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영혼의 내적 능력을 일깨우는데 더 작용하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단순한 개별적 외부 자극애 의해서 야기되지 않은 감정이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주재하는 상태가 된다(비밀학 개요, 2024, 319)."
필자는 퇴직을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신문 구독이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므로 정보를 얻을 곳이 딱히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읽다 보니 여러가지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글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문득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아니다'란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요즘은 '공부를 참 많이 하는구나'란 생각만 했다. 그래서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글들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차이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그것은 인간의 작업이 아니고 AI의 작업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AI의 작업이 겉으로 보면은 매끈하고 완벽해서 굉장히 잘 쓴 글같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가 없고 식상하게 느껴진다. 아마 AI의 작업이 일정 패턴이 있어서, 그 패턴에 인간이 싫증을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가 인간이 AI를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작업(글)에는 울퉁불퉁해서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는 모습이 거의 들어 있다. 왜냐하면 고심하면 그 부분에서 호흡도 끊기고 생각도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에는 감정의 기복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런 감정의 기복이 없이 물 흐르듯 글을 쓸려면 오랜 시간 글을 써야 한다. 이런 모습이 AI에는 없다. 이것이 완벽해 보이는 AI 글이 생명이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글을 읽고 용기, 힘을 얻는 것은 그 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속에는 글쓴이의 감정, 힘들고 어려웠던 감정, 또는 기쁜 감정이 있어야 한다. 요컨대 글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어야 독자들이 공감해서 그 글이 힘을 가진다. AI가 작업한 글에는 이런 감정이 당연히 없다. 독자가 공감할 수 없으므로 AI가 작업한 글이 힘이 없는 것이다. 조야하게 말하면 감정이 많이 개입하지 않는, 예컨대 법조문은 될 수 있으면 감정이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AI가 작업한 글이 정확히 들어맞을 듯하다. '세상을 바꾸는 펜의 힘','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이란 말도 머지않아 사라질 듯도 하다. 우리가 공감하면 힘을 얻는 이유와, AI가 작업한 글의 문제점, 그래서 이를 보강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이 질문이다.
첫째, 우리가 공감하면 힘을 얻는 이유이다. 먼저 말하면 공감이 정신 작업이기 때문이다. 힘은 정신이 움직여야, 정신에 연결되어야 힘으로 연결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영혼에 연결되어 영혼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래야 그것이 행동으로, 감정으로, 사고로 이어진다. 즉 공감이 정신에 연결되는 정신 작업이다.
둘째, 인간은 세 가지 단계로 논리를 파악한다. 결론, 판단 개념이다. 인간은 가장 먼저 결론을 짓는다고 한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사자를 볼 때 보는 순간 가장 먼저 '사자'다라는 결론을 짓는다. 물론 사자를 모를 때는 그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서 결론을 지을 것이다. 결론은 인간의 머리로 하고 에테르체가 담당한다.
그 다음 판단이다. 판단은 인간의 가슴으로 하고 아스트랄체가 담당한다. 그래서 판단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옳다고 판단할 때는 긍정적인 감정이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사람은 착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반대의 이야기도 가능하다. '그 사람은 나쁘다'라고 판단한다면, 나쁜 감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에는 반드시 감정이 개입된다.
다음은 개념이다. 우리는 대상을 보고 가장 먼저 결론을 짓고, 이어서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개념을 생성한다. 예컨대 그 사람이 한 일, 이런 저런 일을 보면 '나쁘구나'란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쁜 사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개념은 인간의 사지로 하고 자아가 담당한다. 이런 세 가지 논리 형성은 분명하게 나누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서로 연계되어서 이루어져서 바깥에서 볼 때 분명하게 구분짓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을 할 때 감정이 작용하고 그 감정을 받아들여야, 또는 연결되어야 개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개념이 형성되어야 인간이 행동으로 옮기므로 그렇다. 여기에서 여담으로, 그래서 학교, 사회에서 개념을 주입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대표적으로 표어가 있다. 표어(개념)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으로 바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표어를 곳곳에 붙이는 이유이다. 예컨대 좌측 통행, 횡단보도에서는 손들고 건너기 등등이 있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느 단계에서 이루어질까? 바로 판단 단계이다. 판단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가슴 영역, 아스트랄체(감정)가 한다. 아스트랄체가 감정체이고, 또 가슴이 움직여야 하므로 감정이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감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광고를 찍을 때에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먼저 감정에 동의해야 하고 이어서 그 감정과 하나가 되어야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공감이고, 독자가 글에 공감해야 글이 힘을 가지는 이유이다. 인간이 쓴 글에는 이런 감정이 내재되어 있어서 공감을 하지만, AI의 작업은 이런 감정이 없으므로 AI가 쓴 글은 힘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질문이다. 먼저 AI의 문제점이다. 우리는 AI의 시대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미 들어와 있다. 그래서 AI의 시대의 인재는 AI에게 질문하는 능력과 AI의 답변을 분석해서 선택, 취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한 업무, 예컨대 신입생이 하는 업무는 AI에게 맡기고 경력직만 뽑는다고도 한다. 문제는 경력직이 될려면, 단순업무를 해서 그 업무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업무를 하지 않는다면 경력자기 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당연히 AI가 하는 업무를 파악하지 못하므로 AI 에게 질문하는 능력도 없다. 나아가 답변을 분석해서 취합하는 능력도 그 일을 오랫동안 해야 길러지는데, 하지만 AI에게 맡기면, 그 효율과 능률을 인간의 능력을 넘으므로 AI를 도입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 일이 도태되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에 살아 남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가장 먼저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건강은 돌봐야 정신의 개발도 할 수가 있다. 더불어 AI시대에 요구되는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은 모두 인간 정신의 영역이다. 질문하고, 분석하고, 통합하는 능력이 창조적인 인간 정신의 영역인 것이다. 문제는 보이지도 않고, 책에도 나와 있지 않는 정신을 어떻게 파악해서 개발하느냐이다. 어떤 분야라도 그렇겠지만, 특히 정신의 영역은 오로지 스스로만 개발할 수가 있다.
다음은 인간 정신을 개발하는 방법은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인간 정신의 개발은 '에테르체의 개발'이라고해도 무방하다. 에테르체는 식물과 같은 에너지로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파악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렇지만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안내하고 이끌므로, 아스트랄체에 주목해서 아스트랄체의 속성을 이해하면 할 수도 있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의 바탕체이다. 기쁨, 슬픔, 우울, 짜증, 이런 감정이 모두 아스트랄체이다. 그런데 '왜 나는 아스트랄체를 알지 못하는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영혼의 속성 때문이다.
다음은 영혼의 속성이다. 영혼은 그 자체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 예컨대 내가 기쁘다면, 영혼은 기쁨 그 자체이다. 그렇지만 기뻐하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 순간 기쁨이 사리지고 없다. 또 슬플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슬퍼하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슬픔도 그렇게 사라진다. 그런 감정들을 꾸준히 살펴보면 기뻐하는 존재, 슬퍼하는 존재가 아닌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상하다 왜 그럴까. 왜 기쁨이 사라지고, 또 슬픔이 오는걸까라는 질문을 자꾸 하면 어느 순간 영혼의 모습이 드러난다. 기뻐하는 존재, 슬퍼하는 존재가 아닌 그 존재들을 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내가 질문을 하면 나의 자아, 상속에 있지 않은 자아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화두를 들고 계속 탐구하면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본래 모습을 파악하면, 그때 아스트랄체의 모습도 파악한다. 다음은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이끄는 방법이다. 식물, 또는 인간의 생명이 어떤 경우에 힘이 있게 움직일까? 긍정적으로, 도덕적으로, 간절하게 최선을 다할 때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도덕적으로, 간절하게 최선을 다하는 감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짜증이 나더라도 에테르체를 올바르게 이끌려면 아스트랄체의 감정을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지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데, 정신은 묘해서 내가 그 한계를 뛰어넘어서도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정신을 개발해야지,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이 특히 AI시대에 요구되는 인간의 처지이다. 위 문장, 이것이 영혼의 내적 능력을 일깨우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이 단순한 개별적 외부 자극에 의해서 야기되지 않은 감정이어야 하고, 이러한 감정이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주재해야 정신이 개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