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뜨겁게 불타오르던 사랑이 있었던가
얼음이 녹지 않은 봄
나는 뜨거운 사람을 그린다
어젰밤 꿈에 활활 타오르는 꽃밭에서
청년 하나와 밤새 춤을 우었던 듯하나
그 수많은 나비 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숨 막히게 향기롭던 꽃잎의 떨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입술에 닿던 술잔의 기억도
혀끝에 닿던 붉은 와인의 달콤함도
아무 기억이 없다
찻잔에도 온기가 없다
삶이여 사람이여
싸늘한 봄이여
나에게 불타는 사랑이 있었던가
나는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꼿꼿이 서서
자꾸 붉어지는 이 마음의
한때는.
(석연경, '꽃무릇' 전문, 시집 <독수리의 날들>에서)
꽃무릇은 다른 이름으로 상사화라고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상사라면, 그 이름을 통해서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머리속에 그려질 수도 있겠다.
가을에 피는 상사화는 붉은 꽃을 달고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상하게도 절 근처에 상사화를 많이 심는 것 같다.
영광 불갑사나 고창 선운사에서는 매년 가을에 상사화축제를 열기도 한다.
엄격하게 상사화와 꽃무릇을 구별하여 말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꽃무릇과 상사화를 같은 꽃으로 생각한다.
시인은 가을에 피어난 꽃무릇을 보면서 열정적인 사랑을 꿈 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꿈일 뿐 현실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지난 주에 절정이던 꽃무릇도 이제는 서서히 꽃잎을 떨구어가고 있다.
늦기 전에 꽃 축제가 아니더라도 꽃무릇이 피어있는 곳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