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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는 신경림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이 상재된 것이 1979년이니,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다. 사실 국문과를 다니던 대학 시절에는 신경림보다는 김지하나 조태일, 그리고 양성우 같은 시인들의 시를 더 많이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기억된다. 독재정권의 엄혹한 탄압 하에서도 자신의 기개를 굽히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당시 판매금지되었던 시집들을 선배들로부터 몰래 빌려서 읽어보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현실 비판적인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부르며, 술자리에서 때론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면서, 신경림의 시를 읽으면서 넓고 깊은 시인의 시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비록 현대시가 아니라 고전시가를 전공했지만, 지금도 나는 특정 분과가 아니라 국문학을 전공한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시 읽는 것을 좋아해서 벌써 15~6년이 지났지만, 현대시를 독자들에게 쉽게 소개하고픈 생각에 어느 출판사의 의뢰에 따라 <시로 읽는 세상>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10여쇄 정도를 찍다가 출판사의 얄팍한 술수를 목격하고, 곧바로 절판을 시켜버리기도 했다.(<다시, 시로 읽는 세상>, 한티재, 2019.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 책에도 당연히 신경림의 시가 포함되어 있고,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경림의 시집은 거의 빠지지 않고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지만, 그 이후 시간이 날 때 다양한 시집을 펼쳐보는데 그 가운데 빈도가 가장 높은 시인이 바로 신경림이다.
신경림의 고향은 충북 충주이고, 이 시집의 제목인 <새재>는 경북 문경에서 충북 충주로 가는 고갯길로 흔히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이 시집의 가장 앞에 수록된 '목계장터'의 배경 역시 충주에 있는 지명이니, 이 시집은 고향에 대한 시인의 감성이 가장 잘 묻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의 표제작인 '새재'는 장장 7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이루어진 장시로, 시에 언급된 다음의 내용을 통해서 창작 배경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1913년 새재에서 싸우다가 / 원통하게 목 잘려 / 원귀로 객지를 떠돈 지 그 몇 해 / 이제사 고향땅에 돌아와 / 잠들다, 병진년에'(장시 '새재'의 일부)
주지하듯이 1913년은 일제강점기이며, 그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원혼을 달래주는 일종의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역사 의식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시집에 수록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이 마주한 어느 장날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다음 작품에서도 그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엽연초 조합
뒤뜰에
복사꽃이 피어 밖을 넘보고 있다.
정미소 앞, 바구니 속에서
목만 내놓은 장닭이 울고
자전거를 놓은 우체부가
재 넘어가는 오학년짜리들을 불러세워
편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늦오후
햇볕에 까맣게 탄 늙은 옛친구 둘이
서울 색씨가 있는 집에서 내게
술 대접을 한다.
산다는 일이 온통 부끄러움뿐이다가도
이래서 때로는
작은 기쁨이기도 하다.
('어느 장날' 전문)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그대로 어느 시골 장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특히 옛친구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산다는 일이 온통 부끄러움뿐이다가도 / 이래서 때로는 / 작은 기쁨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는 시인의 마음이 더욱 와닿는다. 이제 더 깊어진 시인의 시 세계를 앞으로도 계속 느껴보겠다고 다짐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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