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기만술’은 매우 유용합니다. 물론 그 유명한 ‘손자병법’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일반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며 소위 ‘사기’입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잘 알듯이 몸이 아픈 것보다 치유가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다치고 정신적 상처를 입으면 그 고통은 꽤나 오래 갑니다. 더구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꾸준히 괴롭힙니다. 그래서 사기죄는 중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는 어떤가요? 전쟁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승리 외에 없습니다. 옛날 같으면 패전은 죽음 아니면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싶을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을 가리겠습니까? 휘하 병사들을 살리는 일이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일입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합니다. 수단방법이 정의로운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접어야 합니다. 우리 편,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적을 속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구애받을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과연 속아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지 그 방법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상대방 곧 적군이 아군의 의도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더 치밀하게 현실보다 더 그럴듯한 현실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다른 군사작전보다 더 까다롭고 힘든 작업을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상도 좋아야 하지만 그것을 현실처럼 만드는 배우(?)들도 대단한 연기를 해내야 합니다.
잘 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는 그 규모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기막힌 기만작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땅을 얻기 위한 쟁탈전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땅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정복자는 인명에 대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일단 땅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고 목적 달성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키는 쪽은 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어쩌면 더 중요합니다. 희생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당연히 작전을 세우고 행함에도 보다 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경제원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튼 최소의 희생을 감내하며 반드시 성공하고 승리를 해야 합니다.
유럽의 판도를 보면 지중해에서 군사적으로도 시칠리아 섬은 매우 요충지입니다. 연합군은 이곳을 반드시 쟁취해야 합니다. 당연히 침략자인 독일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만 23만의 대규모 군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무작정 들어갔다가는 빼앗는 것은 고사하고 무수한 병력만 잃고 말 것입니다. 함부로 대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의 적군을 어떻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독일군의 최고사령관 명령 하나만 있으면 해결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듣고 믿고 그 중요한 곳에서 군사를 다른 곳으로 빼돌립니까?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히틀러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 누구인가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아야 하고, 그 사건은 대단히 중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사건을 만들어야 하고 사람을 찾아야 하며 그 사람이 그 사건을 믿을 수 있도록 일을 꾸며야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 구성이 필요하고 또한 그 인물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고는 매우 신빙성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가능성을 짚어가며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세상일이 그렇지만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때로는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준비합니다. 그래도 예측불허의 사태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도전은 우리네 인생의 과제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생은 다른 동물과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만이 목표를 세우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준비하여 시행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인생이라면 한 번의 실수나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지만 국가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면 몇 사람 목숨으로 대체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작전을 결정하는 지휘관의 심사는 누구보다도 무거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전쟁영화입니다. 그런데 총성은 별로 없습니다. 최전선에서 총과 대포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엄청날 것입니다. 전쟁의 현장에 있는 병사들의 생명이 좌우됩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력이 자칫 그냥 불구덩이에 내던져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작전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 결과는 전쟁의 흐름도 바뀔 것이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총탄이 빗발치지 않아도 보는 내내 가슴이 쫄깃해집니다. 이런 영화도 있구나 싶지요. 영화 ‘민스미트 작전’(Operation Mincemeat)를 보았습니다. ‘민스미트’ ‘다진 고기’라는 뜻입니다. 사실 고기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