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기십시오. 주님
올봄에는 유난히 비가 많았습니다. 겨울이 길어지고 삼사월의 봄 계절에 차가운 비가 쏟아지는데 때를 기억하고 피어난 여린 봄꽃들이 아무런 보호막 없이 차가운 바람에 실려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있습니다. 부천에 살고 계신 어느 시인이 노래한 시가 생각납니다.
아무 것도 없구나.
얼굴을 가릴 손도 없이
꽃은 그냥
사나운 비를 맞는구나.
아름다운 것은 위태한 것
맨 몸으로
맨 몸으로
맨 끝에 서는 것
아름다운 것은 위태한 것이란 시인의 고백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한없이 연약한 모습으로 봄을 봄 되게 하는 여린 꽃들이 세상을 향기롭게 합니다. 내리는 비에 찢겨진 꽃잎들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도 그 꽃 향은 밟은 이의 발길에 묻어서 계속 따라갑니다. 한없이 여린 것들이 실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 가는 것이지요. 저는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토록 단순한 사실에 눈뜨지 못하고 참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했음이지요.
저는 지난 5월29일 주일날 부천 성지교회에 다녀왔습니다. 성지교회와 한 목사님께서 <눈먼 사랑>이란 주제로 그향세 공진두 종이일러스트 작가의 그림 전시회와 좋은날풍경 박보영아티스트의 공연을 제안하셨고 우리 벗님들 몇과 함께 다녀온 것이지요.
저는 아침 7시 반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열한시 낮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성가대 찬양이며 정제된 예배의 모습이 새로웠고 삭개오를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내내 속울음을 울었습니다. 그 깊은 깨달음은 여러 밤을 보낸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합니다.
상수리나무아래에 펼쳐진 그림들을 눈여겨보며 감상하는 교우들의 모습과 그림을 사고 싶어서 주문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익히 알듯 공진두 작가의 그림이 단순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종이를 섬세하게 오려 완성한 그림과 그림위에 쓰여진 짧은 글귀들에 매료되어 감상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보영씨의 노래는 감동이었습니다. 90분을 넘긴 꽤 길었던 시간이었음에도 박수소리도 뜨거웠습니다. 함께 공감해준 교우들이 고맙고 환대해준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보영씨는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익히 아는 이들, 특히 한 목사님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장 잘한 공연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한사람을 위한 콘서트를 이어가는 보영씨가 무척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의사의 걷지 말라는 선고를 받았음에도 허경희 사모님은 새벽차를 타고 부천까지 오셔서 우리를 감동시켜주셨습니다. 콘서트중간에 두 편의 시낭송으로 그 매력을 성지교인들에게 여지없이 발산해주셨습니다. 독서캠프를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안양에 사는 윤상근 최미영 부부와 김효남 벗님과 안산 임소희 벗님도 멀리서 찾아와 함께 했습니다. 부산 바닷가에서 사는 우리를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음으로 고마운 나들이였습니다. 모두 주님만 바라보며 어려움 견디며 이일을 해보자는 우리지만 아름다움은 위태한 것이라는 싯구처럼 늘 위태로움에 몸을 맡깁니다.
그럼에도 어느새 이미 이뤄놓은 그 무언가에 안주하고 그것을 차별화된 무기인양 여리고 순결함을 포기하고 비교 판단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반성하며 마음 다스려야한다는 가르침을 얻습니다.
2011년 한국기독교의 현실을 돌아보면 무척 답답합니다. 주님을 만난 뒤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고 평생을 신앙해온 내부자로서 우리의 궁극적 사랑의 대상인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오히려 호된 질책을 감내해야하는 현실적 자괴감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깃든 우리 도시를 내려다보면 빨강색 네온 십자가불빛이 셀 수 없을 만큼 수놓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현관문 앞에 부끄럼 없어 붙어있는 교패들, 곳곳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많은 사역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일 언론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크리스천들과 교회의 치부가 보도되고 인터넷에서는 유저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만 살펴보니 어느새 교회의 힘이 엄청 강해진 것 같습니다. 매주 교회로 들어오는 재정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며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자라고 떳떳하게 밝혀도 더 이상박해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분상승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없이 여린 순처럼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세상에 전하시다가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굳게 믿는 이들에 의해 처참하게 찢겨 숨져 가신 분
오늘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다시 세상의 묵정밭을 일구어 내야한다면 힘을 가진 트랙터로 밀고 갈 것이 아니라 호미와 쟁기로 일구어가야겠습니다. 한없이 더디고 미련해 보여도 여린 잎 새 하나 다치지 않게 힘없는 농부처럼, 때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비난과 고난도 감내해내야겠습니다. 십자가의 종교가 그 십자가를 무기삼아 힘을 발휘한다면 이처럼 역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면 그 힘은 바로 나를 이기려하고 주님께 복종하고자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드릴기도가 있다면 모든 비난자들, 우리 기독교를 헐뜯고 손해를 끼치는 세력을 꺾어 달라고 주먹을 치켜든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길이 아닌 세상방식의 힘에 기대려 하는 나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은 힘이 아닌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끝내 순결과 순수함을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겠지요. 정의는 주님의 몫이지요. 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득해 집니다.
그럼에도 한희철 시인의 고백에 가슴이 울렁입니다. 나를 이기십시오, 주님
더 많이 아파
아픈 이 받고
더 많이 잊혀져
잊혀진 이 받고
더 많이 없어
없는 이 받고
더 많이 쓰러져
쓰러진 이 받도록
나를 이기십시오, 주님
주저하는 나를
다시 한 번 이기소서
초량 기쁨의집 서가에서
첫댓글 집사님 올리신 글을 보니 주일 이른 아침에라도 따라 나설걸..하는 맘이 듭니다
나를 이기고 예수의 흔적만 드러내고픈 소원이 기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할텐데요..
아름다운 만남 아름다운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회다운 교회, 신자다운 신자됨을 위해 고민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치열하게 걸어가는 삶에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에 감사를...
집사님, 우리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이 더욱 필요한 때인것 같습니다.
나를 이기십시오 주님 이라는 고백이 절절히 나옵니다
못난 저를 이기시어 향기가 흘러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