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래 시 강좌를 들었다. 강의가 실망스러우면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다행히 꽤나 흥미로웠다. 강사는 여러 번 나를 웃겼고 내가 쓴 시를 두 번이
나 칭찬했다. 그래서 살려주었다. 그때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일 줄은 여태
모르고 있겠지? 얼마 전에 읽은 그의 근작 시집은 실망스러웠다. 그때 묻어
버릴 걸 그랬나.
나 같은 천재적인 살인자도 살인을 그만두는데 그 정도 재능으로 여태 시를
쓰고 있다니. 뻔뻔하다.
죽인 사람보다 살려둔 사람이 더 많다.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동의한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사람이 내 시가 좋다며 자기가 내는 문예지에 실어주
겠다고 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라고 했더니 얼마 후 전화가 왔다.
책이 나왔다며 어디로 보내줄까 묻는다. 그러고는 자기 계좌번호를 불러
준다. 돈을 내고 사는 거냐니까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은 싫다
고 했더니 이미 책을 다 찍었는데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다고 우는 소리
를 했다. 곤란이라는 말의 뜻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교정해주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일을 초래한 것이 내 자신의
속물적 욕망이었으니 놈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며칠 후 내 시가 실린 지방
문예지 200부가 집으로 배달돼왔다. 등단을 축하한다는 카드도 동봉
돼 있었다. 한 부만 남기고 199부는 땔감으로 썼다. 잘 탔다. 시로 데운 구
들이 따뜻했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치과에 갔다가 몰입의 즐거움 어쩌고 하는 책이 있기에 대충 읽
었다. 저자는 몰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이보게. 저자 양반, 나 어릴 때만 해도 아이가 하나
에만 몰입하면 어른들이 걱정을 했다네. 애가 외골수라며, 그때는 오직 미
친 사람들만 한 가지에 몰입을 했지. 오래전의 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골
몰하며 얼마나 깊이 몰입했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었는지를
당신이 안다면, 몰입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그 입을 다물
거야. 몰입은 위험한 거야. 그래서 즐거운 거고,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아온
지난 25년의 삶.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부한 일상에 또 일상. 엉뚱
한 사람을 연기하며 너무 오래도록 살아왔다.
다시 몰입하고 싶다.
「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김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