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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을 따져본다면, 아마도 '희노애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쁨(喜)과 노여움(怒)과 슬픔(哀) 그리고 즐거움(樂)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은 분명 긍정적인 감정이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즐거움이나 기쁨의 감정은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쉽게 잊혀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여움은 오래 간직할수록 그 자신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고, 때로는 황폐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노여운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가급적 빨리 잊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다른 감정과 달리 슬픔은 오래 간직될 뿐만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떠올라 사람을 감상에 젖어들게 만든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애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인간의 감정들에 어떤 것이 있고, 또 그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인 저자 역시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 우리의 삶에서 슬픔이 오래 지속되고 때로는 그것을 견디는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슬픔은 피동적 감정이 아'니며, '고통과 절망을 껴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능동적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문학과 예술의 운명'이라는 제1부에서는 저자가 알고 있는 다양한 인물과 작가들,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상황을 '슬픔'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전혜린의 친구이자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봤던 이덕희, 소설가 최영주 등 저자가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슬픔이라는 주제로 엮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프랑스의 시인인 랭보와 젊은 나이로 요절한 시인 기형도 등 다양한 인물들과 문학 작품, 그리고 영화와 음악 등에 관한 예술적 일화들이 저자의 관심에 포착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주제에 걸맞은 소재의 선택과 설득력이 있는 글의 내용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모두 4개의 글이 수록된 제2부에서는 '슬픔의 힘을 믿는다'라는 제목으로, 대학로의 '학림다방'의 폐업과 복원 과정과 앞서 언급한 이덕희와의 추억, 그리고 소설과 음악 등에 얽힌 간단한 에피소드들이 '슬픔'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엮여지고 있다. '학림다방'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기에, 내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 대학로에 가면 종종 들렀던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그곳이 특별한 장소였기에, 거듭해서 학림다방과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 관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폭력의 기억, 슬픔의 공동체'라는 제목의 제3부에서는 역사 속의 비극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슬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주요한 화두로 거쳐갔던 '박정희 유령'에 과한 논의는 물론, 공권력의 힘으로 세입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용산참사', 그리고 1980년의 '5월 광주'는 물론 여전히 진실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문제 의식은 넓게 포진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건들, 그로 인해 죄없이 쓰러져간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저자의 글들에 묻어나고 있다. 그것을 잊지않고 기억하면서,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감싸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고통과 희망 사이'라는 제목으로, 슬픔의 감정을 넘어 그것이 희망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주제의 글로서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약 1년 동안 지속되어온 '코로나19'라는 질병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설사 코로나19의 유행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고 해도, 그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빚어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앞으로 우리의 삶은 욕망의 크기를 줄이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슬픔의 힘을 믿는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공감되면서, 지금부터라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도 다양한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보건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욕망을 부추기는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이 '슬픔'의 상황이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고, 조만간 많은 이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저자의 글을 처음 읽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글의 내용과 의미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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