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운데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1]이다. '스완 부인의 주위'가 세부내용이다. 꽃피는 아가씨들이 우선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스완부인은 마르셀의 집에 자주 찾아왔던 여자이름이다. 이 여자는 마르셀의 집에 찾아와서는 오래동안 머문다. 마르셀은 엄마와 스완 부인보다는 어리므로 일찍 잠들어야 한다. 마르셀은 잠들 때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야만 잔다. 헌데 스완이 늦도록 가지않으면 마르셀은 어머니한테 키스를 받지 못하여 안타깝게 된다. 그렇지만 스완의 마르셀의 정신적인 스승 역할도 한다. 아무튼....
수사의 전략
프루스트는 주인공이 어린시절의 여름날 자기 방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장면을 그리려한다. 여름날을 그리려하는데에는 여러 비유적인 것들이 동원되는데, 햇빛, 그늘, 실내학, 나비, 망치질하는 소리, 별, 파리 떼, 냇물에 흐르는 물 등등.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그것을 비유적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 비유 중 폴 드 만의 긴 분석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 하나는 "파리들의 여름 실내악"이라는 표현이다. 그것은 여름의 전체를 종합하는 비유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파리와 실내악 사이의 관계는 환유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름의 일체성과 특징을 하나로 맺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푸르스트는 이 파리들의 음악이 우리가 우연히 회상하는 종류의 음악과는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파리는 여름과 더불어 생겨나고 없어지는 곤충이다. 따라서 그 음악은 여름과 일체가 되어 있는 그 필연적인 일부로서의 음악이다. 이것이 인위적이라는 것을 프루스트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폴드만은 말한다. {미메시스}, 에리히 아우어바흐
7쪽 : 노르푸아 씨를 처음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말이 났을 때, 어머니가 "하필 코타르 선생이 여행 중이람, 또 스완과는 이쪽에서 교제를 아주 끊고 말았으니. 이 두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전직 대사인 노르푸아 씨의 좋은 말벗이 되어 주었을 텐데"하고 유감의 뜻을 표하니까, 아버지는 코타르처럼 탁월한 회식자(會食者)이자 이름난 학자라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의에 벗어나는 짓을 할 리 만무하지만, 스완으로 말하면 봐란듯이 자기의 사소한 교제마저 일일이 떠들어 대는 버릇이 있으니까. 노르프아 후작은 그런 허풍떠는 속물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니꼬운'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고 대답했다. ..... : 마르셀의 집에 노르푸아를 초대하려고 한다. 노르푸아는 오랜 외교관을 지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초대하려면 격에 맞는 다른 사람이 더 초대하면 그 모임이 빛이 날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코타르와 스완을 생각해낸다. 이 두 사람이 전적 대사의 좋은 말 벗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의 성격을 평가한다. 코타르는 여럿이 모임을 할 때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름난 학자라는 것을 장점으로 든다. 모임을 빛내주는 그런 성격에다 학식까지 겸비한 사람을 찾는 것이더. 반면 스완은 급할 때 부르기는 하겠지만 점잖은 자리에서 자기자랑을 너무 남발하는 속물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노르프아가 온다고 해서 굳이 다른 사람을 블러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아마, 노르프아는 단지 처음 만나는 사람은 아니고 전부터 교제가 있어왔으며, 주인공의 집에서는 어떤 상황 하에서는 의지햐야만 하는 그런 비중있는 인물일꺼라고 생각이 든다.
8쪽 : 이런 새 친지의 지위를 측정하고 따라서 그들을 초대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자존심의 기쁨을 측정하기 위하여, 비교의 표준으로... : 프랑스 사람들은 사교가 필수다. 사교를 통해서 자기가 만나는 사람의 지위가 어느정도를 인지를 측정한다. 외교관인지 학자인지 정치가인가가 그들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당시 사회의 상류를 형성하는 인물들이 사람들을 만만 밖으로 내뱉는 지식, 태도, 심지어는 허세까지도 파악하는 때로는 뒷담화를 해야하는 프랑스 사람의 특유의 사회생활의 한 모습이라고 파악된다. 지위가 명예가 있는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하거나 살롱으로 초대한다는 자존심을 나타나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자기와 자기 가문과 비교하여 본다는 그런 심사 때문에 사람들을 초청한다. 그 사람을 초청하면 그 모임의 격에 맞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대화의 격이 어울니는 그런 심사를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허영심도 있다고 하겠다. 속으로는 떨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자약하는 그런 이중 모순을 가지고 있어야만, 상대가 앞에 있어도 겉으로는 웃을 지어보이지만 속으르는 상대를 밟아뭉게버리고야 만다는 음흉하고 뻔뻔하기까지 하는 그런 심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그러니까 단순한 사람은 고급 사교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교모임에서 설렁 무시를 당했다고 하도라도 그 무시를 금방 얼굴에 나타내면 그 사람은 지는 것이다. 상대가 무시하는 말을 하면 나는 권력에는 술수로 대하리라는 대담함으로 상대가 뱉은 것보다 더 심하고면서 니글거리지마는 베벱비틀어서 상대의 심장에 비수를 날리려는 그런 심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하지만
10쪽 : 그들은 교제상대로라면 더 교양있고 예술을 이해하고 함께 니체나 바그너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대가를 선택했을 것이다. : 사교모임이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다하도라도 예술에 관한 기본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니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니체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스위스나 독일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신은 죽었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했을 것이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을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자기의 비판을 감성적인 톤으로 읊은 철학의 거장이 아니겠는가?
11쪽 : (노르프아와 같은) 그 대신 이러한 귀족은 자기의 바로 윗자리에 있는 왕족 또는 공작네 가족들의 눈에, 자기의 권세가 나날이 커 나가는 것이 보이도록 애쓰면서, 제 이름에 아직껏 담겨 있지 않는 것, 자기를 동렬의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는 것, 곧 정치적인 세력이라든가, 문학적 또는 예술적인 명성이라든가, 막대한 재산이라든가를 덧붙임으로써 비로소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노르프아와 같은 고관대작을 초청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초청했을 때의 이득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모임이나 초청이 단순한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고 그 행사 이면에 암시하고 있는 권력이나 정치적인 면도 함께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사도 가지고 있다.
15쪽 : 상대방의 아무리 뛰어난 지적인 장점이나 감수성도, 그것이 자기에게 불쾌감을 일으키게 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따위라면, 누구의 눈에도 무능하고 경솔하고 바보로 보이는 사람의 둥굴둥굴한 쾌활성을 눈앞에 보는 것처럼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상대를 초청한다고 해도 초청하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허용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표현ㅇ;다. 달리 말하면 내 것을 손해보면서까지 초청하는 것은 아니고, 고도로 계산된 허용치 안에서만 논다는 것이다.
16쪽 : (어머니는)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말하면서, 대화 상대가 좋아할 듯한 화제를 끊임없이 고려하고 있는 그 조심성 있는 회화라든가, 받은 편지에 답장을 꼭꼭 보내는 그 놀라운 어김없음이라든가.....
20쪽 : 나는 노르프아 씨에게 보일 수 있는 좋은 것을 쓰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지만, 막상 쓰고 보니 조금도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다. 서두의 몇장을 쓰고 나자, 권태가 펜을 놓게 하여 나는 전혀 재능이 없는 걸로, 타고난 소질이 없는 걸로 생각되며, 그리고 노르푸아 씨가 오는 방문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인데, 그런 좋은 기회를 빤히 눈앞에 보고도 놓치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에 약이 올라 눈물지었다. 다만 라 베르마를 듣게 되었다는 생각이 나를 비반테거 구해주었다. : 주인공이 글을 써서 남에게 인받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앞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겠다는 단서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주인공에게 찾기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자신의 확신이라고 해도 되겠다. 라 베르마에 대해서는 더 알아봐야 겠다. 억울해하던 것이 라 베르마라는 여배우를 보고서 마음이 그렇게 풀리는지를...
21쪽 : 베네치아의 카르파초, [페드르]의 라 베르마, 이와 같은 회화 예술 또는 극 예술의 걸작은 그것에 붙어다니는 마력에 의해서, 너무나 생생하게 내 마음속에 약동하고 있어서.....
22쪽 : 라 베르마가 그녀의 창의로 또 영감의 끊임없는 발견으로 벽화를 그려 나가듯 채워가는 것을 나는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내용을 보니 라 베르마는 연극배우다.
24쪽 : 나는 끊임없이
갑자기 이 몸에게서 멀리 떠난신다고 들었사온데......
라는 대사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것에 합당한 온갖 옥양을 찾으면서, 라 베르마의 독특한 가락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을 측정하고 있다. : 주인공은 연극 배우 라 베르마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미 그녀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이 배우의 공연을 듣게 되자 그 그쁨에 그 전에 들었던 감각을 다시 기억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라베르마의 연극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그는 figure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를 들레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에 소개된 내용을 쓰고자 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이렇다. 서양 철학은 '임의적인 공리'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사유는 형상 즉 figure다. 내 머리 속에서는 종탑, 무성잡초 등의 형상이 복잡하게 잔뜩 엉킨 판독할 수 없는 글씨를 조판하고 있었다. 이 형상들의 첫째 가는 특성은 내가 그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으며 그것들은 그것들이 가진 고유한 상태 그대로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 향상들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감각과 마주치게 된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방식이야말로 감각이 소셍시킨 과거의 진실, 감각이 벗겨 낸 이미지들을 확인해준다. ....(10쪽) 바로 프루스트가 형상 혹은 기호의 자극을 받은 감성이 어떻게 그 기호의 해독을 위해 지성을 불러오는가, 그리하여 어떻게 감성, 지성, 등 심성의 능력들이 기호 해독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발생적으로> 일치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