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은 함께 건너야 할 강(조현)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고 신체적 정신적 활동이 활발해져 롤로고스터를 타는 듯한 고양되는 조증과 기분이 가라앉고 땅으로 꺼져 들어가듯이 우울해지는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상태로 ‘양극성 장애‘라고 한다.
판사 출신으로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잠시 국회를 떠나 있겠다고 밝혔다. 공황장애 재발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 파일 관리업무를 지시받은 뒤 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내면서 증상이 시작됐다고 한다. 공황장애는 개그맨 이경규·김구라·정형돈, 가수 김장훈, 프로야구 투수 홍상삼 등 유명인도 앓은 적이 있다고 공개한 병이다. 가수 이은미와 소녀시대 태연, 걸그룹 포미닛 출신 현아도 우울증 치료 사실을 고백했다. 배우 장근석과 가수 이범학은 조울증을 공개했다.
스타들의 공개가 이어져 심리적 질환이 유명인 병으로까지 불리게 됐지만, 유명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3년간 20대 가운데 우울증·불안장애·스트레스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무려 50만명이나 된다. ‘우울한 20대’는 우리 시대의 그늘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심리적 장애를 감추지 않고, 연예인은 이를 공개하고, 일반인도 이젠 점차 스스럼없이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심리질환은 꽁꽁 누르면 누를수록 고통은 늘고, 치유는 더 어렵다. 따라서 자신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 ‘나 아프다’며 가족이나 친구·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2년간의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20대에 우울증을 앓은 백세희 작가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최근엔 조울병을 앓아온 이의 고백록이 나왔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다.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 책의 저자는 <한겨레>의 이주현 기자다. 이 책은 그가 스물일곱이던 19년 전 일기에 ‘죽음의 수용소’라고 쓴 정신과 폐쇄병동에 갇혔던 생생한 장면부터 좀체 드러내기 쉽지 않은 내용의 ‘커밍아웃기’다.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냈을까. 같은 신문사에서 자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씩씩한 후배 여기자’로만 여겼던 그의 ‘수기’에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한 건물에 나처럼 ‘눈치 없는’ 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조증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상승했다가 울증 때는 깊은 늪에 빠진 듯한 그를 지켜준 이들이 있었다. 가령 휴직 기간 매주 ‘이주현’의 집을 찾아 자기 친구들과의 주말여행 때 여러 번 그를 데려가주어, ‘심드렁하고 시무룩한 상태’의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기다려주고 함께해준 ‘윤강명 선배’ 등 동료들이 있었다. 그가 ‘사춘기도 없이 공부 기계가 되게 했다’며 거칠게 분노를 터트려도 딸과 함께 이를 견뎌내며 성장했던 부모와 두 자매,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이모’를 공감해준 조카가 ‘사막’과도 같은 조울의 강을 건너도록 도와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의 생각·감정 같은 ‘마음’은 사계절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호수가 아니다.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바위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흐렸다가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변화무쌍한 날씨와도 같다. 날씨가 내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가물기도 하고, 때로는 장맛비가 그치지 않아 강둑이 넘치기도 한다. 그런 재난이 발생하면 이재민을 돕기 위해 너나없이 발 벗고 나서듯, 심리적 아픔도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당사자뿐 아니라 강가에 사는 이웃들까지 도와서 함께 이겨내야 할 ‘삶의 재난’이다.
조현 기자
첫댓글 중학교 때 매일 5분씩 글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노란 표지의 꽤 두툼한 노트 안쪽에 나는 유치환 시인의 <바위>라는 시를 써놓았었다. 너무 많은 것들에 휘둘리는 내 감정이 감당하기 어려워 시인이 말한 바위 같은 마음상태가 되기를 꿈꾸며. 지금도, 좀 무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물상에 마음을 건네보는 일상의 오감이 때로는 행복감을 주지만.
"너 우울증이구나" 하며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주변인들에게 난 말합니다."새삼스럽기는.."오랜 세월 같이 지내온 온갖 색들의 감정들에 덧씌워진 우울..견딜만큼의 무게로 평생 따라다닐 특유의 성격을 떼어낼 생각은 없습니다. 나의 가엾은 영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