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안일하다 보니 자신 영혼 속에 들어 앉아있는 것을 꺼내 올리기 위한 첫 번째 시도를 할 마음이 전혀 없을 뿐입니다(7-14세를 위한 교육예술, 2022, 130)."
어릴 적 언론이나 매체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람을 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흉내도 내보았던 경험 말이다. 그래서 당시 '그 이유가 뭘까', 나는 왜 못할까란 생각도 잠깐 했겠지만 곧 또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과연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이 잘하는지(?), 나는 왜 그렇게 못할까가 궁금했던 듯하다. 만약 지금이라면 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아쉽다. 왜 지금이라면 잘 할 수가 있는지 그것이 질문이다. 먼저 말하면 정신이 발달해야 하고, 그 정신을 자아가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자아가 받아들인다면 '어떤 것'이라도 잘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질문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보이는 육체를 자신으로 알고 살아간다. 자아는 가끔 인지하지만, 내가 원할 때 만나지도 못하므로 무시하거나 간과하게 된다. 요컨대 바깥 환경에 휘둘려서 바깥 환경에 맞추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해 보지만 잘 되지 않고 능력도 길러지지 않는 듯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본 모습으로, 그 마음 속은 전혀 같지 않다. 수백, 수천가지 사람마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간다. 그러나 훗날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언젠가' 가진 자신의 마음이 싹을 틔워서 열매를 맺어 지금의 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신이 싹을 틔워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겠지만, 정신이 싹을 틔우지 않는 경우는 정신이 잠을 자기 때문이다. 잠을 자더라도 정신은 언제나 끊임없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바로 말하면 이렇게 노력해야 자신의 영혼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신은 보이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이끈다. 그래서 항상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고 통상 말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을 간섭하지는 않는지를 살펴서 그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아니면 그 마음에 휘말려 자아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이 어려우면 또 자신의 정신을 파악할 능력이 안 되면, 종교계율을 마지노 선으로 설정해서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그나마 자신의 카르마에 놀아나지 않고 카르마의 늪에도 빠지지 않는다. 결과 아주 조금씩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정신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런 과정에서 필자가 알게 된 사실이다. 깨달은 분들이나 종교에서는 참회하라고 통상 말한다. 그 이유는 누구나 잘못하므로 참회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참회가 진정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충하는데,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을 하는데, 옛날의 나쁜 마음, 예컨대 시기, 질투, 짜증의 마음이 남아있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생각을 방해하는 것을 파악했다. 순간 놀라서 살펴보니 마치 구름처럼 그런 마음이 내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이 구름은 아스트랄체이다. 그 마음이 내가 하고자 하는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해를 받으면 자아가 혼돈상태가 되어서 지혜, 직관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문제해결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이런 마음(아스트랄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생각에 허우적 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생각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을까란 질문이 순간 떠올랐다. 아스트랄체는 기쁨, 슬픔, 짜증 등과 같은 감정체로 인간 영혼을 감싸고 있어서, 영혼이 작업을 할 때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스트랄체가 긍정적인 감정이면 영혼활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사고)할 때 오성 영혼의 작업이 아스트랄체에서 이루어지므로, 아스트랄체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 또 이런 아스트랄체의 감정(에너지)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이 아스트랄체에 점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 감정이 빠져야 영혼의 작업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므로, 이런 감정을 빼야 한다. 당연하게 형성 시간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빠진다. 이것이 진정한 침회의 의미다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참회를 통해서 이런 감정이 빠져야 정신이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우울하면 가끔 꽃을 사서 화병에 꽂아놓고 가만히 쳐다본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 시들고 식상해져서 꼭 꽃을 살 필요가 있을까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여러가지 마음이 파도치듯이 나타나났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살펴보니 언제나 곁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온 존재기도 하다. 누구라에게도 이런 존재가 있다. 먼저 말하면 이 존재가 이끌면 어떤 일도 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존재를 깨우는 방법이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첫째,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감정을 파악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가 있는 것도 파악한다. 여기까지 도착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둘째, 파악하면 조금씩 자신 안으로 들어간다. 통상 들어가지 못하므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많은 경우가 생긴다. 짜증과 원망 등과 같은 감정도 느끼고 등등, 하지만 이런 감정에서 놓여나야 한다. 셋째, 깨달은 사람의 법문을 듣거나, 깨달은 사람과 가까이 하면 좋다. 깨달은 사람의 파장이 내게 전달되어서 내가 그 파장안에 있게 된다. 깨달은 사람의 파장은 우주 천체의 파장과 같아서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깨달은 사람이 우주 천체에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주 천체에 연결된 사람미 깨달은 사람이다. 물론 나도 우주 천체에 연결되어 있지만, 나의 자아가 상속에 있어서 다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이를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적 요소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인데, 현실에서 자아가 상속에 있기 때문에 자아가 상을 벗어야 위 존재(자신을 이끄는 존재)를 내가 만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아는 에테르체가 만든 상속에 있기 때문에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에테르체는 인간의 생명의 힘으로 살아있는 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요컨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자아가 상을 벗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파악하면 몸을 벗어날 수가 있다. 구체적으로 인간은 현실에서 몸에 매여있으며, 따라서 모든 감각이 몸을 통해서 나온다. 몸을 통해서 나오는 감각은 에테르체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자아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자아 역시 상속에 존재한다. 반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파악하면 몸을 벗어날 수가 있다. 이것이 슈타이너의 핵심이론으로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파악하는가이다. 먼저 아스트랄체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이므로 영혼을 파악해야 한다. 영혼은 그 자체로 내가 매몰되기 때문에 영혼을 파악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예컨대 기쁜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그러면 영혼은 다른 감정에 놓이고 또 그 감정과 하나가 되어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문득 영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 당연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는 만큼 그 에너지가 강한 만큼 매몰된 영혼을 바라보는 존재를 파악한다. 어떤 경우에도 바탕은 도덕적인 체계이다. 서서히 아스트랄체의 윤곽, 마치 구름같은 존재가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다음은 에테르체이다. 필자가 에테르체를 파악하고 에테르체의 에너지에 들어간 경험이다. 에테르체는 통상 기라고 말해지며, 우리 몸에 흐르는 일종의 기류이다. 음악도 크게 보아 일종의 파장으로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 몸이 흔들리는 것도 기의 파장을 타기 때문이다. 몸의 긴장을 풀고 가만히 호흡에 집중하면 이 파장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식물의 파장도 기다. 핵심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음은 에테르체의 파장에 들어간 경험이다. 폭우가 쏟아져서 둑이 무너진 어느 날 둘레길을 걷는데 강에서 쓸려내려온 자라가 온 힘을 다해서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스러웠다. 측은한 마음으로 자라를 가만히 보는데, 갑자기 에테르체의 파장에 필자가 쑥 들어간 것이다. 짐작하기에 자라의 에테르체의 그 에너지에 들어간 듯하다. 이는 자라와 필자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깨달음을 얻는데 측은지심이 중요하다고 했듯이, 그런 마음이 정신세계의 속성이기 때문에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요컨대 측은지심이 일종의 창문이었다. 음악을 통해서, 색채를 통해서 정신세게로 들어간다고 슈타이너가 말한 것과 같이, 정신세계 역시 들어가는 창문이 있다. 이 창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바탕은 도덕적인 체계이다. 도덕이 완성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된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체계는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영혼이 열리는 방법이고, 이렇게 영혼이 열리면 자아가 전면에 나서서 어떤 일이라도 잘하게 된다. 다만 위 문장처럼 인간이 너무 안일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한 번이라도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면, 계속 들어가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