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OulD-eMm5Q?si=DCUexOFRsyngbWCo
네 안의 빛을 신뢰하라 마가복음 7장 24-30절
오늘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이 이 일이 일어난 지역은 두로 지역으로 이스라엘 북쪽의 이방지역입니다. 이 여인 또한 그리스 사람으로 이방여인입니다. 이 이 가나안 이방 지역은 전통적으로 바알신와 아스다롯 여신을 숭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풍요의 신으로 자본과 번영, 풍요와 성장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를 일컸습니다. 이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어떤 귀신이 들렸는지 본문에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이런 상황을 유추해 볼 때 이 딸은 적어도 성장과 풍요, 번영과 성공을 최우선주의로 여기며(소위 번영신학) 치열한 경쟁와 비교문화 속에서 마음의 병이 생겨 스스로 주눅 들어 하는 귀신에 씌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에 있었을 때 MIT대학을 나오고 미국 뉴욕 증권가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한 청년이 성격도 좋고 자신감도 넘치며 잘 살았던 청년인데 어느 시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예기를 해주질 않으니 알 수가 없어요)는 회사도 그만두고 모든 일을 접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아요. 하루 종일 불도 켜지를 않고 방안에 갇혀서 잠만 자는 거예요. 그러기를 몇 년을 그러는 거예요. 그 친구가 실력이 없는 게 아니예요. 능력이 없는 게 아니예요. 자기가 무너진 거예요. 부모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노심초사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어쩌면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의 딸도 그런 마음의 병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타난 걸 보면 사방팔방 딸을 살리기 위해 할 일 못할 일 구분하지 않고 다 뛰어 다닌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이 내 딸을 살려달라는 간청을 예수님께 했을 때 예수님의 반응은 정말 인종차별적인 발언입니다. 그 여인을 개취급한 발언입니다. 너는 개니 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어떤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혹자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러셨다고 하는데 다른 여러 본문을 봐도 이런 식의 대화법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는 29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이 여인의 태도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자신을 개취급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개취급하는 사람앞에서 그 면전에서 당신이 개로 여기면 좋소. 나 개요. 그런데 개도 생명이고 개도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하대하고 있지만 그 여인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하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비천한 존재일찌라도 나도 소중한 존재 아니냐, 이방 사람도 여인도 아픈 내 딸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다 귀한 존재 아니냐는 거죠.
여러분 사람들이 저를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욕해도 내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하면 그리고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에 진실성이 있으면 그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온갖 말로 나를 치장해주고 나를 좋은 말로 평가하고 높여주어도 내가 내 스스로 형편없는 존재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 여기며 스스로를 하대하면 그리고 그런 삶의 이유들을 만들어가면 스스로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라는 말은 너의 그런 생각에 그런 태도에 구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나를 짓눌러도 내가 인간이기를, 인간다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나자신을 그렇게 대우하고 그렇게 선택하고 그렇게 열어가면 그자체가 나의 생명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에게도 딸에게도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먼저 환대해야합니다. 존중하고 존중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고양시에 두 감리교회가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기업도 합병을 하지만 교회도 합병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상가 건물 전세교회가 있었고 자체적인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교회가 있었는데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은퇴를 하시면서 두 교회가 합쳐졌고 합쳐진 교회의 담임자가 전세교회 담임하고 계시던 분이 되셨어요. 그러면서 합병의 조건으로 딱 하나의 조건을 내세우셨어요. 은퇴식과 은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은퇴하시는 목사님이 속해 있던 교회에서 처리하고 그후 합병 이후에는 새로운 담임자와 새로운 교회가 은퇴 담임자와 관련된 어떤 부분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은퇴하시는 목사님께서 내세우신 합병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은퇴 감사예배 때 새로운 담임자가 드린 예우, 그리고 그 이후 명절 때나 새로운 교회에서 결정한 은퇴하신 분에 대한 예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거절하셨다는 겁니다.
요즘 교회가 어떤 시대냐면 교회들이 작다보니 담임자가 은퇴할 때 은퇴비를 충분히 마련해 드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후임자에게 그것을 부탁합니다. 새로 오는 분들이 일정정도의 돈을 은퇴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새롭게 그 교회 담임자로 가는 거죠. 교회에서도 교회 비용이 따로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돈으로 성직을 사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런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리고 중간에서 브로커들이 연결시켜서 재미를 보면서 점점 더 이것이 당연시 되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 평생 걸어오셨던 목회에 길에 당당하고 스스로 걸어왔던 길들을 가장 존중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나셔서 후임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기도하고 응원해 주십니다. 그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따뜻해 졌습니다.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을 스스로에게 열어준 겁니다. 그분은 쫌 없이 살 겁니다. 근데 자유롭게 사실 겁니다.
호오포노포노라는 하와이인들의 전통명상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맙다. 미안하다. 용서해줘, 사랑해 라는 아주 단순한 말을 만트라처럼 반복적으로 말하는 행위를 통해 내 내면 안에 있는 자아와 끊임없이 화해하고 그걸 통해 나를 회복해 나아가는 명상법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느끼고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인식하는 이 내 안에 보다 본질적인, 참나 어쩌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던 태초부터 내가 죽어도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있을 내 내면의 더 깊은 곳에 있는 그 나를 함부로 대하고 업신여기고 막 다루고 살아왔던 모든 삶의 시간들 속에서 내 자신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왜곡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존중하고 그런 나와 화해하고 그런 나를 용서하고 그런 살려가고 온전히 사랑하는 삶의 방식들을 통해 내가 좀 더 참 나다워질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을 처음 맞이해봅니다. 늙어가는 것도 몸이 아파가는 것도, 고령화시대 특히 경제적인 측면, 육체적인 측면, 더더욱 AI시대를 맞이하면서 기계가 인간의 삶을 대치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더욱 커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나 홀로 맞이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맞이합니다. 홀로 겪는 어려움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나홀로 해결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희는 함께 공동체를 일구며 함께 연대하며 헤쳐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속에서도 내가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안하면 그 불안감을 읽어주고, 불안의 이유들을 들여다봐주고, 근력이 부족하면 근력을 키워주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삶의 길들에 길을 열어주는 거죠. 남이 나를 함부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듯이 내가 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남이 나를 존중하고 아프면 돌봐주고 힘들어하면 쉬게 해주고 불안해 하면 불안의 원인들을 이해시켜주고 다독이면서 삶을 몰아치거나 재촉하지 않고 내스스로 당당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들을 열어주면서 살아가야죠.
이철수 판화가의 판화입니다. 네 안에 밝은 빛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촛불이 하나 켜지면 주위가 밝아지듯이 내안의 밝은 빛을 찾아내 키워주고 발현시키고 활성화시키는 만큼 우리의 삶은 힘찬 생명에 에너지 가득할 것입니다. "네가 너를 대하는 태도안에 구원이 있다. 너의 딸도 그런 정신상태로 살게하면 곧 회복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 안의 빛을 신뢰하면서 먼저 내면의 나를 구원해 나아가는 그래서 그러한 구원이 연결과 연대로 관계와 사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기를, 그래서 누룩이 밀가루 곳곳에 들며들어 온 빵을 부풀게 하듯 삶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부풀게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