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작
8월의 크리스마스 외 4
서일옥
눈이 내리지 않는 창밖을 보고 있다
오지 않을, 올 리도 없는 너를 기다리며
무단히 속을 끓이며 찻잔만 돌려본다
홀로 차를 따라 가슴을 뎁힐 즈음
정지된 화면으로 눈이 펑펑 내린다
그 짧은 꿈속의 시간 너도 따라 내린다
책장에 꽂힌 책들 말없이 앉아 있고
빛바랜 포인세티아 시간을 밀고 간다
그늘의 뒤편에 앉은 내 어깨가 시리다
<서정과현실, 2025년 상반기>
아파트
일 층엔 허약이 살고 이 층엔 비만이 살고
삼 층엔 자만이 살고 사 층엔 오만이 산다
사람은 정신이 없어서
집이 외려 사람 같다
보기는 번듯하지만 안 보이는 그늘이 깊다
종일 발걸음들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나란히 이웃과 함께
대화하는 경우가 없다
<유심, 2025년 봄호>
와이셔츠를 다리며
건방을 떨면서 우쭐대던 당신 어깨가
천 만근 시름을 지고 힘없이 누워있다
그 슬픔 함께하려고
무릎 꿇고 바라본다
온몸으로 부르짖는 소리 없는 전언들이
흑백의 결을 타고 울음처럼 번지는 시간
무너진 생의 칼라를
다시 세워주고 싶다
<정형시학, 2024년 겨울호>
분홍 낮달맞이꽃
젖어 들듯 젖어 들듯 아리는 그리움을
유월 푸른 전지 위에 분홍으로 적습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내 영혼의 촛불입니다
<월간문학, 2024년 8월호>
여자
혼자된 여자의
가게 안에 아이가 둘
그들은 울며 웃으며
공문 수학을 하고 있다
틈나면 눈을 맞추어
모정을 나누어 준다
우리 엄마 모습 같은
그녀는 당당하다
손 빠르고 눈 빠르고
계산도 빨라서
숨가쁜 하루의 일과를
빈틈없이 해내고 있다
남편은 살아 있을까
양육비는 받고 있을까
온몸으로 걸어가는
저 여자의 가시밭길을
세상의 어떤 손길이
위무해 줄 수 있을 까
<유심, 2025년 봄호>
- 《시조정신》2025년 추동호(제17호)
카페 게시글
수상작품
제9회 외솔시조문학상 - 8월의 크리스마스 외 4 / 서일옥
김덕남
추천 1
조회 78
25.10.28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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