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은 늘 새로운 날, 맞다. 무한 반복이라고 그날이 그날이라고 한탄했지만, 사실은 늘 새로운 오늘이다. 같은 오늘은 없다. 그런데도 새롭게 살지못하고 있는것은 나 자신이 새롭지 못해서가 아닐까. 늘 구습에 젖어있고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고있다. 용기가 필요한데 어디가서 그 용기를 찾지? 늘 해멘다. 어제도 해메고 오늘도 해멘다. 이것이야말로 무산반복아닌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다. 발전을 원하지만 그 발전이 없다. 나만 그런가? 때로 남들도 나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위로를 느낄때가 있다. 모두가 자기길을 잘 가고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홀로 뒤처저 길을 잃고 해메이는 것처럼 느낄때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불안한지,,,그럴때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걸 알았을때 무한 위로가 된다. 이건 옳거니 옳지않거나의 문재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나라 안팍으로 매우 시끄럽다. 나라가 옳바로 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문명국가라면서 왜 재대로된 정의와 공의가 서지못하는 것일까. 내편과 네편만 있을까. 내 이익과 네 이익만 있을까. 온세상이 악에 받쳐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곧 멸망에 이른다고해도 놀랍지 않을것같다. 잘난사람이 많으면, 우두머리가 많으면 오히려 분쟁이 나게마련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참으시는 것같다. 어쩌면 우리끼리 해결하길 바라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누군가를 이르켜 일하고 계실지도 모르고. 그분 스스로 창조하시고 참 좋았더라고 하신 이 세상이 결코 망하게 하시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마냥 두고 보시지는 않으시리라. 뒤엎어 새롭게 제창조를 하시지 않을까. 약한자, 가난한자, 사랑이 많은자, 온순한자, 밟힌자, 억눌린자, 오래참는자를 새워 주시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이땅에 왔으면 좋겠다. 정의가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아이들이 공부에 치이지 않아도 좋을태고, 집이없어 이리저리 떠도는 일고 없을태고, 건물주가 꿈이되는 황당한 일도 더는 없을텐데,,,.
장미가 고운 계절이다. 더워지고 있기도 하고. 양산을 써야하나? 반지하는 햇볕이 아쉽다. 그렇다고 땡볕에 대놓고 나댈수도 없으니 모자나 양산중에 택해야 한다. 여기서 선택의 기회가 있는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는게, 머리숫이 모자를 경계하게 한다. 여기서도 선택보다는 한쪽으로 밀고있는 것이다. ㅎㅎㅎ 내게 선택이 없다니까. 대세가 가르키는 쪽을 따르는게 나의 선택이라면 선택인 셈이긴하다,,. 작은 아버지로부터 카톡이 왔다. 가끔 유익한 정보들을 보내주시곤 한다. 카톡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하고있다. 길게 문장을 쓸필요도 없다. 그냥 누군가가 보내준 예쁜 사진이나 간단한 문장을 재발신하면 그것으로 안부가 되어주니 간편하고도 좋은지 모른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어린시절 나는 손편지 쓰는걸 매우좋아했는데,,, 그때는 물론 모두 손편지가 당연했다. 글씨를 매우 잘 썼던 승이삼춘,,, 이 생각난다. 잘 계실까? 어떻게 사셨을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는 하지만 내 청춘시절의 그리운 이름들은 무소식인채로 잊혀지고 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분도 있다,,,. 하긴 내 청춘이 어디 흔적이라도 있긴한가. 허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나는 아직 여기있는데. 찌그러지고 말라가는 모습으로 아직 여기있는데,,,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참으로 불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