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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열녀(烈女) - 도미부인 (짜투리史室)
도미부인은 소설의 주인공으로도 몇 번 나왔다.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 최인호의 『몽유도원도』가 그런 소설이란다(둘 다 못읽었봤다. 죄송…). 최인호의 소설은 작년인가 같은 제목의 뮤지컬로도 올려졌다. 그치만 도미부인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사실 연구꺼리도 안된다).
그래서 그냥 널널한 기분으로 인터넷을 뒤지니 밸밸 얘기가 다 나온다. 오호~ 보령시에서 1994년에 도미부인 사당을 지었구만. '정절사(貞節祠)'라. 좋다. 근데 당시 백제의 수도는 한성(漢城) 아녔나? 으흠~ '도미부인선양사업추진위원회'란 것도 있구나. 좋지. 헉스! 이건 또 뭔가. '도미부인동상 설계현상공모'? 서울 강동구에서 올 3월에 내건 현상공모 제목이다. 강동구가 도미부인과 뭔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근거가 있으니까 사업을 벌이셨겠지… 하고 걍 넘어가자.
미모와 정절을 겸비한 부인을 둔 도미… 부럽당
도미부인, 부인의 이름이 도미가 아니라 '도미의 부인'이란 뜻이다('도미부인'이란 말 자체가 텍스트엔 없다). 최인호씨는 소설에서'아랑'이란 예쁜 이름을 지어주셨다지만,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이 얘기, <삼국사기>열전8 <도미>에만 나온다. 글고 정말 짧다. 이 글 군데군데 나오는 내용이 전부다).
남편 도미는 '편호소민', 즉 평민으로, 의리를 아는 백제인이었단다【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이너넷을 뒤지다 보니 도미 직업이 목수였다거나 어부였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근거는 안보인다. 흐미~ 정승이었단 얘기도 있네. 성주도씨(星州都氏) 홈페이지를 보니, "『전고대방(典故大方)』과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의 문헌에는 백제 개루왕 때의 정승 도미를 도씨(都氏)의 시조(始祖)로 기록하고"있다는데, 남의 집안 일엔 껴들지 않으련다.
'비록'평민이었지만, 뒤에 나오듯이 여종도 있던 걸로 봐서 먹고 살 만은 했나보다. 그 아내는 아름답고 우아한 데다 절개도 곧아서【其妻美麗 亦有節行】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단다. 근데 말이다. 어떤 여자가 절개가 곧다는 걸 어케 아나. 이넘 저넘이 찝쩍댔단 뜻이다. 누가? 주위의 돈 많고 힘 있는 넘들 아녔겠나. 남편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비슷한 유혹이나 협박에 절개를 꺾은 평민 신분 이하의 여인들도 많았을 거다. 그때나 이때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했나보다.
개루왕이냐 개로왕이냐
그럼 이 사건은 어느 왕 때 일어났나. 텍스트엔 백제의 제4대왕인 개루왕(蓋婁王, 재위 128~166)이라 나오는데, 제21대 개로왕(蓋鹵王, 재위 455~475)으로 보기도 한다. 난 개로왕으로 본다. 왜냐.
① 제4대 개루왕은 성품과 품행이 좋았다고 한다【性恭順有操行】(『삼국사기』 백제본기1 개루왕). 어진 왕이었다니 도미부부 갈구진 않았을 거다.
② 도미부부 델구 논 백제왕은 텍스트에 나오듯이 성질이 드러웠다. 근데 제21대 개로왕, 말년에 정치 깽판쳐서 민심을 잃는다.
③ 도미부부 갖고 논 백제왕은 평소 '박(博)'을 좋아했다. 그래서 뒤에 나오듯이 도미부인에게 자기가 도미와 '박'을 해서 이겼다고 썰을 푼다. 이 '박'은 장기?내기?놀음 등의 뜻이 있는데, 내기로 해석하는 게 무난하다. 그치만 혹시 '장기'로 해석해도 된다면, 이 백제왕은 개로왕일 가능성이 높다. 개로왕은 '혁(奕)', 즉 바둑을 좋아했는데【好博奕】, '혁'은 바로 뒤에선 '기(碁)'로 나온다(『삼국사기』 백제본기3 개로왕 21년). '기'에는 바둑·장기의 뜻이 있다. 혹시 개로왕은 바둑과 장기 같은 잡기를 좋아했던 건 아닐까.
개로왕의 너절한 테스트 "지가 안넘어가고 배겨?"
도미부인의 빼어난 미모와 정절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개로왕, 도미를 궁궐로 불러들여 일케 말한다.
비록 부인의 덕은 정결(貞潔)이 으뜸이라 하지만, 만약 사람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도미가 그냥 <언저리뉴스>처럼 "아~ 네에~"하고 넘어갔으면 아무 일 없었을 거다. "우리 아내도 별 수 없을 거여여" 했으면 개로왕인들 뭐 어카겠나. 허나 도미, 그러지 못하고 일케 대꾸한다.
사람의 정이란 헤아릴 수 없지만, 제 아내는 죽으면 죽었지 두 마음을 품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미, 이 고지식한 친구, 개로왕의 개수작에 걸려들었다. 개로왕이 도미부인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미모보다는 정절 때문이었다. 개로왕은 도미부인이 정말 그럴까 보려고 도미를 그냥 대궐에 붙잡아둔다. 이어 도미부인의 정절을 테스트 대상으로 삼는다.
개로왕, 쪼금 억울하기도 하겠다
개로왕 그 넘이 뭐가 억울해? 돗자리 생각엔, 아무래도 개로왕이 첨부터 진짜로 도미부인을 능욕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서다. 도미부인의 정절을 테스트하기 위해 누가 갔는가. 위인전과 이너넷을 보니 세 가지로 나온다.
① 개로왕이 직접 갔다 ② 신하를 대신 보냈다 ③ 개로왕이 신하와 함께 갔다. 왜 일케 다른 말들이 나오는가. 텍스트가 쫌 애매해서다.
왕이 (도미부인의 정절을) 시험하려고 일을 핑계로 도미를 붙잡아두고 측근신하에게 옷과 말과 종을 빌려주어 밤에 그 집에 가게 했다. 이에 앞서 사람을 시켜 왕이 온다고 먼저 (도미부인에게) 알린 다음 그 부인에게 이르기를…【ⓐ王欲試之 留都彌以事 使一ⓑ近臣 假王衣服馬從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謂其婦曰…】
여기선 역할 분담에 주의해야 한다. 일을 꾸며 시킨 건 ⓐ개로왕이다. 개로왕 대신 생쑈의 주인공을 맡은 가짜왕은 ⓑ측근신하다.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또다른 사신이 왕이 온다고 도미부인에게 알린다. 즉, 개로왕이 직접 간 게 아니라 믿을 만한 근신(近臣)을 대신 보낸 거다. 지 옷과 말과 종을 함께 줘서 그 신하를 자기인 것처럼 꾸며서 말이다. 즉, 개로왕은 도미부인의 미모를 탐낸 게 아니다. 그랬다면 지가 직접 갔겠지 왜 남한테 시켰겠나. 암튼 도미부인을 만난 가짜왕은 일케 말한다.
내가 오래 전부터 네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해서 이겼다【與都彌博得之】. 내일 너를 데리고 가서 궁인(宮人)을 삼을 것이니 지금부터 네 몸은 내 것이다.
글고나서 가짜왕은 바로 도미부인을 난행하려 한다【遂將亂之】. 그럼 개로왕이 신하에게 내린 지시는 뭐였을까? 이거 생각보다 복잡하다. 여러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A. 가짜왕이 유혹해서 도미부인이 넘어갔을 경우
① 진짜로 동침해라
정말 맘씨 좋은 왕이다. "나 대신 니가 그 미인이랑 응응해"하고 시켜? 여러분이 개로왕이라면 그러겠나. 어림도 없다. 왜 남 좋은 일 시키냐. 소문 나면 욕은 지가 다 먹을텐데. 그치만 총애하는 신하라면 그런 특권 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도미부인이 정절을 꺾은 것만 확인하면 되는 일 아닌가.⇒ 가능성 있다.
② 동침하는 척만 해라
도미부인이 동침하겠다고 지발로 방에 들어왔으면 그걸로 정절은 깨진거다.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동침은 하지 말아라. 아무리 근신이지만 그 넘만 재미보게 하긴 싫다.⇒ 가능성 있다.
B. 가짜왕의 유혹에 도미부인이 안넘어갔을 경우
① 강간해라
이거 아닌 것 같다. 글케 해선 도미의 콧대를 꺽지도 못한다. 강간을 당한 건 정절을 꺾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혹에 넘어간 것도 아니니 도미에게 쫑코를 줄 명분도 없다. 스타일만 구긴다. ⇒ 가능성 없다.
② 그냥 와라
도미부인이 글케 못한다고 버티면 어카겠나. 강간 아니면 포기지 뭐. 왕명인데도 따르지 않는다면 괘씸하긴 해도 곧은 정절은 확인된 셈이다. ⇒ 가능성 있다.
돗자리는 A-①·② 아님 B-②가 개로왕의 지시였다고 본다. 이거 분명히 도덕적으론 잘못된 거지만, 큰 악의는 없는 심심풀이 정도로 봐줄 수도 있다. 그치만 뒤에 나오듯이 도미부인은 유혹에 넘어간 척 했으니, A-①·②의 가능성만 남은 셈이다.
가짜와 가짜의 생쑈
도미부인은 왕이 가짜인 걸 알았을까. 몰랐을 거다. 지가 언제 개루왕을 본 적이나 있었겠나. 암튼 도미부인, 가짜왕이 난행하려 하자 잔머리를 굴린다.
왕은 망언을 하지 않으니, 제가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왕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면 제가 옷을 갈아입고 나아가겠습니다.
아마 이때 단호히 "No!"를 외쳤으면(B-②) 상황 끝이었을 거다. 또 정절 지키는 거 글케 좋아했다면 그랬어야 옳다. 그치만 칼처럼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남편이 내기에서 졌다고 하니, 만약 "No!" 했으면 도미의 목숨도 날라가리라 생각했을 거다. 근데 가짜왕 이 넘도 글타. "어?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네?"하고 생쑈를 여기서 끝내도 될텐데 굳이 방에 드가서 기둘린다. 정말인지 확인사살을 해보잔 거다. 아님, 막상 만나보니 진짜 미인이라 시간을 더 끌며 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일단 위기에서 벗어난 도미부인, 자기 대신 여종을 단장시켜 방으로 들여보낸다【退以雜飾一婢子薦之】. 남편도 살리고 정절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어쨌든 가짜들끼리 생쑈를 펼치누나.
그럼 이 가짜 콤비는 과연 동침을 했을까. 텍스트만 갖곤 알 수 없다. '천지(薦之)'를 "수청을 들다"로 해석한다 해도, 수청을 들게 했다는 건지(지시) 수청을 들었다는 건지(완료) 애매하기 때문이다. 앞서 A-①·②의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했다. 어느 경우이든 가짜왕은 여종의 얼굴을 못봤어야 한다. 쫌전에 도미부인 얼굴을 봤으니 아무리 단장을 시켰다 해도 가짜면 몰라볼 리 없잖은가. 그럼 필수조건은 방의 불을 끈 상태에서 여종이 들어가고 나왔어야 한다. 가짜왕은 이때 들어온 여종을 도미부인으로 알고 있었다(돗자리 니가 어케 아냐고? 좀 뒤에 설명하겠다).
근데… A-①의 경우, 즉 동침을 했다면 불을 끈 상태에서 드갔다가 나왔어도 뭐 이해가 간다. 욕심을 채운 가짜왕이 디비져 자고 있을 때 여종이 몰래 나왔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A-②의 경우, 즉 동침을 안했다면 여종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가짜왕은 "너 담부터 열녀라고 하지 마라. 사실은 여차저차했다. 나 간다"하고 나왔어야 이치에 맞는다. 이때 불을 다시 안켜고 대화를 했을까. 뭐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복잡허네…
여종의 정절은 개뿔도 아니냐
도미부인, 정절 지키는 거 목숨만큼 중요했을 거다. 그래서 지 정절 지키려고 여종을 대신 단장시켜 들여보낸 거다. 자~알 한다. 지 정절만 중요하냐. 평민도 아닌 자기집 여종인데 뭐 어떠냐고? 그러지 말자. 도미부인이 봤을 때 여종 절개는 하찮아? 그럼 개로왕이 봤을 때 평민 아내 절개 우스운 거나 쌤쌤이다(어느 위인전을 보니, 요 대목에서 도미부인이 어케 하나 고민하니까, 여종이 지가 대신 총대를 매겠노라 자청하고 나섰단다. 물론 창작이다. 또 어느 이너넷에선 그 여종이 "제가 비록 숫처녀는 아니지만 그래도…"라며 갈등 때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거 읽고 돗자리 웃겨 디집어졌다). 그래서 솔직히… 도미부인… 싫다.
도미부인, 개로왕의 내기 얘기를 과연 믿었을까
근데 여기서 궁금한 점, 도미부인은 정말 남편이 자기를 걸고 왕이랑 내기를 했다고 믿었던 걸까. 또 따져보자.
A. 믿었을 경우
남편이 왕이랑 뭐라 약속했든 자기의 정절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 거다. 이 경우 '여필종부(女必從夫)'는 어긴 거지만 을마나 장하냐. 그치만 이 때 정공법으로 치받았어야 했다. "아무리 왕명이라도, 남편이 뭐라 약속했어도 글켄 못하져. 전 열녀거든여. 배째세여~ 목따세여~" 하고 말이다.
허나 잔머리를 굴렸다. 일단 위기는 넘겨보잔 거다. 그럼 그 담엔? 자결 아님 도망이다. 왜? 가짜왕이 뭐라 했냐. 내일부터 궁녀로 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근데 그게 아니다. 자결도 안했고 도망도 안쳤다. 당장의 위기는 벗어났지만, 대체 담날엔 어쩌려 했을까. 가짜왕이 그냥 돌아갈 거라고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B. 안믿었을 경우
"우리 남편이 그런 약속을 했을 리 읎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럼 어케? 뭘 어카냐. 가짜왕을 개로왕으로 알고 있는데,"쌩치지 마세여. 울 남편 그런 사람 아녀여~"할 수는 없잖겠나. 앞서 말했듯이 왕명을 어겼다간 자기는 물론 남편의 목숨도 날라갈 판이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결과는 A와 똑같다.
도미, 그냥 꾹 참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분명한 건, 도미부인은 궁녀가 되지 않았단 거다. 가짜왕은 첨에 도미부인에게 "내일부터 넌 궁녀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다시 분명해진 점 두 가지다. 첫째, 개로왕은 도미부인을 진짜로 궁녀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둘째, 가짜왕은 속은 걸 몰랐다. 왜 속은 걸 몰랐냐고? 따져보자.
텍스트를 보면 개로왕은 뒤에 속은 걸 알았단다【王後知見欺】. 이거 이상하다. 가짜왕이 (도미부인이 여종을 대신 방에 들여보낸) 뒤에 속은 걸 알았다고 하면 말이 된다. 여종이 방에 들어왔을 때 알았을 수도 있고, 동침한 뒤 알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개로왕에게 즉빵 글케 보고했을 거고, 텍스트에 "개로왕이 뒤에 속은 걸 알았다"고 나올 리가 없다. 글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또 개로왕은 어케 지가 속은 걸 알았을까.
뻔하다. 도미가 '범인'이다. 신하는 (여종이랑 동침을 했든 안했든) 속은 줄도 모르고 일케 보고했을 거다. "도미부인, 별거 아니던대여? 꼴딱 넘어가대여~" 이 말을 들은 개로왕, 득의양양 했을 거다. 그 담 순서는 뭘까. 도미한테 뻐기는 거다(가짜왕이 결과를 보고할 때 까진 틀림없이 도미를 대궐에 붙잡아 놓고 있었을 거다).
개로왕 : 이봐~ 자네 부인도 별수 없더구먼. ㅋㅋㅋ
도 미 : 뭔 말씀이신지… ?
개로왕 : 사실은 말야, 어제 저녁에 여차여차… 저차저차… 자네 마누라도 별 수 없더구만. ㅎㅎㅎ
도 미 : 허걱! 그럴 리가…
개로왕 : 내 말을 못믿겠냐? 언능 집에 가서 니 마누라한테 물어바바. ㅍㅍ
뚜껑 열린 도미, 씩씩대며 집으로 온다. 글고 부인을 박박 다구쳤겠지. 도미부인, 자초지종을 말해준다. 도미, 거기서 그냥 참았어야 했다. 자기 아내가 정절을 지킨 걸 그나마 다행으로 알고 넘어갔어야 했다. 그치만 그러지 못했다. 자존심 때문이다. 자기를 비웃던 개로왕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구나 도미는 의리의 사나이【頗知義理】 아녔던가. 이런 분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다시 개로왕한테 가서 말했을 거다. "왕께서 속으셨네여. 그 여자 우리 아내 아니고 여종이었다네여~ 우리 아내 그런 사람 아녀여."
에구구… 앵간하면 참을 것이지, 으쩌자구 개로왕 열받게 맹그나. 그제서야 속은 것을 깨달은 개로왕은 노발대발한다. 엄청 분했을 거다. 그래서 도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두 눈알을 뺀 뒤 끌고 나가 작은 배에 태워 물에 띄워 보낸다. 이건 사형보다 더 무섭다. 그만큼 개로왕은 분통이 터졌던 거다.
분명히 개로왕이 잘못했지만, 어쨌든 평민이 왕명을 어겼으니, 아니 교묘히 속였으니 죄라면 죄인 셈이다. 왕이 평민을 속인 것과 평민이 왕을 속인 게 당시로선 쌤쌤일 수 없다. 결국 부인의 죄를 도미가 뒤집어쓴 거다. 그럼 도미부인은 왜 안죽여? 죽일 때 죽이더라도 정조는 뺏어야 직성이 풀린다. 글고… 미인이잖아. 더구나 이젠 남편도 없다. 후궁으로 삼아도 그만이다. 강간하고 나서 죽여도 누가 어쩌겠나.
도미부인, 띨빵한 개로왕을 일단 따돌리다
개로왕 열받았다. 눈에 뵈는 거 없다. 그래서 도미부인을 아예 궁궐로 끌고와서 강간하려 한다. 구겨진 자존심 일케 해서라도 펴보겠다는 마초 근성이다. 그러자 도미부인, 이번에도 잔머리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제 남편도 잃었는데 저 혼자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더구나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지금 월경 중이기 때문에 몸이 더럽습니다. 청컨대 다른 날 목욕을 한 뒤 다시 오겠습니다.
진짜 생리 중인가는 궁녀들을 시켜 조사했어도 될 일인데 우리 얼빵한 개로왕, 그 말을 믿고 일단 돌려보낸다. 글고 보니 지난 원효편에 이어 이번에도 생리 얘기가 나왔네. 머 이왕 나온 김에'그때를 아십니까'함 해보자. 울 나라에서 요새같은 생리대가 나온 건 1971년이 첨인 것 같다. 유한킴벌리(유한양행, 울 나라에서 젤 멋진 회사다. 설립자 고 유일한 선생님, 돗자리가 젤 존경하는 기업인이시다) 홈페이지에 글케 나온다. 그때 그 해괴한 CF가 아직도 생각난다. 197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별들의 고향'여자주인공 경아역의 안인숙씨(대농그룹의 며느리로 드가셨는데… 대농그룹이야 날라갔지만… 그래도 머 잘 살고 계시겠지)가 CF에 나오셨다. 탁자 위에 상자 하나 올려놓고서,"남자분들은 아실 거 업꼬요 … 매달 그날이 오면… 이젠 걱정 마셔여…"대충 멘트가 이랬던 거 같다. 제품명은 '코텍스 프리덤'('프리덤'이 '자유'란 뜻인 걸 이 때 첨 알았다). 하두 궁금해서 엄니한테 저게 뭐냐고 여쭤보니 숙제 다 했냐고 물으시더라. 암튼 한동안 정말 궁금했는데, 친구들 중 아는 넘 암도 없었다. 중딩 되서야 생리가 뭔지 알았다. 그것도 엄니 생신 때 누나들이랑 돈 모아 코텍스 선물했다고 자랑하던 조숙한 친구 덕분에…
잠시 옆길로 샜다. 죄송하다. 암튼 궁궐에서 나온 도미부인은 곧바로 강으로 달아난다【便逃至江口】. 근데 배가 없어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하늘을 보고 통곡한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오더란다.
그럼 도미부인은 남편이 그 꼴이 돼서 배에 실려 떠내려간 걸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 강간을 하려 할 때 개로왕이 도미부인에게 남편 얘기를 안했을 리 없다. "너 이제 남편도 없으니 포기해라." 했을 거다. 만약 남편이 죽은 것으로 알았으면, 글고 정말 열녀라면 이때 목숨 끊는다. 그치만 위기를 벗어난 뒤 강가로 뛰어간 건 남편이 배에 실려 떠내려간 걸 알았단 뜻이다. 열녀는 열녀다.
근데 이상하다. 그날이 생리 끝날이라고 하지도 않았을텐데 왜 그리 서둘러 내뺐으며, 강에 배가 없다고 징징 짰을까.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단 뜻이다. 왜? 개로왕이 미행을 붙였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그런 얘기 나오냐구? 안나온다. 그치만 '척'하면 '뻑'이다. 아무리 개로왕이 얼빵하다지만, 여러분 같으면 도미부인 혼자 그냥 보내겠는가.
우야튼 배에 올랐더니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거기서 남편 도미를 만났단다. 이들은 풀뿌리를 캐먹으며 살다가 다시 배를 타고 고구려 산산(蒜山) 아래에 닿으니,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었고, 거기서 구차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쳤단다(이 장면에서 눈물겨워야 하는데… 솔직히 맹숭맹숭하네). 고구려 사람들 인심도 좋네, 도미부인을 과연 가만 놔뒀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름답게 생각하자. 텍스트는 여기서 끝난다.
개로왕, 어쩌다 민심을 잃었나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얘기가 펴졌다는 건 개로왕에게서 민심이 떠났음을 보여준다. 개로왕, 실제로 말년에 민심 팍팍 잃었다. 왜? 고구려에서 온 이중간첩 때문이다. 대충 이런 스토리다(<삼국사기> 백제본기3 개로왕 21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에 보낼 간첩을 모집한다. 이때 도림(道琳)이란 스님이 자원하신다(스님이 간첩 된 거 원효편에서도 나왔다. 거칠부… 생각들 나시나?). 이 스님이 백제에 거짓으로 투항하신다. 글고 개로왕의 환심을 산다. 뭘로? 바둑이다. 강아지 말고 이창호 두는 그 바둑【博奕】 말이다. 개로왕은 바둑 매니아였다. 글고 도림의 바둑 실력은 국수 수준이었다【果國手也】. 개로왕은 도림에게 바둑 배우는 재미에 홀딱 빠졌다. 글다보니 그에 대한 신임도 날로 커져갔다. 글던 언날, 도림은 본색을 드러내며 개로왕을 파탄의 길로 꼬드겼다. 왕실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꼬신 거다. 개로왕은 그 말을 따랐고, 이 때문에 백제의 창고가 텅텅 비고 백성이 곤궁해졌다【是以倉庾虛竭 人民窮困】. 당근 민심도 떠났다(대원군의 경복궁 재건 생각하심 된다). 이 틈을 타 고구려군이 쳐들어왔고, 결국 개로왕은 한때 백제의 신하였으나 고구려군의 선봉에 선 걸루(桀婁)와 만년(萬年)에게 붙잡혀 아단성에서 죽는다. 따라서 도미부인 얘긴 이 무렵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민심을 잃으면 아무리 이전에 정치를 잘했더라도 꽝이다. 민심은 변화무쌍이고 예측불허다. 그래서 민심이 무서운 거다(그치만 돗자리, "민심이 천심"이란 말 안믿는다).
개로왕과 비슷했지만 그나마 격조가 있었던 진지왕
근데 신라에도 개로왕 비스끄리한 왕이 계셨다. 뉘시냐고? 재25대왕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되시겠다. 이 분은 개로왕과 두 가지 점에서 닮았다(진지왕에 대해선 위서 논쟁이 한창인 <화랑세기>에도 잼난 내용이 실려 있다. 그치만 오늘의 주인공은 이 분이 아니니 그냥 넘어간다).
첫째, 정치 개판으로 하다 죽었다. <삼국사기>에는 재위 4년만에 그냥 죽은 것으로 나와 있으나(신라본기4 진지왕 4년), <삼국유사>를 보면 정치가 문란하고 행실이 음란하여【政亂荒淫】 폐위되었다고 한다(기이1 「도화녀·비형랑」. <화랑세기>에선 진지왕이 폐위된 뒤 유배생활을 했다고 나온다).
둘째, 남의 아내 건드리려 했다. 사량부에 도화(桃花)라는 여인이 살았다. 복사꽃처럼 예뻐서 글케 불렀단다. 그 소문을 듣고 진지왕이 도화를 궁중으로 불러들인 뒤 관계를 가지려 한다. 근데 도화가 개긴다.
도 화 : 아무리 왕명이라 해도 남편이 있는데 글케는 할 수 없슴다.
진지왕 : 널 죽여도?
도 화 : 눼. 차라리 죽이세여.
진지왕 : 그럼 니 남편이 죽고나면 어쩔래?
도 화 : 그땐 개안아여.
진지왕은 도화를 그냥 놔준다. 글타고 남편을 죽인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그나마 젠틀한 거다. 글고 바로 그 해 진지왕은 폐위되어 죽는다. 2년 뒤, 도화의 남편도 죽는다. 남편이 죽은 뒤 10일쯤 지난 어느날 밤, 진지왕은 귀신이 되어 도화를 찾아온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글고 묻는다. "니 남편 죽었으니 이제 어칼래?" 스퍼… 증말… 집요하다.
도화도 어케 해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부모님께 상의한다. 그랬더니 부모님 말씀, (죽었지만 그래도) 왕명이니 어쩌겠냐면서 같이 자랜다. 이래서 진지왕 귀신은 7일 동안 그 방에서 함께 머문 뒤 사라진다. 뽕빨 다 뽑았단 거다. 일케 해서 낳은 아들이 비형(鼻荊)이다. 이 친구, 나중에 귀신들과 놀며 그들도 무서워 하는 대빵이 된다(어떤 연구자는 진지왕이 유배시절 데리고 산 여자가 바로 도화라고 보기도 한다. 비형은 화랑이구 말이다. 그럴 듯 하다).
정절이데올로기… 언젠가 그 공과(功過)를 따져보련다
첨에 도미부인편 쓰려고 맘먹었을 땐 정절이데올로기 문제를 건드려보려 했다. 전통시대 우리 여인들이 정조를 소중히 한 것 사실이다. 그거 좋은 일이다. 그치만 그것 너무 자랑스러워 할 것 없다. 왜 소중히 했을까. 지키지 못하면 사회에서 매장되기 때문이다. 누가 매장해? 부모와 형제, 이웃들이 먼저 매장한다. 글고 그 교묘한 시스템 속에서 같은 여자들끼리 치고받는다.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간통했다면 할 말 없다. 허나 어쩔 수 없이 강간을 당했어도 별로 동정받지 않는다. 원인이나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정절을 잃었으면 그때부터 여자는 죄인이다. 울 나라 정절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기회가 되면 정말 쓰고 싶다. 다른 분들도 이미 많이 쓰셨겠지만, 역사적 사례를 들어 따져보고 싶단 거다.
돗자리 중딩 때 어떤 반이 모범반으로 표창받았다. 그 반 넘들은 결석도 지각도 조퇴도 없었다. 왜? 만약 그랬다간 담임쉐임의 몽둥이 세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학생들의 평소 태도나 성품이 아닌 살벌한 시스템 때문이었단 거다. 난 울 나라 전통시대 여인들의 정절이데올로기도 비까비까하다고 본다.
도미부인의 서글프고 아름다운 얘긴 그냥 그대로 곱게 간직하련다. 그치만 여종 대신 들여보낸 부분은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 지꺼 지키겠다고 남꺼 빼앗으면 나쁜 사람이다. 글고 이 얘기가 정절지상주의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텍스트로 이용되는 건 싫다.
딴지 역사부 / 돗자리 (e-rig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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