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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의 난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의존할 수 있는 자료가 한정되어 있으며, 또한 그러한 기록마저 다양한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각종 기록이나 구비 전승물 혹은 유물 등에 나타난 면모를 자세히 살펴, 그 상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가 하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 책의 저자는 한반도에 주류 세력이 이주민인 '월지국'의 후손들이며,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견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러한 면모로 읽을 수도 있겠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추론을 일단 제시하고, 나중에는 그것이 추론이 아닌 확증적 '사실'처럼 단정하면서 서술하는 경우를 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성과를 제시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논거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다양한 추론들에 의거하여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펼치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의 곳곳에서 '월지국' 혹은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각종 '증거'들을 시대에 상관없이 제시하면서, 때로는 과학적 방법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사선 측정법조차도 오류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주류 사학계가 실증주의적 논거에만 매달리고 있기에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옳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개토대왕비문’의 ‘백잔(百殘)’에 대한 해석인데, 전체 비문의 내용을 통해서 그것이 ‘백제’가 아닌 ‘신라’를 지칭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백잔’을 ‘적은 잔여 세력’으로 단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문의 용례상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페르시아의 부대가 1만영 단위로 조직되기에, 그에 비해서 ‘백’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글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한문의 용례와 의미를 따져서 해석해야만 할 것이다. 그동안 30년 넘게 한문을 공부하면서, ‘백(百)’이 ‘적은 수’라는 의미를 지닌 경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한 정확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해석에 그친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나머지 주장과 해석들도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가 힘들었음을 밝히며, 전체의 주장 역시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화나 삶의 양태는 서로 다른 양상이 부딪히면서 조금씩 변하고, 때로 어떤 문화는 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전해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월지국'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것에 수긍할 수 있지만, 오로지 그들만이 한반도의 주류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그 문화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남겼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저자는 너무도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펼치고 있는 자신의 주장을 주류 사학계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무능하다'고 반복해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나로서도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에, 더욱이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분명 한국 고대사의 주류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연구에서 더욱 관심 가져야 할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 의미를 논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지면을 통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역사 연구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보다 세심하게 접근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역사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 역사의 어떤 면이 부각될 수 있는가를 아울러 논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닫아 놓고, 저자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하는 서술 태도가 도드라지게 표출되고 있다고 느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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