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세에 아이가 학교에 밀어 넣어지면 9, 10세에 있어야 할 체험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게 계획의 의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 결과 저 아래에서 부글 부글 끓습니다(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술, 2023, 242)."
다음은 여담으로 필자가 현장에서 초등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은 일이다. 당시 어떻게 할지 몰라서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덕 전담교사를 했는데 종이 울리고 교실에 들어가면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자 가벼운 명상을 했다. 먼저 아이들을 일어서게 한 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스트레칭을 하면 외부로 향해 있던 아이들 마음이 내부로 들어간다. 교사는 이를 확인한 후 아이들을 의자에 앉힌다. 아이들은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어서 교사는 명상 멘트를 시작한다. 명상 멘트로는 그날의 교육목표나, 도덕과 덕목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사랑합니다'를 말한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는데, 한 남자아이가 불쑥 선생님이 '왜 우리를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해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도 당황한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또 아이가 보기에 다른 아이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아이는 또래보다 덩치가 컸고, 또래보다 성숙해 보였다. 교사는 아이를 순간 바라봤을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가만히 있었으므로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왜 그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반응했을까'? 그리고 다른 아이는 '왜 여전히 받아들이는가'란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도 슈타이너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공부를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았다. 그리고 어느 날 위 문장을 읽으면서 아! 하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정신의 속성이 그렇듯이, 아마도 아이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이렇듯 생생하게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은 이와 같이 내가 겪어야 이해하고 비로소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기 전이 '지식공부'라고 하면 정확하다. 그래서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발달단계에 중요한 지점이 태어나서 7세까지는 몸이 성장하고, 7- 14세는 에테르체가 탄생, 발달하고, 14-21세까지는 아스트랄체가 탄생해서 발달한다. 그리고 21세 무렵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 인간의 발달단계에서의 중요 지점이다. 여기에서 자아의 발달단계는 태어나서 3세까지는 자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이 시기까지는 기억이 거의 없다. 3세가 지나고 4세 무렵이 되면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자아를 지각한다. 이 자아가 에테르체가 만든 상을 보는 상속의 자아이다.
4세가 지나 5세 즈음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불현듯 아! 하고 자신의 자아를 지각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자신의 자아가 등장한 것이다. 자아를 지각하기는 하지만, 이 시기 자아는 다른 모든 존재와 자신을 같은 존재로 파악한다. 이 시기 교육이 모든 존재와 친구처럼 대화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동화를 읽어주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자아는 조금씩 다른 존재를 파악해 나아간다. 그리고 결정적인 시기가 9-11세 사이에 있다.
요컨대 아이가 9-11세가 되면은 다른 존재와 자신을 확실하게 구별한다. 앞에서 교사가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을 경우 받아들이는 아이는 모든 존재가 자신과 같다고 느끼는 단계이고 , 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는 이미 교사와 자신을 다른 존재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초등 3학년이 9-11세 사이 이지만, 이렇듯 아이의 발달단게가 조금씩 다르기 떄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앞의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성숙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의 구별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느냐이다. 당시 필자가 슈타이너 책을 찾아봤지만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냥 교과서에 있는 대로, 지도서에 나온 대로 가르치고 말았다. 안타까웠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문제라 물을 데도 없어서 혼자만 애를 태우다가 만 것이다. 여기가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이렇게 아이들 발달단계를 무시하면 위 문장 처럼 '그 문제가 저 아래에서 부글 부글 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 내부에서 부글 부글 끊으면, 이것이 나중에 폭력적으로 드러나거나 어쩌면 성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춘기 전까지는 인간의 영혼과 몸이 분리되지 않고 같이 움직인다. 이 시기를 살린다면 태어나면서 생긴 문제라도 사춘기 이전에 영혼을 치유한다면 고칠 수가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할 경우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이 육체에 고정되어서 육체의 병이 되기도 하고 또 정신병이 되기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춘기가 지나면 이와 같은 병은 치유가 어렵다.
다시 위 문장으로 돌아가서 살펴 보면, 6, 7세에 아이가 학교에 밀어 넣어지면 9, 10세에 있어야 할 체험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게 계획의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은, 인류가 정신을 배제하기 떄문에 그렇게 된다. 즉 정신을 배제하니 정신이 발달하면서 일어나는 감각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과 아이의 정신은 밑에서 부글부글 끊으므로 겉으로는 알수 없는 상태에서 정신병으로 나아 가는 것이다. 요컨대 많은 경우의 문제가 이와 같이 정신을 배제해서 아이들 내부가 부글 부글 끊어서 생겼다고 해도 무방하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이제는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을 보살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읽지 않아서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정확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이다. 슈타이너는 이 시기에 좋은 의미에서의 놀라운 경험, 기뻐하는 경험을 갖게 해주라고 한다. 모든 존재가 같은 존재라고 알았는데, 그 존재들이 나와 다른 존재라고 파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와 같은 존재일 경우에는 특별하게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하든 다른 존재들도 나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고, 나도 다른 존재를 그와 같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존재라고 파악되면 그 존재들을 내가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짐작하기에 더불어 사는 존재라고 파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같이 기뻐하는 경험, 함께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주라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놀라운 경험은 다른 존재를 놀라운 존재로 받아들이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슈타이너는 이 시기 발도르프 교육과정에서 먼저 동물을 가르치고, 이어서 식물을 가르치도록 제안한다. 동물을 인간과 연계해서 가르치면, 인간에게 있는 동물적인 속성과 동물의 성격이 연결된다. 예컨대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지혜로움 등등이 인간에게 연결되면서 그 속성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있는 그런 속성이 발달하면서 지혜로운 인간이 된다. 사실 살다보면 여러가지 성격이 필요하다. 꾀도 있어야 하고, 영리함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다른 존재(동물)를 통해서 자신에게 있는 속성을 발달시킨다. 짐작하기에 이는 아스트랄체의 발달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식물은 지구와 연계해서 가르친다. 식물에게 지구는 인간의 몸과 같은 존재이다. 즉 지구가 식물을 키워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이 작업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에테르체가 하는 작업이다. 지구가 식물에게 하는 작업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에테르체가 하는 작업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식물의 속성, 외떡잎 식물, 쌍떡잎 식물, 이끼 등등 을 배우고 광물로 나아간다. 광물은 12세 이후에 가르치는데 빈드시 인간과 연게해서 가르쳐야 하고, 전체에서 출발하도록 한다. 인간의 정신이 전체에 분포되어 있으므로 전체에서 출발, 인간과 연계하면 인간의 정신과 연결이 된다. 인간의 정신이 광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의 정신이 움직이고 인간의 정신이 발달한다.
다음은 필자가 슈타이너의 공부를 통해 근래 느낀 점이다. 인간 전체에 분포된 정신이 깨어나면 모든 존재는 음향과 소리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 정신세계에서 모든 존재들은 그렇게 드러난다는 슈타이너의 주장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이를 물질적으로 표현하면 예컨대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를 듣거나 부를려면 그런 음향, 그런 소리, 움직임을 표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마법의 성의 정서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짐작하기에 슈타이너의 언어로 고차- 상상, 고차- 영감, 고차- 직관 증에서 고차 -영감의 세계인 듯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예술을 표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예술을 하고 싶으면 이렇게 정신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이 들어간 정신세계 만큼 예술을 표현한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세계를 표현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