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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크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논한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라깡은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따라서 라깡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공부한 적이 없다. 우선 모든 것을 ‘성적인 해석’에 결부시킨 그의 학설 자체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낯설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언어에 대한 중의적 해석을 덧붙인 라깡의 논리 전개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다.
‘충동에 관한 18개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라깡의 충동 이론을,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어떤 글은 라깡의 논법을 닮아 추상적으로 서술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글을 통해서는 라깡의 이론이 지닌 친절한 설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뒷부분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개념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라깡만의 독특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어, 앞 부분의 글들에서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었다. 결국 답답함에 검색이나 다른 자료를 통해서 라깡이 사용한 개념들의 의미를 조사해 보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진행된 상태이기에, 뒷 부분에 있는 글들이 보다 더 잘 이해가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의 제목에는 ‘몽타주’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몽타주는 '조립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인데, 특히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형체를 그려나가는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제목은 결국 라깡의 충동 이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8개의 조각들을 모아야만 가능하다는 기획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을 지닌 필자들의 안내를 따라, 모든 내용들을 읽었을 때 비로소 조금씩 그 이론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보다는 다소 진전된 이해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싶다.
예컨대 처음에는 이 책의 필자들이 사용하는 ‘주이상스’라는 용어가 지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라깡이 ‘개발’한 표현으로 즐거움 또는 향략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그것조차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여겨 일반적으로 ‘주이상스’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용어의 개발은 프로이트의 학설을 자신의 관점에서 잘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라깡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라깡의 이론은 기호학에 기대고 있는데, 그는 하나의 단어를 ‘해체’하여 다른 뜻을 파생시키며 활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라깡을 해체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어쨌든 이 책을 거칠게 완독했지만, 내용 이해에는 그리 만족한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호학이 지니는 모호함 때문에, 관련 분야에 대해 의도적으로 기피했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서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완독한 지금의 시점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한 저자들의 도움으로 라깡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겠다. 아마도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에 대한 내용을 접한다면, 이 책을 읽은 경험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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