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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식들에게는 늘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존재하고 있다. 언제까지라도 건강하게 곁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그 하나라면, 혹시라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머지 하나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도 있지만,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더욱 죄송함을 느끼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일반적인 마음일 것이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딸의 입장에서, 93세를 살다 떠나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글들로 엮어져 있다. 처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육성보다 딸의 입장만이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서 저자의 아버지가 93세의 연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딸의 시선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사부곡(思父曲)’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아직 80대 중반의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여전히 건강하게 운동과 일상을 즐기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별로 살뜰한 성격이 못되기에, 일상에서 모자 사이의 대화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며느리인 아내와 함께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처럼 어머니의 삶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저자는 딸의 입장이기에 가끔 찾아뵈었어도, 아버지의 건강을 챙기면서 살뜰한 대화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일단 저자의 문체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부제처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유쾌한 일상철학’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하겠으며, 이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일 수 있는 것이다. 40대에 뇌출혈로 쓸어지면서 직장을 옮겨야만 했고, 그 이후로 꾸준히 건강 관리에 힘쓰면서 90대까지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은 어찌 보면 평범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그 평범함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범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돈보다는 건강’을 생각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중년 무렵부터 지병으로 늘 몸이 불편하면서도 일상을 낙관적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삶의 자세는 자식들에게도 귀감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딸인 저자가 느꼈던 아버지의 삶의 자세는 그대로 목차의 소제목들에서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힘들수록, 심플하게 산다’는 1부의 제목처럼, 자신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순하게 살기’를 통해 삶의 미학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2부는 ‘두 번째로 좋은 것, 이만하면 충분해’라는 제목처럼 ‘있는 것을 잘 지켜내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늘 ‘최고’와 ‘최선’을 목표로 그것을 이루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노력을 한 결과 얻어질 수 없는 것은 ‘자기의 몫’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족은 자유로움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블편한 마음, 감정의 재구성’이라는 3부의 내용은 ‘한결같음의 평온함’을 지켜온 아버지의 인식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또한 4부에서는 ‘날카로움은 백해무익, 유쾌하게 사는 법’에 대한 아버지의 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전에 늘 ‘어쨌든, 당신의 삶은 옳다’(5부)고 생각하며 사셨던 아버지의 일상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다소의 미화된 내용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또한 자식으로서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마음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나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삶에 대해 저자처럼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글을 쓰면서 간혹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나 내가 지켜보았던 젊은 시절의 단편적인 삶의 모습을 소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와의 생활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사시는 동안 건강하고 유쾌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새삼 부모님과 자식 사이의 관계를 떠올려보았고, 이미 성장한 자식을 둔 입장에서 부모의 마음이 제대로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출간할 용기를 내신 저자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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