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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까마득한 시절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6남매 가운데 5째로 태어난 나는 무슨 일이든 항상 후순위로 밀려야 했으며,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학용품이나 가방도 새것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 내 방을 갖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때로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잠을 자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자기 방이 없어서 거실에서 생활하는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 두개짜리 집에서 부모와 누나 둘 그리고 소년 등 모두 5명의 가족이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소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내용을 그려놓고 있다. 부모님이 방 하나를 사용하고 누나들 둘이 다른 방을 쓰면서, 소년에게는 거실이 자기 방이자 생활공간인 셈이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수가 많았을 때,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신의 독자 공간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족들이 방을 나서 거실로 나오기도 하지만, 문을 닫고 각자의 방에 들어서면 소년은 혼자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공상을 하며 지내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서 표출하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있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가족에서 누나로 살아왔지만, 성인이 된 동생이 하는 얘기를 듣고 이 책의 내용을 구상했다고 한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한 번도 동생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못하고, 그 상황을 당연한 듯이 여겼다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한다. '누나들 사이에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외로웠'을 당시의 동생은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거실에 있는 소년은 누나들의 다툼이나 부모님들의 부부싸움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자주 부딪히고, 그럴 경우 가끔 누나나 아빠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화해를 하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고, 다시 소년은 혼자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
소년은 그림을 그리면서 온갖 동물들을 상상 속에서 불러내고, 때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호출하기도 한다. 아마도 살아계실 적에 누구보다 소년을 사랑했을 할머니를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더 공감이 되는 내용이다. 소년의 상상 속에서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혼자임에도 그림을 그리면서 이겨내는 <소년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대가족 하에서 자기 방을 갖지 못해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래서 줄거리를 통해서 느껴지는 소년의 외로움과 그것을 이겨내려고 그림으로 달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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