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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를 겪었던 곳으로, 당시 유배처였던 다산초당이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답사지로 자주 찾는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기도 하지만, 시인 김영랑의 고향이라서 그의 생가를 둘러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근의 해남에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으니, 그야말로 ‘답사 문화의 일 번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너무 멀고, 접근할 수 있는 교통편이 편리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강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기에, 1년에 한 차례 이상은 가족들과 함께 가거나 혹은 학생들과 답사를 하는 곳이다.
고려시대 불교 개혁운동인 '백련결사'의 중심지였던 백련사의 옆을 지나 산길을 더듬어 오르면,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보냈던 다산초당이 나타난다. 초당 부근에 있는 천일각에서 바라보면 강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경치를 즐기기 위한 것도 또한 내가 다산초당을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주지하듯이 정약용은 강진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제자들을 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의 차 문화를 새롭게 이끈 '초의선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을 오르다 보면 주위에 녹차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학자였던 정약용은 승려들과의 교류도 적지 않았는데, 특히 백련사가 백련결사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인 정민은 그동안 다산을 시문을 번역하고, 그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정약용의 기록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용혈(龍穴)'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을 쓰게된 계기였다고 고백한다. 일반적으로 '용혈'이란 지명은 용이 머물다가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백련사 인근에 있던 용혈은 백련결사를 주도했던 승려들의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우연히 발견한 정약용의 기록을 토대로 강진의 '용혈'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직접 그곳을 여러 차례 답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동안 잊혀졌던 곳이지만, 정약용에 의해 비로소 언급되면서 저자에 의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은 장약용이 살던 시대와 인근의 지형 자체가 달라져 용혈터를 찾을 수 없었지만, 저자는 조만간 그곳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단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용혈'관련 기록들을 소개하고, 그곳이 강진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잡게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심정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정약용의 기록과 고려시대로부터의 각종 용혈 관련 기록들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그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문헌 기록을 통해서 용혈암 터의 공간 구성과 배치는 물론, 인근 지역의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된 유물들의 성격까지 소개하고 있다. 옛 문헌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아 마침내 한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저자의 집념과 끈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아직 용혈암 터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 열정과 관심에 전문가들의 힘이 보태진다면 멀지않아 구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이 책이 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데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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