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이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해주십시오/ 박래군

[豚悟]

용산참사, 이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해주십시오

박 래 군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오늘로 91일입니다. 용산참사를 해결하자고 구성된 용산범대위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갇힌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습니다.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장례식장 4층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장례식장 밖은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24시간 섭니다. 유가족들은 우리 수배자들의 안전에 민감한 반응입니다. 만약 경찰이 쳐들어오면 유가족들이 지켜주겠다는데, 경찰이 작정하고 들어오면 아무리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규찰대가 있고, 유가족이 있어도 어림없는 일이겠지요. 어느 날 경찰이 쳐들어온다면 유가족들과 전철연 규찰대원들이 피해 보지 않도록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걱정입니다. 당장은 경찰이 쳐들어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어느 날 아침에는 눈을 뜨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걱정만 끼친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

며칠 전에는 수배 당하고 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앞으로 저의 신변이 어떻게 정리될지 모르는 일이라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화선 끝으로 들려오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집에는 언제 올 거니? 몸은 괜찮아?”

대학 입학 이후 이런저런 운동을 한다고 30년 가까이 걱정만 끼쳐드린 자식입니다. 운동 속에서 막내아들도 잃고도 시골서 농사짓느라 고생이신 그 어머니는 끝내,

“목소리도 잊어먹겠어. 속 상해죽겠다.”며 말끝이 울먹이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는 하지만, 왜 꼭 그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50 다된 자식이 조금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신 듯합니다. 언제? 그 늙으신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용산참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장례는 언제 치르고, 그리고 다시 이어질 수배와 구속, 재판이 끝나고 수감 생활은… 언제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뵐 수 있을까요? 누구도 모르는 길입니다. 마침 형님이 집에 와서 농사일을 돕고 있다니 한편 맘이 놓이지만, 걱정과 꾸중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껏 형님께는 전화 한 번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매주말 찾아와서 잠깐 동안 만나지만 단단하게 견뎌주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조금이라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지만, 가족들이 가고 나면 참으로 허전합니다. 그 가족들이 사는 집에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 그냥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활동가가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일로 마음 약해지지 않으려 다잡을 뿐입니다. 가족들이야 언젠가 수배도 풀리고, 구속에서 풀려나 자유를 되찾으면 만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과는 만날 수 없지요. 그것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생존권을 위해서 망루에 올랐던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이제는 사진으로만 고인이 되어 버린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뿐입니다. 혹여나 꿈길에서라도 한 번 만나고 싶지만, 야속하게도 고인이 된 그들은 꿈길에서조차 쉽게 나타나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고인들과 나누었던 그 많은 일상사들이 추억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고, 세월이 흐르면 그 추억들마저도 색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지는 법이지요.

매번 돌아오는 기일에는 다섯 가족들이 한날에 제사를 올려야 합니다. 마치 지금 장례식장 분향소에 상식을 똑같이 올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산소에도 같이 가고, 제사도 같이 올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시간은 늘 2009년 1월 20일에 멈추어져 버립니다.

1월 20일 그 후

91일이 지나도록 우리는 대통령의 사과 한 번 듣지 못했습니다. 망루에 올라갔던 농성 철거민들만 구속되고, 기소되었고, 용산범대위 상황실장은 구속되고, 저희는 수배 중입니다. 그리고 용산범대위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소환의 대상이 되고, 용산 집회와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소환장을 받고는 합니다. 이런 공안탄압이 없습니다. 마치 저주의 낙인을 찍듯이 ‘용산’만 들어가면 집회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으려 하고, 금지통보를 날립니다. 추모제이고, 추모행진이니 집시법의 신고대상도 아닌데도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말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만 듭니다. 무엇이 겁이 나는 것일까요? 5명이나 사람을 죽여 놓고 철거민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대로 사건을 끝내려 한다는 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묶인 뒤에 보니,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이란 조직이 꽤나 단단합니다. 지금까지 91일이 넘도록 용산4지구 참사현장을 지키고, 순천향병원에 조를 짜서 규찰을 서면서 유가족과 수배자들을 지키고, 그러는 과정에서도 구속자 석방 서명을 25만 명 넘게 받았습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거리에서 서명을 받으면서 열 받는 일도 많았나 봅니다. 전철연에 대한 이미지가 폭력, 테러집단으로 매도된 탓이지요. 그런데 전철연은 철거민들의 공동체입니다. 젊은 사람들로부터 80세 노인까지 함께 규찰을 서고, 서명을 받고, 투쟁을 나갑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규찰을 서는 모습을 보면 너무 황송하지요. 재개발 구역에서 이분들이 겪었을 폭력과 고통, 울분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용산범대위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도서출판 삶이 보이는 창,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165&page=1)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에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철거민들이 겪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집 한 칸 지키기 위해서, 세 들어 영업하던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 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철거 투쟁은 너무도 지난하고, 참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제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닌 거지요. 일 나갔다 돌아오니 집이 다 부서져 있고, 다시 친 천막조차도 부서지기를 여러 번, 그런 다음에야 겨우 임대아파트 한 칸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심한 일입니다. 한 평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의 주거권, 생존권을 잔인하게 짓밟는 재개발의 악순환 끝에 결국은 용산참사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철거민들이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만, 상가 세입자대책위원회 소속의 철거민들은 자영업자들이므로 중산층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도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길바닥에 나앉는 재개발 정책은 분명히 시정되어야 합니다. 용산에서 그 끔찍한 참사를 겪고도 살인적인 재개발을 용인하는 것은 인간세상이 아니라 야만의 세상, 야만의 질서를 용인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용산에서 재개발은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철거는 집만 부수는 것이 아니라 동네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 결국 그들의 삶은 고스란히 짓부수는 야만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이번 용산참사를 통해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철거’라는 재앙

제가 감당해야 할 몫 중에서 가장 큰 몫은 아무래도 유가족들입니다. 1월 20일, 참사현장에서 “저기, 사람이 있어요!” 울부짖던 그 가족들, 가장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울며불며 경찰에 매달리다가 그 시간에 부검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던 그 가족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검찰로, 경찰로 국회로 뛰어다녔지만 결국은 검찰에 의해서 내 아버지요, 남편들이 테러집단으로 자폭을 했고 그런 까닭에 특수기동대 1명이 죽게 되었다고 해서 같이 망루 농성을 하던 철거민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와 치상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 그리고 다시 대못을 박는 소리만 질러대는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언론들을 보면서 원한 맺힌 시간을 보내야 했던 유가족들…이제 지칠 만도 한데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 없이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버티는 유가족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쩌면 유가족들은 죽은 이들이 인간이었음을 공인받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 분들을 두고는 혼자 편한 길을 갈 수는 없기에 저도 이처럼 유가족들 곁에서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일일이 전화를 드려야 할 텐데, 전화하기도 어려워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LIVE AID 희망’에 관심 갖고 많이 참석해 달라는 것이지요. 23일(목)에는 ‘이승환, 이상은, 흐른, 원디시티, 오! 부라더스’이 공연하고, 24일(금)에는 ‘브로콜리 너마저, 킹스턴 루디스카, 갤럭시 익스프레스, 블랙홀’이 공연합니다. 이들 뮤지션들이 한 푼도 받지 않고 무대에 서는데, 공연 시간은 오후 7시 30분부터 세 시간이고요, 장소는 추계예술대학교 추계콘서트 홀(2호선 아현역 2번출구)입니다. 공연 관람료는 2만 원이고, 궁금한 것은 749-0883(콘서트 준비위)로 문의하거나 인터넷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165&page=1을 찾아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같이 하고 싶은데, 그곳에 갈 수 없네요.

그리고 두 번째 부탁은 오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진행되는 ‘용산참사 100일 추모주간’에 함께 해달라는 것입니다. 22일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함께 용산범대위는 농성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29일 100일을 맞는 날에는 종교인들과 함께 기도회를 갖고, 5월 2일에는 시내에서 범국민추모대회를 갖습니다. 5월 2일은 촛불 1주년이 되는 날이라서 촛불시민들이 대거 참석하게 됩니다. 이런 투쟁들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몸은 갇혀 있지만, 저의 마음은 늘 투쟁하는 유가족과 전철연,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일 저는 용산참사 현장과 집회 현장, 그리고 거리 시위의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의 주장 구호를 외치고 싶습니다.

정말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90일 넘어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계시는 덕에 힘든 나날이지만, 유가족들이나 저와 같은 사람들이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매일 미사를 드립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참으로 헌신적으로 이 일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쌀과 김치를, 노동조합에서는 기금을 모으고, 많은 이들이 여러 일용할 물품들을 보내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주십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길에서 용산참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문제라는 점, 이런 점을 관심과 애정으로 확인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요청 드립니다. 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용산투쟁을 하면서 짬짬이 편지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인사드릴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4월 20일 용산참사 91일째 봄비 내리는 날에

인권활동가 박래군 드림.

* 성금과 후원 물품을 보내주실 분은 아래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용산범대위 대표 계좌

신한은행 140-008-234498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 유족 대표 계좌

농협 302-0018-2602-31 전재숙 (고 이상림 님 부인)

◎ 물품 보내실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동 657 번지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4층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02-795-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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