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왕후 공의왕대비
1514년(중종 9) ~ 1577년(선조 10)
인종(仁宗)의 비(妃).
1524년(중종 19년) 박씨 나이 11세 되던 해에 정현왕후가 세자빈으로 간택하여 인종과 혼인하였으며, 1544년 11월 인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되었다.
인종은 태어난 지 6일 만에 생모 장경왕후가 죽고 시기심이 많은 계모 문정왕후의 손에 자라야 했다.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여러 차례 죽임을 모면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종은 효성이 부족함을 자책하고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인성왕후와의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종의 재위기간은 9개월이었으며 인성왕후는 인종 사망 후 32년간을 자녀없이 홀로 살다가 1577년 (선조 10)11월 경복궁에서 64세로 승하하였다.
명종은 인성왕후 존호를 올려< 인명 공의>를 더하였다. 그래서 <공의왕대비>로 불리운다.
명종은 공의왕대비를 극진히 모셨다. 해마다 생신날이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경복궁에 가서 축하인사를 드맀다. 해마다 몇차례씩 선물을 올리고 하례를 하였으니 며느리 청송심씨 또한 함께 하였다.
청송심씨는 마음이 고왔고 자비로웠으며 엄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명종이 죽고 인성왕후(=공의왕대비)가 대비전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선조를 임금으로 지목하였고, 왕비 의인왕후도 집안에서 간택하였다.
실록에는 인순왕후가 명종이 선조를 후사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후계결정권은 대비에게 있었으니 공의왕대비가 결정하였을 것이다.
인순왕후가 먼저 죽자 인성왕후가 몹시 슬퍼하였다 하는 것으로 보아 인순왕후가 대비를 소홀히 하였다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보면 국가대사에 대비의 의견을 듣고 따르지 않을 수도 없거니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공의왕대비의 승낙 하교가 있어 선조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동영상스토리가 있는 조선왕릉 테마 기행 '효행테마', 인종과 인성왕후 효릉-태믹스의 역사지식문화 콘텐츠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선왕과 왕실어른에게 정성을 다해 섬기고 공경했던 왕의 효행담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세종의 맏아들 문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병이 들어 죽음에 임박하자 문종은 불철주야 병석을 지키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간호했습니다.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병석에 누운 세종이 오히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문종은 아버지의 간호에 너무 무리를 하여 건강을 크게 해쳤고 재위기간 대부분을 병석에서 보내다 2www.youtube.com

첫댓글 세양공파의 10세 박용(墉)금성부원군 따님이신




(仁宗) 비이시다.
11세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로
12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