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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이론적 배경과 그 의미를 따진 내용으로, 저자가 쓴 독일어 원서를 번역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책의 목차는 크게 둘로 구분되는데, 그 가운데 폭력의 연원과 이론적 배경을 서술한 1부의 제목은 ‘폭력의 거시물리학’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물리적 폭력만을 떠올리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이와 함께 정신적 폭력과 언어폭력을 포함하여 그 범위와 의미를 포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폭력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류 역사를 고찰해 볼 때, 폭력은 대체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 간의 폭력도 따져볼 필요가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폭력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1부의 세부 목차를 보면, ‘폭력의 위상학’과 ‘폭력의 고고학’ 항목에서는 고대 사회로부터의 폭력이 사용되던 역사적 흐름과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폭력의 심리’라는 항목에서는 프로이트 학설을 비롯한 각종 이론이 제시되는데, 다소 추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폭력의 정치’를 통해서 그것이 권력의 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폭력의 거시논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1부의 서술이 마무리되고 있다.
주로 폭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다룬 1부에 이어, 2부는 ‘폭력의 미시물리학’이란 제목으로 서술되고 있다. ‘미시물리학’이란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폭력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례와 특징들에 관해 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대부분의 폭력은 권력 관계의 발현에서 비롯되며, 권력 관계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집단의 시스템을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때문에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고찰하여 그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푸코를 비롯한 다양한 이론의 제시하면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긍정성의 폭력’이라는 항목에서는 폭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보드리야르의 논리가 지닌 허점을 하나씩 논파하면서, 과연 ‘긍정성의 폭력’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감춰지지 않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바로 그런 측면에 주목하여 ‘투명성의 폭력’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그 문제점들을 상세히 지적하고 있다. ‘투명성의 명령은 모든 거리와 비밀에 대한 존중을 파괴’하며, ‘오늘날의 투명사회에서 특징적인 것은 포르노적 현시와 파놉티콘적 감시가 서로 넘나든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그것이 공적인 역할보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면, 하나의 ‘폭력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의 논리에 수긍할 수 있음은 작금의 우리 언론 현실에서 절실하게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권력'의 하나로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당파적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언론의 모습은 어느새 '기레기'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익명의 그늘에 숨어서 표출하는 폭력적인 댓글, 그리고 폐쇄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이들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노출하는 현실이 그대로 오버랩이 되었다. 또한 들뢰즈의 용어를 빌어 탈코드화한 ‘리좀적 폭력’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그것이 현대 사회가 지닌 특징적인 면모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구화의 폭력’이란 개념으로 이제는 국지적인 차원을 넘어, 지구화를 통해 발현되는 폭력의 새로운 양상에 주목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세계화의 기치 아래 희생자(호모 사케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유인(호모 리베르)’으로서의 면모를 추구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결론으로 삼고 있다고 이해된다. 저자는 주로 이론적 측면에서 ‘폭력’의 의미를 탐구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나치게 이론 중심이라 다양한 인물들의 추상적 논리가 제시되고 있지만, ‘물리적 폭력’만이 아닌 폭력의 이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일각에서 폭력을 미화하고 반폭력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려는 논의가 적지 않은데, 어떤 형태이든지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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