찾는 것은 다른 사람을 간섭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신세계에서의 논리, 직관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간섭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의 중심자리를 항상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곳에 두어야 그나마 업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놓여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첫댓글 🙏~생명 사랑 조화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