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 저자 : 김지우 소설집
· 출판일 : 2005년 01월 03일
· 페이지수 : 232
· 판형 : 신국판
· 정가 : 9,000원
2000년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신예작가 김지우(金智雨)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김지우는 단편소설 「눈길」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능수능란한 언어구사와 우리 삶의 위태로운 경계를 포착하는 노련한 솜씨로 주목받아온 기대주이다.
이 소설집은 등단작 「눈길」을 비롯하여 5년여간 발표된 일곱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김지우의 작품들은 등단 초기부터 “날렵하고 발랄한 위트와 유머로써 발언”되는 것이 미덕이라 평가된 바 있는데(현기영, 소설가), 이런 특장에 더해 “일상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모습”을(황광수, 문학평론가) 포착하는 남다른 시선이 그의 작품들을 더욱 신선하게 만들고 있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에는 결핍된 조건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하찮은 사람들과 그들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때로는 날카롭고 신랄한 시선”을 던진다. 참신하고 활달한 시선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비정한 순간들을 꿰뚫는 통찰력과 경쾌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솜씨가 돋보인다. 우리 시대 밑바닥에 도사린 정신적 갈등과 삶의 도처에 잠복해 있는 부조리들을 투시하여 동시대인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민첩한 재능은 신인답지 않은 기량이다.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삶의 현장에 밀착해 재치있게 세태를 포착해낸 것으로 「디데이 전날」과 「그 사흘의 남자」를 꼽을 수 있다. IMF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진 「디데이 전날」은 자해공갈단(보험사기단)의 일상에 대한 빼어난 묘사를 보여준다. 파산한 사람들 각각의 삶의 이력, 자해공갈단과 병원 사이의 은밀한 관계, 밑바닥 인생들의 최소한의 인간미를 흥미진진하고 밀도있게 엮어가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빚더미에 눌려 허우적거리는 ‘여자’가 등장하는 「그 사흘의 남자」는 우리 시대의 삶의 풍속도들 가운데 하나인 노래방 문화와 거기서 마주친 사람들간의 관계를 실감있게 포착해냈다. 고리의 사채를 얻어 막다른 처지에 몰리게 된 ‘여자’의 황량한 심경이 리얼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자신의 범죄 때문에 자살한 청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자’의 상황이 교차된다. 남자의 사람됨과 절박한 외로움을 본 여자는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절박함 속에서도 따스한 관계가 싹틀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겨진다.
「눈길」은 김지우의 소설미학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황광수가 지적하듯,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경제적 결핍과 범죄의 유혹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 그리고 인물들의 말투와 화자의 의식의 흐름으로 포착되는 구어체 문장들에 깃들인 토속적 생명감” 등에서 비롯된다. 징역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가 달아나버린 주인공 태섭에게는 부양해야 할 홀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있다. 큰영감네 버섯농사를 도우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지만 그마저 새로 생기는 도로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데, 그에게 두 사람이 다가온다. 감방동기 ‘삐죽새’는 금고털이를 하자고 그를 찾고, 면도사 ‘정양’은 그의 집에서 설을 쇠겠다며 눈길을 걷는다. 삐죽새는 폭설 때문에 인근 마을에서 발이 묶여 있고, 정양은 험한 눈길을 헤치며 오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맺어진다. 출구가 막힌 듯한 상황을 그리는 이 소설이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것은 문체 덕분이다. 토속어의 활달한 구사와 날렵한 위트가 객관적 묘사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절망적 분위기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이러한 언어적 역동성은 김지우의 소설세계에서 특유의 매력으로 작용한다.”(황광수)
표제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풀어가는 소설이다.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나’는 번갈아가며 두 사람의 전화에 시달린다. 하나는 여고 1학년 때 담임선생이 교장에게도 신인문학상 초대장을 보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수술시간이 임박했으니 의사에게 줄 촌지를 가져오라는 어머니의 성화이다. 주인공이 겪는 복잡한 심리적 갈등은 우리 시대의 세태를 폭로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강하게 표출된다.
「물고기들의 집」은 낚시꾼들의 뒷바라지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다. 화자인 ‘할매’와 업둥이로 데려온 아들, 며느리는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아들보다 2년 연상인 며느리는 걸핏하면 사라져서 가족들의 의심을 받고 있고, 손님의 지갑이 없어지면서 아들은 도둑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한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게 직조되면서 혈연이 없는 가족구성원 사이에 믿음이 싹터가는 모습이 독자에게 잔잔한 미소를 선사한다.
부유한 변호사의 딸로서 학교 교사이기도 한 주인공이 남편의 뜻에 반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떠나는 착찹한 심정을 그린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식물들과 대화를 나눌 만큼 꽃을 사랑했던 여성이 집안에 꽃을 들여놓기를 거부하게 된 내력을 다룬 「댄싱 퀸」 등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배신하고 사랑하던 식물을 죽음으로 내모는 등장인물들의 실존적 고뇌와 애환을 더듬는다.
일상의 경계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개인들의 고통과 밀착하고 후미진 곳을 외면하지 않는 김지우의 치열한 산문정신은 상당한 신뢰감을 준다.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가 우리 독자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