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이 무르익던 18세기 덴마크.
편집증을 앓고 있는 왕 크리스티안7세를 치료하기 위해 고용된 독일인 의사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어린 왕과 왕비를 감싸주는 포용력으로 그들의 신임을 얻어 나랏일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왕비인 캐롤라인 왕비는 영국 출신으로 그당시에
성행하던 정략결혼을 하죠.
쉽게 설명해서 캐롤라인은 당시 영국왕 조지
3세의 동생이죠.(미 독립전쟁때 영국왕이자
미치광이 왕으로 불렸던)
조지3세도 따지고 보면 독일 하노버 공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왕은 여자들하고 놀아나고 관심이 없고
외로운 왕비는 마침 계몽주의에 관심이 많은
요한 슈트루엔제와 가까워지죠.
시대에 걸맞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과 파격적인 개혁법안으로 귀족들의 견제를 받게 되지만
왕 역시 자기 편은 요한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로운 사상이 왕비 캐롤라인의 생각과도 맞닿아 둘은 점점 가까워지며, 급기야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이익에 침해하는 법안을 제안하는 요한을 못마땅하게 본 귀족들과 구체적으로는 왕의 어머니인 모후에 의해 둘의 스캔들이 발각되고 결국 요한은 재판에 회부되어 단두대에서 처형 당합니다.
Johann Friedrich, Graf von Struensee
1737. 8. 5 독일 할레~1772. 4. 28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태생의 의사·정치가.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7세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1770~72년 덴마크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슈트루엔제는 1760년대에 알토나(지금은 독일에 속해 있지만 당시는 덴마크의 한 지방이었음) 지방에서 의사가 되었다.
그는 덴마크의 궁정신하들과 교분을 맺음으로써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크리스티안 7세가 유럽 여행(1768~69)을 떠날 때 왕의 수행의사가 되었고 1769년에는 궁정의사로 임명되었다.
크리스티안 7세를 좌지우지하게 된 그는 1770년
캐롤라인 마틸다 왕비의 정부가 되었다.
같은 해 그는 국무회의와 노르웨이 총독직을
폐지했고 1771년 6월 왕을 구슬러
덴마크 각료가 되었고 7월에는 백작이 되었다.
1771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그는 언론의 자유, 농민 부역동원 축소, 사법제도의 통일, 코펜하겐 자치정부 개혁 등 여러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 개혁정책 때문에 많은 관리들과 관계가 멀어졌고 결국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1772년 1월 왕비와의 간통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끝에
처형되었다.
(슈투루엔제의 실제 초상화와 체포모습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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