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野壇>
아상(我相)
왜 저렇게 우나 했지
왜 저렇게 "앙앙" 우나 했지.
감은 붉어지고
염소는 눈물자국이 "주르르" 생겼다.
껍데기만 남은 흙매미를 떼려하니
"앙" 하고 앙탈하며 부서졌다.
<법석(法席>
법화경, 화엄경, 금강경은 3대 경전이다.
신라 국정교과서는 <화엄경>이다. 화엄이란 이런 것이다.
'신라'라는 커다란 꽃밭이 있다. 교과서는 이렇게 말한다.
"꽃밭(신라)의 꽃(백성)들은 꽃밭에 있을 때 꽃의 존재의미가 있는거야"
나라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 '충성맹세'로 3국 통일을 이룩한다.
권력은 타락한다. 결국 자멸한다.
후삼국을 거쳐 '고려'가 탄생한다.
그러면 신라의 국정교과서는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정권을 믿는다.
고려는 국정교과서를 <법화경>으로 한다.
그런데 <화엄경>의 악센트만 살짝 옮겨놓은 것이 <법화경>이다.
어떻게?
'고려'라는 커다란 꽃밭이 있다.
"꽃밭(고려)은 하나하나 꽃(백성)이 모여 만들어 진 것이다"
"하나하나의 꽃이 없으면 꽃밭이 어찌 있겠는가?"한다.
백성이 먼저라는 것이다.
다 같은 민주공화국인데
신라의 화엄경은 공화(共和)에 악센트를 붙였고
고려의 법화경은 민주(民主=백성이 주인)에 악센트를 붙인 것이다.
오늘은 금강경 이야기.
금강경은 또 악센트를 옮긴다. "화엄 법화의 경계는 없다" 이러는 것이다.
경계를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아상 인상 중생상을 주구장창 부정하는 불자(不) 이야기다.
오늘은 "아상(我相)이란 말.
"나(我)"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없다니? 내가 죽었냐?"
"죽은 것도 귀신이 있는데?"
양자역학 양자역학 하는데, 나를 쪼개고 쪼개 세포에서 분자 원자로 쪼개보면
분자 원자는 그냥 진동(떨림)과 파동(울림)일 뿐이다. 이것이 오늘의 과학이다.
이것을 이용한 것이 전기전자문명이다. 갑자기 전기전자가 없어졌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기전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진동(떨림)과 파동(울림)일 뿐임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뭔가? 궁극적으로 귀납하여 검증하니
결국 "나(我)"는 진동(떨림)과 파동(울림)일 뿐이었다.
생각, 의식도 5가지 감각이 받아들인 전기신호를, 전두엽 뇌가 시놉스 화학신호로
바꾼 것이다. 이것이 희노애락의 감정이다. 생각 의식이란 몸의 꽃, 떨림과 울림의 절정판이다.
나의 상(像)이라고 여기는 지금 이 모습이
떨림과 울림의 그림자, 주파수(律呂)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의 모습이라면 아상(我像)이라고 써야 하나
"아상(我相)"이라고 한 것은 고정된 모습 상(像)이란 없고
모두 관계(相)에 의한 그림자라는 뜻이다.
아프고 즐거운 감각을 느끼는데, 그 게 내 모습이지
왜 내 모습이 없냐고?
*남편이 죽었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써서 부인에게 주며 영안실로 가라고 했다.
옮기는 도중에 이 남편이 깨어났다. "여보, 나 나. 살살 살았어" 부인이 깜짝 놀라
"아니, 이 양반이, 전문가가 죽었다는데 왜 이래, 가만있어..."
한 참 잠잠히 가다 문앞까지 왔다. 남편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여 여 여보, 나나 살살..."
부인 사망진단서를 눈앞에 대고 탁탁 치며 "봐라 내가 거짓말하나"
그는 영안실로 들어가야했다.
과학자 즉 전문가가 "아상"을 연구해보니 떨림과 울림뿐 , '아상'은 없다는 것이다.
참나! 살았는데 죽었다니? 누가? 전문가가.
그래 그럼 죽어주자. 이러면 금강경 공부 잘 하는 거다.
금강경은 "못믿겠지만 그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불자(不)의 논리로 풀어주겠다. 하는것이 금강경의 아상 인상 중생상 부분이다.
금강경은 줄곧 이것 저것 없다는 말만 이리저리 "맴맴 맴맴"하는 것이다.
차례차례 논리적으로 최면(?)을 건다. "그거 이렇게 없는 것이야"하는 것이다.
"네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주려 한다" 이 경론이 바로 금강경이다.
금강(金剛)이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이다. 진리는 원자의 주파수야 이러는 거다.
매미가 '앙앙' 우는 고통의 바다 색계가 <야단(野壇>이다.
감나무에 붙은 흙매미 껍떼기도 떼려하니 집착의 발톱을
못으로 깊이 박고 안 떨어진다.
힘주어 떼려하니 토기 부서지듯 '앙'하고 바삭 부서져 버린다.
아상(我像)이란 이렇게 지독하다.
아상(我像), 여기서 욕심 욕망이 일어나고 그것이 고통이 된다는 것이다.
고통만 있나? 즐거움도 있지.
그러나 결국 생물학적으로 죽게 되니, 즐거움이 많았던 사람은 더 고통이지.
결국 고해는 맞다.
이 '앙앙' 우는 고통의 바다, 색계 <야단(野壇> 에서
<법석(法席>으로 헛소리를 했다.
오늘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고 하는 것이 나다. '아상'이다.
그게 인생이지. 다만 방편으로 진통제를 주는데 그 진통제 이름이
'게보린'이 아니고 '금강경'
이를 알아들은 것은 내가 아니라
저 감나무와 옆집 염소였다.
<감은 붉어지고 / 염소는 눈물자국이 "주르르" 생겼다>
나는 지금도 저 흙매미다.
<에필로그>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은 똑같은 것인데 악센트만 다른 것이다.
자연과학을 보자.
물이 기화하여 공기가 되고 얼면 얼음이 된다.
기체. 액체. 고체. 에너지 상태만 모습을 바꾼 것이다.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도 악센트만 옮긴 것이다.
이것을 의인화해서 관세음보살로도 써먹고 문수보살로도 써먹는 것이다.
때와 공간(장소)에 따라 악센트(방편)만 옮겨가며 최면(?)을 걸어 말하는 것이 경전이다.
최고의 은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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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은 어떻게 설계되었을까?
국회의사당 지붕을 보자. 둥그런 '돔'이 있다. 이게 하늘이며 '하늘은 둥글다'는 뜻이다.
우주(宇宙)에서 우(宇=시간=經)를 의미한다. 씨줄이다.
김씨 이씨 살구씨 대추씨... 날씨 '씨'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빛'이다. 빛은 '백(白)'이며 금(金)빛이다. 그래서 태양에너지 빛은 흰(白)빛과 金빛을 같이 쓴다.
우(宇)는 우주(코스모스) 질서다.
일월의 자전과 공전, 5성(화성 수성 목성 금성 지구)의 인력(引力)작용이다.
7개 별의 상호작용이 시간의 질서 에너지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지구)의 상호장기장이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태양이고. 일원(一圓)이다. 비로자나불(태양)이고 '화엄'이 된다.
국회의사당 기둥을 보자. 모두 24개다. 24절기를 의미한다. 땅은 네모나다. 그래서
4각형이다. 기둥은 8모다.
4방(동쪽 춘분. 남족 하지. 서쪽 추분. 북의 동지)과
그 사이 전환기로 바람부는 계절 4간방(입춘 입하 입추 입동)을 합치면 8방이다.
팔도 모든 의견을 '하늘=돔' 아래 모으는 것이다.
우주(宇宙)에서 주(宙=공간=緯)를 의미한다. 카오스(혼돈) '날(出)'줄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상징하고 삼라만상을 의미한다.
물질에 씨앗이다.
물질의 씨앗은 검은색으로 해야하나 백색기둥으로 했다.
팔도의 백성(白性=百性)으로 변주한 것이다.
4방(건물) 8방(기둥=바람), 24기둥(24절기=1년 내내) 백성의 의견을 모아....이것이 의사당
설계도의 철학이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 만물을 뜻하는 '법화'다.
의사당 건물의 설계도 철학은
땅을 딛고 사는 백성의 다양한 의견(8방. 24절기)을 하늘(돔=한 곳)로 모아 펼친다는 뜻이다.
우(宇), 끝없는 시간이다. 바람(氣)=불(온도)=에너지다. 화엄이다.
주(宙), 한 없는 공간이다. 끝없이 생멸하는 물(物)과 물(水)이다. 법화다.
우(宇)의 시간은 기후(火)변화, 바람 (氣)이 흐르며, 등호(=)를 만들고
주(宙)의 공간은 생명의 씨앗, 물이 높으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등호(=)를 만든다.
세상은 평등 저울을 지향한다. 기호로 태극기의 태극이다.
우와 주가 출렁출렁 파동(주파수)의 물결을 치는 파노라마(律呂=삼라만상)가
국회의사당 설계도 철학이다.
시간의 축 화엄경 코스모스(질서)의 꽃밭 화엄과
땅의 혼돈(카오스) 날(出)줄 만백성 낱낱의 꽃 법화
이 화음이 "우주(宇宙)"다.
국회의사당 설계도 철학이다.
민주(民主=백성=꽃=법화)와 공화(共和=꽃밭=화엄)가
민주공화국의 건축기호 국회의사당 설계도 철학이다.
그러나,
이론이란 즉 교종(敎宗)은 아무리 박사라도 죽은 지식일 뿐이다.
종교도 정치도 이론은 실천하라고 있는 것이다. 이론지식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즉 지혜는 실천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진리는 이론의 지식이 아니라, 실천의 지혜가 진리인 것이다.
첫댓글 와~~~
맞지요 맞습니다.
최고의 은유시지요
고맙습니다 거사님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