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헤세드(hessed/חסד, 은총)! ◈
건축을 시작하기 대여섯 달 전부터 중국어와 첼로를 주 1회 배우기 시작했다. 첼로는 음계를 집는 포인트가 익어갈 무렵, 중국어는 발음의 체계를 막 이해할 때쯤 건축을 핑계로 멈춘 채 빈 들판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금과 인디언 플루트는 입에 댄 적도 없고, 기타는 수요 말씀 영상을 올릴 때 매주 한 번씩 잡았을 뿐이다.
음악만이 아니라 주일이 아니면 작업복 이외의 옷을 입은 적도 없이 22년 한 해를 살았으니, 건축이 끝나가는 시점에 23년에 대한 기대가 넘칠 법도 한데 그냥 무덤덤하다. 그래도 22년과 23년은 달라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있다.
개구리는 더 멀리 솟구치기 위해 다리를 최대한 오므리고, 독수리는 먹이를 잡기 위해 공중에서 정지한 채 집중한다. 이처럼 나와 들꽃에게 건축은 단절의 시기가 아니라 움츠린 시간이라는 걸 간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22년과 23년은 무조건 달라야 한다. 이는 들꽃 공동체에게 내려진 하늘의 명령이다. 명령에는 순종과 충성만이 전부이니 하늘의 명령에 순종하는 방법으론 뭐가 있을까?
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뼈대를 세우고, 지붕을 얹고, 조경과 같은 큰 틀을 향해 매진하던 때와는 달리 구석구석 채우고 메워야 할 곳과 잇고 자르고 덮어야 할 것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멀리서 보면 갖춰진 것 같은데, 다가가면 부족한 곳들이 넘쳐나고, 누굴 불러서 할 것들도 아니니 일일이 점검하고 마무리할 일이 고스란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생긴 버릇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 한 번 크게 쉬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이다. 이는 달라져야 할 23년 들꽃 공동체가 그려야 할 그림이 이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내 마음속 의무감 때문일 것이다.
말씀을 전하려고 단 위에 서면 교우들의 얼굴이 애드벌룬처럼 다가온다. 공기가 잔뜩 든 애드벌룬처럼 팽팽한 교우가 있는가 하면, 바람이 빠져 헐럴한 교우들도 보인다.
삶이 어찌 매 순간 팽팽할 수 있을까. 그래도 생기 넘치는 교우들의 얼굴을 기대하는 건 욕심보다는 희망이지 싶다. 게다가 교우들이 내게 건네는 응원의 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응원이란 걸 난 잘 안다.
10개월의 시간은 짧지 않다. 그것이 넉넉함과 여유 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돕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에서 오는 안타까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내 얼굴만 보고 말없이 돌아서는 들꽃사람들이 있어서 난 감사하다. 이는 23년, 들꽃 공동체에게 주시는 헤세드(hessed/חסד-은총)로 부활할 것이다.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히는 은총!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래서 우린 금방 환히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