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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역사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서, 그가 속한 공동체가 남긴 흔적의 의미를 파헤쳐 기술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었다. 한 국가를 중심으로 서술하면 국가사가 되며, 하나의 대륙에 속하는 다양한 나라의 관계를 고려하여 서술하면 대륙사가 될 것이다. 보다 범위를 넓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중심으로 주변 공동체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주와 지구의 탄생과 그 과정에서 인류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전제하고, 물리학과 생물학을 비롯한 다양한 자연 과학의 지식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역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일컬어 ‘빅 히스토리’라 칭하는데, ‘거대 역사’라는 의미의 ‘빅 히스토리’ 우주와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발자취를 다루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하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라 하겠다.
하라리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는 인종들을 일컬어 ‘사피엔스’라 명명하고, 이 책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 과정과 원인 등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미약한 존재였던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지적 혁명’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즉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에 의해서 탄생한 사피엔스가 지적 설계가 가능하도록 진화했고, 이를 통해서 이후의 ‘농업 혁명’을 비롯한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는 지구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사피엔스의 역할과 그들의 활동이 지닌 의미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추적하여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인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하여 서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는 자연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다면 사피엔스는 오히려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사는 존재일 것이다. 그동안 공룡이나 맘모스와 같은 거대 동물들의 멸절에 대해서 다양한 학설들이 제기되었지만, 저자는 사피엔스의 전세계로의 확산에 의해서 그들이 멸종되었을 것이라 추론하고 있다. 또한 인류의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농업 혁명’이야말로 ‘역사의 최대 사기’라 명명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그러한 설명들에 대해 절로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인류의 미래를 그려낸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의 내용이었다. 최근 스티븐 호킹의 유고집이 출간되면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새로운 인간 ‘슈퍼 휴먼’이 기존 인류를 지배하고 도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호킹은 슈퍼 휴먼의 지능이 뛰어나고 질병에도 강해 오래 살 수 있으며, 기존 인류가 슈퍼 휴먼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어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고 한다. 특히 ‘유전자 조작’이 지니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고,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끝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실상 그러한 호킹의 경고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대로 적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과학 기술에 기댄 인간의 욕망을 일컬어 ‘신이 되려는 동물’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동물들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안락함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면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후기 맨 마지막에 기술된 다음의 질문은 신이 되려는 인간들이 깊이 음미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있을까?”(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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