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량지재(棟梁之材)
마룻대와 들보로 쓸 만한 재목이라는 뜻으로, 한 집안이나 한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맡을 만한 인재를 이르는 말이다.
棟 : 마룻대 동 梁 : 들보 량 之 : 어조사 지 材 : 인재 재
동량(棟梁)은 기둥과 들보의 뜻이고, 재(材)는 인재의 뜻이다.
그러므로 집안이나 한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인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천(勾踐)의 부인이 구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인 예용(曳庸)이 말하기를, ‘대부 문종은 나라의 동량(棟梁)이요, 임금의 조아(爪牙)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조아(爪牙)란 범의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처럼 임금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신하란 뜻이고,
동량(棟梁)은 집의 마룻대와 들보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하를 뜻한다.
마룻대는 서까래를 지탱하며 집의 중앙을 횡(橫)으로 버텨주는 가로 막대이다.
산마루에서 알 수 있듯이 마루는 정상을 뜻하는데, 마룻대(棟)란 집의 정상에 해당하는 중요한 대이다.
이 마룻대가 옆으로 뻗어 올라 집의 풍채를 한껏 웅장하게 해 주는 것이 용마루이다.
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얹히는 굵은 막대로 서집의 상단부를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의 들보 중에서도 가장 굵고 힘을 쓰는 것을 대들보라고 한다.
우리의 김 후직(金后稷)에 대한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을 살펴보자.
김 후직은 신라(新羅) 지증왕(智證王)의 증손으로, 진평왕(眞平王)을 섬겨 병부령(兵部令)을 지냈다.
그는 정사를 내 팽개치고 사냥을 즐기는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옛날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말(馬)을 달리며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발광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서경(書經)에서는 ‘안에서 여색에 빠지거나 밖에 나가 사냥에 몰두하는 것 중, 한 가지만이라도 있으면 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 고 하였습니다.”
그는 병을 얻어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도 충심은 변함이 없었고 유해를 왕의 사냥 길목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후직(后稷)의 사후(死後)에도 왕의 사냥 놀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가는 도중 어디선가“가지 마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출처는 후직의 무덤이었다.
왕은 후직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다시는 사냥터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를 간묘(諫墓), 묘간(墓諫)이라 말하였다.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는 신하의 지극한 충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간묘(諫墓)에 들어가면 묘비가 있다. 우뚝 하나만 덩그마니 서 있어 외로운 모습이다.
그것은 조선 숙종 36년(1710)에 경주 부윤 남 지훈이 김 후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다음은 신라시대 고승 원효(元曉)의 일화이다.
원효는 그가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원래 속세의 성(姓)은 설(薛)씨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침부터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큰 소리로 이런 노래를 불러댔다.
“누가 내게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 주려나. 내가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 내리라. (誰許沒柯斧爲斫支天柱).”
사람들은 원체 이상한 행동을 잘하는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번엔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러나 하면서도 그 노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이 대궐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스님이 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런 분의 자식이라면 영특할 것은 틀림없고, 나라에 훌륭한 인재가 생기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
마땅한 여자가 없을까 궁리하던 무열왕은 마침 요석궁(瑤石宮)에서 혼자 살고 있는 공주를 떠올렸다.
무열왕은 됐다 싶어서, 즉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안내하게 했다.
관리들이 원효를 찾아 나섰을 때, 원효는 이미 일이 그렇게 될 줄 알고 먼저 문천교(蚊川橋) 다리로 나가 기다렸다.
저 편에서 관리들의 모습이 보이자 원효는 모르는 척하고 다리를 건너오다가 일부러 발을 헛디디고 물에 빠졌다.
관리들은 허겁지겁 원효를 건져내서 요석궁으로 데려갔다.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를 대고 옷을 벗고 궁에서 머물렀다.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스님답지 않은 자유분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둘은 함께 밤을 보냈다. 열 달 만에 요석공주가 아이를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薛聰)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 거상(巨商) 임 상옥(林尙沃)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 했다.
손톱과 어금니를 말하는 조아(爪牙)는 적의 습격을 막고 임금을 호위하는 신하를 비유한다.
구천입신외전(句踐入臣外傳)에 실려 있다.
나무 목(木)이 없는 량(梁)도 역시 들보란 뜻이다.
나라의 동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이 우선이다.
우리나라를 단기간 발전시킨 원동력도 교육의 힘이 컸다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앞날에 적합한 인재를 잘 기르고 있는가는 사교육에 찌들고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요즘은 모두 머리를 흔든다.
또 있다.
나라의 일꾼을 뽑고서 포부를 발휘하게 해주지 않고, 정권 따라 몸을 사리게 해서는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
동량(棟梁)을 잘 기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옮겨온 글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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